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폰에서는 달콤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홍수연은 노래를 흥얼거리며 길을 걷고 있었다. 밤새 내린 비로 땅은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중간 중간에 있는 물구덩이를 피해 걸으며 홍수연은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이 참 예뻤다. 거리는 비어 있었다. 홍수연은 들고 있는 인디언핑크색 장우산을 흔들며 걸었다. 그녀의 단발이 쌀쌀한 바람에 흔들렸다. 귓가에서 남자 보컬이 별빛이 내린다고 노래했다. 상쾌한 등굣길이었다. 가자마자 국어 숙제를 하고……. 수연은 집에서 해 온 숙제와 하지 못하고 그냥 온 숙제를 비교했다. 시간표별로 가장 먼저 해야 할 숙제를 떠올려 봤다. 국어가 가장 먼저 그리고 나서는 수학 숙제를 해야 한다. 수학은 진도가 빠른 3반의 친구에게 노트를 빌려 베끼자. 수연이 머릿속으로 할 일을 꼽았다. 그녀는 어떤 검은 차가 그녀의 등뒤에 선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검은 차에서 내린 남자는 소리 없이 달려왔다. 바람을 가르면서도 바람 소리조차 내지 않은 남자가 수연을 뒤에서 덮쳤다. 비명이 이른 새벽의 시장에 울려 퍼졌다. 수연의 몸이 뒤로 넘어갔다. 그녀의 귀에서 하얀색 이어폰이 빠지며 허공에서 너울거렸다. 수연의 하얀 운동화에 구정물이 튀었고 그녀의 몸은 바닥에 떨어지기 직전이었다. 그녀의 짧은 머리카락 끝이 바닥의 구정물 구덩이에 살짝 닿는 거리에서 남자는 수연을 아슬아슬하게 붙잡았다. 비명을 지르던 수연은 코앞까지 다가온 남자를 절박하게 확인했다. 아는 사람인가? 아니 모르는 사람이다. 수능을 한 달 앞둔 수연이 알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남자는 아주 어두운 눈과 선명한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었다. 이런 사람, 몰? 그때 입이 틀어막혔다. 남자의 혀가 거침없이 들어왔다. 수연은 놀라 남자를 밀어내려 했다. 사지를 버둥거리자 남자의 우악스러운 힘이 그녀의 몸을 눌렀다. 수연의 반항이 거셌지만 남자는 그녀를 마치 솜인형이라도 되는 양 눌렀다. 키스는 거칠고 난폭했다. 수연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