기대는 숨결
임상 병리사인 ‘나’는 새로 온 외과 레지던트 이훈재와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이훈재는 친구와 함께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혼자만 살아남았다는 정신적 상실감을 이기지 못하고 약물중독에 빠진다. 그는 금단 현상으로 쓰러지고, 결국 병원을 그만두고 미국으로 떠난다고 했다. 나는 곧 사랑을 포기하고 줄곧 청혼해 오던 방 과장과 결혼한다. 그 후 우연히 만난 황 간호사를 통해 이훈재가 미국으로 떠난 것이 아니라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훈재와의 이별 후 귀 울음 때문에 고생해 온 나는 그의 소식을 듣고는 이비인후과에서 탄 약을 버리고 한동안 귀 울음을 그냥 견디기로 한다.
노루잠의 개꿈
구파발 전철역 앞에 동물 병원을 차린 영국은 산업체 부설 야간 중학교 출신으로, 그의 중학교 동창들의 절반은 중도에 학업을 그만두고 건달이 되어 버렸다. 걸핏하면 병원에 들락거리는 건달 친구들 중 명구와 봉춘은 ‘글로벌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심부름 센터를 차렸다. 늘 영국의 재산을 축내던 그들이 한몫 잡았다며 거액권의 유고 지폐를 가져오고, 돈 많은 노인이 아내의 뒤를 캐려고 하는 제법 큰 건을 잡았다며 노인 아내의 사진을 보여 준다. 그런데 사진 속의 여자가 자신의 장모임을 알고 놀란 영국이 아내를 닦달하여 진실을 밝히려 하자, 아내가 임신할 수 있도록 기도하기 위해 기도원에 다녀온 것이라 한다. 얼마 후 유고 거액권은 쓸모없는 종이에 불과하고, 아내는 기대했던 임신을 한 게 아니라는 것이 밝혀진다. 그리고 못된 짓만 일삼던 명구와 봉추는 다쳐서 제각각 정형외과와 흉곽외과에 입원을 하게 된다.
이별 클리닉
이별을 앓고 있는 나는 ‘이별 클리닉’이라는 인터넷 카페에 자주 들러, ‘홀로 걷는 달’이라는 아이디를 사용하는 전문 상담가의 말에 위로를 얻는다. 나이 많고 부유한 남자와 결혼을 한 지난 연인 채정을 만나고, 결혼 정보 회사에 다니는 친구에게 소개받은 성형외과에서 얼굴을 과도하게 뜯어고친 여자를 만나 보기도 하지만 영주를 잊는 데 별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그러다 갑자기 어머니가 괌에 놀러갔다가 그곳에 신혼여행을 온 영주를 보고 충격을 받아 쓰러졌다는 전화를 받는다. 어머니가 입원한 병실을 찾기 전 나는 ‘이별 클리닉’에 접속하여 ‘홀로 걷는 달’의 글을 보게 된다. 그리고 폐허가 된 채 더 이상 영주를 사랑할 힘이 남아 있지 않은 나를 발견한다.
장미 주유소
대학교수의 아내 주화는 일밖에 모른 남편과의 관계에 회의를 느낀다. 그러다 우연히 섹스 중독자인 주유소 남자 유섭을 만나게 되고 그에게 빠진 주화는 러브호텔을 들락거린다. 진정한 오르가슴을 찾았다고 여긴 주화는 계속해서 유섭을 찾지만, 어느 순간부터 유섭에게서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고 만날 수도 없게 된다. 유섭을 붙잡을 마지막 수단으로 주유소로 편지를 보내지만 편지는 되돌아오고, 그 편지는 주화 남편의 손에 들어간다. 분노한 주화의 남편은 살기 어린 눈빛으로 주화에게 날카로운 가위를 들이대지만 주화의 말림으로 분노를 가라앉히고 그 둘은 이제까지 그 어떤 때보다 열정적인 섹스를 나누며 진정한 오르가슴을 발견한다. 주유소 남자인 유섭은 명예퇴직을 당한 이후 각박증과 박탈감에 시달리는 섹스 중독증 환자이다. 뜰에 각종 장미 키우기를 즐기고 딸 혜수를 무척이나 사랑하던 그는 치유의 가능성을 발견하지만 그만 만나자는 유섭의 말에 상처를 입은 편집증 환자인 댄스 도우미와 같이 죽게 된다. 느닷없이 남편 유섭의 죽음을 맞닥Em리게 된 순조는 죽은 남편의 흔적을 하나하나 지워가는 과정 중에서 자신이 남편에 대해 얼마나 많이 몰랐으며, 또한 아무리 지우려해 봐야 결코 그를 지울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명문 아파트
동문 시장에서 짝퉁 명품을 파는 용자는 남편이 공무원이라는 민주 엄마와 그의 손위 올케이며 대학교수의 부인이라는 신 여사를 동경한다. 그래서 신 여사가 산다는 명문 아파트로 이사한다. 그러나 낙원 부동산의 정 여사 소개로 입주한 아파트는 이전에 살던 새댁이 투신자살했고, 그 전에는 노파가 빨래 건조대에다 목을 맸었던 집이라 급매물로 나온 집임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그녀는 우선 정 여사와 같은 교회에 다니는 에덴 약국의 약사에게 가서 자신의 꿈자리가 뒤숭숭하다고 소문을 내고, 그 소식이 정 여사에게 들어갔을 때쯤 낙원 부동산을 찾아가 다짜고짜 따진다. 정 여사는 전 주인에게서 받은 사례금을 이사 비용으로 내놓고, 집을 이용한 재태크를 제안한다. 전에 살던 태양 연립으로 이사한 용자는 감사 인사를 전하러 들렀던 에덴 약국에서 그동안 용자가 그토록 동경했던 신 여사가 후즐근한 모습으로 서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약사를 통해 신 여사가 오랫동안 분식집을 하여 돈을 벌었고 그동안 용자에게 했던 모든 이야기가 거짓이었음을 알게 된다.
슬픔의 돌
어렸을 때부터 자유분방하며 사랑을 믿지 않았던 언니 은유는 결혼 일곱 달 만에 이혼을 하고 그 이후에도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산다. 나는 남편이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앓다가 죽은 이후 보석 감정사 공부를 하고 아파트 상가에 ‘보석함’이라는 보석 가게를 차린다. 그리고 남편이 남겨 준 오팔로 된 결혼반지를 간직하며 조용한 일상을 보낼 뿐이다.
어느 날 갑자기 은유는 주차 경비원 최 씨와 살림을 합치겠다고 선언한다. 최 씨는 잃어버린 정신지체 장애인인 아내를 애타게 찾으면서도 사람들에게 예의 바르고 싹싹하게 굴어 칭찬이 자자한 인물이다. 이러한 최 씨가 방치된 채 있던 은유의 차를 은유 몰래 손봐주고, 은유가 아끼고 사랑하던 애완견 반디를 찾아주려 애쓰는 모습을 보며 그동안 자신이 의심했던 진정한 사랑을 찾았노라 은유는 나에게 이야기한다. 그러나 얼마 후 최 씨가 찾던 아내를 무허가 정신 병원에 감금한 사실이 밝혀지고, 주차장 확장 공사를 하면서 비닐에 쌓여진 채 목이 매여 죽어 있는 반디가 발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