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동에서 제일 유명한 클럽 ‘블루 아이(blue eye)’는 터질 것 같은 열기로 가득했다. 현란한 조명과 강렬한 비트의 음악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젊음을 한껏 발산하고 있었다. 규현은 싸늘한 눈으로 클럽 안을 둘러보았다. 블랙 가죽 재킷과 블랙 데님 바지를 멋지게 소화하는 187센티미터의 큰 키와 남자다운 넓은 어깨, 날렵한 허리와 긴 다리의 규현에게 수많은 여자들의 시선이 꽂혔다. 비즈니스 슈트를 입은 김승민이 클럽 매니저와 함께 규현에게 급하게 다가왔다. “오셨습니까, 본부장님.” 승민의 인사에도 규현의 싸늘한 미간에 짜증이 어렸다. 런던발 비행기에서 내린 지 겨우 두 시간이 지났을 뿐이었다. 열흘간의 런던 출장 스케줄은 살인적이었다. 이번 출장에서 승민은 규현을 수행하지 않았지만 본사에서 규현과 긴밀한 협조하에 일을 처리했다. “최 사장은?” 요란한 음악 소리 위로 규현의 굵은 저음은 묵직하게 울렸다. “기다리고 계십니다.” 매니저가 대신 대답했다. 최수혁은 몇 개의 클럽을 소유한 사장으로 규현의 오랜 친구였다. ‘블루 아이’는 최수혁이 3년 전에 오픈하자마자 세간의 화제를 불러일으킨 클럽이었다. 규현은 딱딱한 얼굴로 아무 말 없이 계단을 올라갔다. 그의 무심한 시선이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1층을 스치듯 지나갔다. 격렬한 리듬에 몸을 맡긴 여자들의 화려한 움직임도 그의 시선을 끌지 못했다. 오히려 눈빛이 더욱 차가워질 뿐이었다. 그때 그의 시야에 문득 한 여자가 들어왔다. 여자는 규현처럼 블랙 일색이었다. 제2의 피부처럼 몸에 꼭 달라붙은 민소매 터틀넥은 탐스러운 가슴과 잘록한 허리선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블랙 스키니 진에 감싸인 탄력 있는 엉덩이와 긴 다리의 실루엣은 지독하게 관능적이었다. 남자의 눈과 머리를 단숨에 사로잡는 대단한 몸매였다. 마치 규현의 시선을 느낀 것처럼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둘의 시선이 마주치자 현란한 빛과 시끄러운 소음이 일시에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