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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 발행일 | 2001년 03월 31일 |
|---|---|
| 쪽수, 무게, 크기 | 356쪽 | 525g | 153*224*30mm |
| ISBN13 | 9788989368216 |
| ISBN10 | 8989368219 |
움트는 겨울
구인환 저
|
푸른사상
|
2001년 03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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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보이 다방은 여전히 소란했다. 멜로디가 요란하게 홀 안을 누볐다. 젊은이들이 여기저기에서 고개를 맞대고 떠들고 있다. 저녁때가 되어 또 모여드는 것이다. 남녀 대학생, 대학을 갓 나왔거나 고등학교를 나오고 거들거리는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덕구는 담배만 피우고 있는 꼴이 얄미웠다. 벌써 한 시간이 넘었다.
뭐 진희가 나올 것을 믿고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 약속하죠, 이따 5시에 부산극장 앞 사보이 다방으로 나와요"라고 말한 것을 지킬 따름이다. 뽀로통하고 문을 닫고 나가던 진희가 나올 것을 기대하고 앉아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가끔 도어를 보고 앉아 있는 꼴이 얄미울 뿐이다. 덕구는 살며시 화가 났다. 어디를 보거나 여인을 기다리고 앉아 있을 수는 없다. 사실 말이지, 덕구가 가까이 하지 않아도 여인 쪽에서 먼저 가까워지려고 애쓰는 것이 상례였다. 그런데 살짝 꼬리를 뺄 뿐 아니라, 사람을 얕잡아보기까지 하려고 한다. 도무지 그대로 견딜 수가 없었다. 옆에 누가 있으면 한 대 치기라도 했으면 시원하겠다. 속이라도 풀리겠다. 위스키티를 시켰다.
흥 아니꼽게 군단 말야. 아니 세상에 널린 게 계집앤데 제가 도도하면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윤동진교수의 딸이라 그렇게 콧대가 센 것인가. 아니지, 윤교수는 오히려 나를 좋아하는 편인 것이 분명해. 진희와 얘기하라고 총총히 가방을 가지고 나가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지. 그 눈을 보면 분명히 '덕구 자넨 믿을 수가 있어, 이 험한 부산 바닥에서도 말야'라고 말하려는 듯한 눈치야. 아버지의 뜻을 눈치 챘으면 좀 다정하게라도 굴어야 할 게 아냐. 이건 도시 송충이를 보듯 대하니. 세상에 이 덕구를 몰라서 그러는거야. 유사의 심포지엄에 지도교수로 모신다 이거야. 웃고도 남을 일이야. 윤교수가 학문에 얼마나 조예가 깊고, 또한 학자적인 자세가 투철하다던가는 별 관계가 없는 일이야. 그건 관계가 없는 일이지. 아니꼽게 굴지 않는 게 좋을거야. 세상은 그렇게 좁은 것만은 아니니까 말야.
뭐 진희가 나올 것을 믿고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 약속하죠, 이따 5시에 부산극장 앞 사보이 다방으로 나와요"라고 말한 것을 지킬 따름이다. 뽀로통하고 문을 닫고 나가던 진희가 나올 것을 기대하고 앉아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가끔 도어를 보고 앉아 있는 꼴이 얄미울 뿐이다. 덕구는 살며시 화가 났다. 어디를 보거나 여인을 기다리고 앉아 있을 수는 없다. 사실 말이지, 덕구가 가까이 하지 않아도 여인 쪽에서 먼저 가까워지려고 애쓰는 것이 상례였다. 그런데 살짝 꼬리를 뺄 뿐 아니라, 사람을 얕잡아보기까지 하려고 한다. 도무지 그대로 견딜 수가 없었다. 옆에 누가 있으면 한 대 치기라도 했으면 시원하겠다. 속이라도 풀리겠다. 위스키티를 시켰다.
흥 아니꼽게 군단 말야. 아니 세상에 널린 게 계집앤데 제가 도도하면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윤동진교수의 딸이라 그렇게 콧대가 센 것인가. 아니지, 윤교수는 오히려 나를 좋아하는 편인 것이 분명해. 진희와 얘기하라고 총총히 가방을 가지고 나가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지. 그 눈을 보면 분명히 '덕구 자넨 믿을 수가 있어, 이 험한 부산 바닥에서도 말야'라고 말하려는 듯한 눈치야. 아버지의 뜻을 눈치 챘으면 좀 다정하게라도 굴어야 할 게 아냐. 이건 도시 송충이를 보듯 대하니. 세상에 이 덕구를 몰라서 그러는거야. 유사의 심포지엄에 지도교수로 모신다 이거야. 웃고도 남을 일이야. 윤교수가 학문에 얼마나 조예가 깊고, 또한 학자적인 자세가 투철하다던가는 별 관계가 없는 일이야. 그건 관계가 없는 일이지. 아니꼽게 굴지 않는 게 좋을거야. 세상은 그렇게 좁은 것만은 아니니까 말야.
--- pp.117-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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