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우리에게 심리적 드라마를 연출시킨다. 마음을 명랑하게, 쾌활하게, 침울하게, 엄숙하게, 장엄하게, 기분이 들뜨게, 우수에 차게, 평안하게, 우아하게, 슬프게, 기묘하게, 진지하게, 힘겹게, 강건하게 만든다. 음악이 우리의 마음을 조종하지 못하는 구석은 없다. 우리는 음악을 통해서 우리 마음의 광대무변한 영역을 마음껏 돌아다니면서 우리가 못 가본 미지의 마음의 세계와 만난다. 음악은 그런 뜻에서 위대한 내성의 탐험이다.
음악은 또한 마술과 상통한다. 우주 만물과 대화를 나누는 능력을 가진 샤먼은 환각 상태에 빠져 영적인 세계를 방문한다. 여기에는 항상 율동적인 영창, 장단을 맞추는 박수 소리, 격렬한 춤 동작이 따르게 마련이다. 음악과 춤과 더불어 샤먼은 그의 영통적인 신비의 세계를 열어 보인다. 샤먼을 통하지 않더라도 음악가 자신이 마술사가 될 수도 있다. 괴물의 격정조차 진정시킬 수 있었던 그리스 신화의 음악의 화신 오르페우스, 밤에 피리를 불면 지나가는 달이 그를 위해 앞길을 밝혔다는「제망매가」의 시인 월명사, <마술피리>를 작곡한 음악의 마술사 모차르트, 이런 존재들은 세계를 그의 뜻대로 변환시키는 마술적 능력을 가졌다. 그들의 뛰어난 마술 능력에 힘입어 우리도 마술학교 신입생 정도의 마술을 음악을 통해 부릴 수 있을 것 같다. 두통아 사라져라! 아가야 배속에서 잘 자거라! 바람아 멈춰라! 우리는 그러한 마술적 소망을 담아 음악을 연주하고 또 듣는다.
--- pp.70~71
고갱의 예술세계에 대해서는 긍정과 부정의 양론이 존재한다. 그의 그림은 인상주의뿐만 아니라 미술사 전체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변혁의 성과를 보여주었다. 그는 타히티의 현실을 무시하고 자신이 그리고자 하는 이상적 현실로 대체시켜 타히티에 대한 인공낙원적인 미를 구축할 수 있었다. 그 아름다움은 서구 미술의 다른 작품에서는 볼 수 없는 이국적 정서의 충격을 준다. 그러나 고갱은 문화제국주의자로서 타히티 사람들로부터 소중한 것을 빼앗아 그들의 삶과 자존심을 위축시켰으며 결과적으로 그들을 기만하였다.
--- p.82
‘가려움’이라는 말은 성이 고상한 품위와 거리가 먼 인간의 행동 영역이라는 차원에서 적절한 은유라고 생각한다. 가려움의 정도가 지나치면 ‘욥’ 같은 성인도 기왓장으로 등을 긁는 품위 없는 행동을 하지 않았던가. 남성에게는 상시화되어 있고 여성은 그 징후를 감추는, ‘발정’의 시기는 마찰을 통해 가려움의 증상을 완화시키려는 행동을 유발한다. 가려움의 단계에서는 간지럼의 단계에서 출현하지 않는 동물적 본능이 행동의 동기와 결과를 주도한다. 이 본능을 통제하지 못한 남자가 섣부르게 여자에게 접근하다가 매몰찬 거절을 체험하면 남자는 다음 기회를 기다리며 은인자중하지만, 그렇게 할 심리적 여유가 없는 남자들은 다른 여자를 찾거나, 혼자서 가려운 데를 긁거나, 전문적으로 가려운 데를 긁어주는 여자를 찾아가거나, 아니면 앞서 말한 대로 모든 단계를 무시하고 찍어 누름과 조르기의 단계로 돌진하거나, 다양한 방황의 경로를 더듬는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려움 때문에 남자의 여성관이 바뀌고 그의 행동이 거칠어지고 성적 도착행동이 시작된다. 이것은 여자의 행동이나 태도 때문에 비롯된 것이 아니다. 여자들은 존재의 가려움을 느껴도 참는 것이 내면화되어 있는데, 남자들이 여자들의 그 참음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오묘한 남녀간의 참음에 대한 태도의 대조가 성 문제의 난해성을 표출시키는 것이다.
--- pp.184~185
물고기, 그것은 한 마리의 단순한 수생 동물이 아니다. 물속에서 있는 힘을 다해 저항하며 떠오르는 물고기는 물 위에서는 전혀 짐작할 수 없는 새로운 의미와 차원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빛나는 은유, 찬란한 상징, 바로 그것이다. 우리의 삶을 빛나게 하는 은유, 우리의 정신을 각성시키는 황홀한 상징, 한 가지 뜻으로 고착할 수 없는 그 은유와 상징을 캐내기 위해서, 몰려오는 수마를 떨쳐가며 이 순간에도 낚시꾼은 수면에 드리워진 찌를 응시하고 있다. 낚시란 우리가 알 수 없는 물밑 세계에 숨어있는 은유와 상징체계를 끌어올려 그 뜻을 마음속에 아로새기는, 세계에 대한 해석의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방법이다. 입질이 오고 있다. 대를 세워라! 지느러미를 쫙 펼친 채 비늘을 번득이고 아가미를 펄떡거리며 은유와 상징이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다. 우리가 이제 그 은유와 상징 속으로 걸어 들어갈 차례가 왔다.
--- pp.282~2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