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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레시아스의 칼

티레시아스의 칼

: 제9회한국소설신인작가상수상집 2001

최옥정 등저 | 개미 | 2001년 03월 31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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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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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01년 03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326쪽 | 490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87038384
ISBN10 8987038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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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품이랄 것도 못 되는 허섭스레기인 할머니의 반짇고리에 어떻게 이미농지가 들어가 있었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다만 어릴 적 남의 집 일처럼 들렸던 할아버지의 고향 얘기가 단편적으로 남아 있을 뿐이었다. 금강산 밑에 있는 마을, 말을 타고 집 안팎을 돌아다녔다는 할아버지, 꿩고기로 꾸미를 얹은 만두국, 고향을 떠나온 뒤에 어머니가 숯을 구어 연명해왔다는 얘기를 떠올리며 사진첩을 빼앗겨 유일하게 남아 있는 사진 속의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강제 이주 명령을 받았던 고향 땅에서 콧수염을 기른 할아버지 친구들과 스케이트를 타고 있는 사진이었다. 나는 미농지로 흑백 사진을 싸듯이 접어놓고 어항 속에 엎뎌 있는 이구아나를 꺼내들었다.

아이가 이구아나를 품에 안고 오던 날이었다. 나는 내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중앙아시아와 가깝게 있었다. 비행기표 값만 마련해, 나머지는 다녀와서 원고료로 때워보지 뭐. 좋은 기회인데 놓치면 아깝잖아. 전에 있던 직장 선배로부터 뜻밖에 받은 제안은 좋은 기회 정도가 아니라 한 마디로 내가 살길은 그쪽이다 하는 직감이 들게 만들었다. 그곳에 가면 뭔가 있겠구나. 나는 전화기를 노려보며 어금니를 물었다. 예상했던 일이 제대로 맞아떨어진 경험이 별로 없는 나로서도 믿기 어려운 확신이었다. 온몸의 피가 몰려들었다고 생각될 정도로 얼굴이 달아올랐고 나도 모르게 주먹을 쥐고 있던 손에는 땀이 배었다. 이구아나와 중앙아시아가 고리고리로 엮여 있는, 무슨 계시를 받은 게 아닌가 여겨지는 전율이었다.
---pp.144~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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