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락을 지향하는 재즈송
이 시대의 재즈송은 오늘날 말하는 재즈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서양의 대중음악의 영향으로 출현한 팝송, 샹송, 라틴 음악까지를 포괄한다. 저자는 이전까지의 연구서에서는 재즈송이라는 갈래를 다룬 적이 없었으나, 재즈송은 당시 도시남녀 사이에 유행하면서 분명한 정서적 지향을 보여 주었다고 말한다. 1926년에는 피아노의 홍난파, 슬라이드 트롬본의 박건원, 노래의 이인선, 제1색소폰의 백명곤이 코리안 재즈 밴드라는 이름을 걸고 YMCA에서 우리나라 초유의 재즈 공연을 치르기까지 하는 등 재즈송도 훌륭한 대중가요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말이다. 재즈송은 제목에 영어식 표기가 들어가는 일이 많으며, 서양의 정취를 물씬 풍기며 이국적 정서를 지향했다. 또한 가사를 보면 향락에 대한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내용이 많은데, 이러한 이국적인 정서와 향락 지향은 당시 대중들에게 쾌감을 선사하여 인기가 높았다. 이 책에서는 대표적인 곡으로 삼우열이 부른 「다이나」, 무용수로 이름 높은 최승희가 부른 「이태리의 정원」, 채규엽이 부른 「정열의 산보」를 꼽아 분석하고 있다. 그중 향락적인 정서를 가장 잘 나타내 주는 「정열의 산보」의 일부 가사를 살펴보자.
「정열의 산보」
김동진 작사, 채규엽 노래
구십춘광 쉬 간다 하네
꽃그늘 지는 동산에 가세
석양이 좋아 쓸쓸한 황혼
사랑의 노래 높이 부르며
젊은이 가슴 피가 뛸 때에 임의 얼굴도 빨갛게 타네
바람도 불고 고운 님 입김 달콤한 이 꿈 어이 깨랴
세태를 희화하고 풍자하는 만요
만요는 일종의 코믹송으로 희극에 해당하는 만담 등의 내용을 노래로 만든 대중가요이다. 웃음을 유발하며 당시의 세태를 반영하던 만요는 해학과 풍자를 통해 즐거움과 교훈을 동시에 주었다. 만요에서 드러나는 웃음은 연민을 유발하는 웃음인 해학과 공격성을 지니고 있는 웃음인 풍자로 크게 나뉜다. 이 책에서는 대표적인 만요로, 서영춘의 「서울 구경」으로 더 잘 알려진 강홍식의 「유쾌한 시골 영감」, 박향림의 「오빠는 풍각쟁이」, 유종섭의 「뚱딴지 서울」, 김장미의 「엉터리 대학생」, 김해송의 「나무아미타불」, 박향림·남일연·김해송의 「시큰둥 야시」, 이애리수·전경희의「붕까라」 등을 분석하고 있다. 그중 시대가 달라져도 여전한 세태를 풍자하고 있는 「엉터리 대학생」의 한 구절을 보자.
「엉터리 대학생」
김다인 작사, 김송규 작곡, 김장미 노래
우리 옆집 대학생 호떡 주사
대학생은 십 년이 넘어도 졸업장은 캄캄해
아서라, 이 사람아 참말 딱하군 밤마다 잠꼬대가 걸작이지요
연애냐 졸업장이냐 연애냐 졸업장이냐 아서라, 이 사람아 정신 좀 차려라 응
우리 옆집 대학생 행수 장사
대학생은 공부는 다섯 끝 다마쯔낀 오백 끝
아서라 이 사람아 참말 섭섭해 밤마다 잠꼬대가 걸작이지요
공부냐 다마쯔끼냐 공부냐 다마쯔끼냐 아서라 이 사람아 정신 좀 차려라 응
충족과 결핍을 반영하는 신민요
신민요는 기존의 민요 형식을 빌어서 새롭게 출현한 자생적인 대중가요를 말한다. 유행가보다는 조선의 냄새가 들어 있고 우리들 마음에 반향할 만한 노래이면서 역시 양곡에 맞추어 부른 것이라고 당시의 음반 관계자는 설명하고 있다. 신민요는 그 안에 내재되어 있는 충족 의식으로 대중의 삶을 위로해 주었다. 신민요에서 나타나는 충족 의식은 국토 예찬, 봄맞이, 풍년맞이라는 세 가지 형태로 주로 나타났다. 이 책에서는 그중 대표적인 노래로 강홍식의 「조선 타령」, 이난영의 「봄맞이」, 강홍식·조금자의 「풍년맞이」를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신민요는 충족 의식만이 아니라 허무와 애상을 표출하기도 했다. 선우일선의 「꽃을 잡고」와 박부용의 「노들강변」이 대표적인 곡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5만 장 이상이 팔릴 정도로 큰 인기를 모은 「꽃을 잡고」의 한 대목이다.
「꽃을 잡고」
김억 작사, 이면상 작곡, 선우일선 노래
하늘하늘 바람이 꽃이 피면 다시 못 잊을 지난 그 옛날
지난 세월 구름이라 잊자건만 잊을 길 없는 설운 이 내 맘
시대 인식과 초극 의지를 나타낸 트로트
트로트는 당시 일본 대중음악의 영향을 받아서 새롭게 출현한 모든 곡을 통칭한 용어라고 할 수 있다. 일제 강점기 때 트로트는 지금과는 달리 당시 대중의 비참한 삶을 반영하고 현실을 직시하여 그 방법을 제시한 엘리트 음악에 가까웠다. 유성기 음반 중 트로트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이경설의 「세기 말의 노래」, 채규엽의 「서울 노래」,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 남인수의 「감격시대」, 채규엽의 「희망의 종이 운다」, 남인수의 「애수의 소야곡」, 채규엽의 「두 목숨의 저승길」, 고복수의 「타향」, 「사막의 한」, 안명옥의 「못 오실 임」, 박향림의 「지상의 어머니」, 강홍식 노은홍의 「황야의 고객」 을 대표적인 트로트로 꼽아 분석하고 있다. 이난영의 출세작이자 대중가요의 선구적인 노래로 손꼽히던 「목포의 눈물」을 한 구절 읽어 보자.
「목포의 눈물」
문일석 작사, 손목인 작곡, 이난영 노래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며 삼학도 파도 깊히 숨어드는 때
부두의 새악씨 아롱 젖은 옷자락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
삼백연 원안풍은 노적봉 밑에 임 자취 완연하다 애달픈 정조
유달산 바람도 영산강을 안으니 임 그려 우는 마음 목포의 노래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