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엔드에 있는 수많은 공연장에서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무대가 이어지지만 신기하게도 대부분 만원이다. 또 한 작품을 수년 동안 같은 장소에서 공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공연장 자체가 하나의 명소가 된다. 예를 들어 1986년 10월 허 마제스티스 극장에서 초연된 오페라의 유령은 지금도 같은 자리에서 공연되고 있다. 100년이 훨씬 넘은 공연장은 좌석이 좁고 말굽형이라 시야 제한이 있지만 세계 어느 극장도 가질 수 없는 기품과 자긍심이 있다고 할까? 오페라의 유령을 비롯해 레미제라블, 싱잉 인 더 레인, 위 윌록 유, 맘마미아, 라이온킹 등이 한국 여행객들에게 변함없이 사랑을 받고 있고, 최근에는 위키드, 빌리 엘리어트, 마틸다, 더 워, 보디가드 등도 인기다. _21p
코번트가든에는 구경거리가 많아 현지인들과 관광객들로 항상 붐비는데, 쇼핑에 큰 관심이 없는 나도 자주 이곳을 찾았다. 바로 로열 오페라하우스가 있기 때문이다. 1년 내내 다채로운 작품이 무대에 오르는데, 두 작품이 요일별로 번갈아 공연될 때가 많다. 오늘 이 작품을 보러 왔다가 내일 저 작품까지 보겠다는 의지를 갖게 만드는 마케팅이다. 왕립이니 공연의 퀄리티야 젤 수나 있겠는가! 이곳에서도 오전 10시면 현장에서 67석의 입석 티켓을 10파운드 안팎의 가격으로 판매한다. 나는 티켓이 매진되는 바람에 발레 오네긴과 오페라 유진 오네긴을 입석으로 번갈아 본 적이 있다. 발레를 볼 때는 어찌나 재밌던지 ‘이렇게 싼 가격에 저토록 훌륭한 무대를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감격했지만, 오페라를 볼 때는 1층부터 4층까지 가득 메운 입석을 바라보며 연중 관객들로 가득 차는 로열 오페라하우스 ‘시야 제한이 있는 자리(입석이니 정확히 말하면 공간이다)를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 판매하는 상술’이라며 속으로 분개했다. 사람의 마음은 참 간사하다._26~27p
바츨라프 광장에서 살짝 벗어나면 체코를 대표하는 아르누보 예술의 거장 알폰스 무하의 그림이 전시된 미술관이 나온다. 무하는 프랑스 파리에서 데뷔해서 뮈샤로 불리기도 하는데 장식예술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포스터, 잡지 표지, 엽서, 달력, 식기, 직물 등에서 이른바 ‘무하 스타일’이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의 작품들은 아르누보 양식답게 화려하고 여성적인데, 성 비투스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나 시청사의 벽화 등 도시 곳곳에서도 그의 손길을 확인할 수 있다._57p
‘음악의 도시’라는 수식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도시답게 빈은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요한 슈트라우스, 슈베르트, 브람스, 말러, 쇤베르크 등 클래식 음악의 거장들이 활약했던 곳이다. 덕분에 빈은 1년 내내 각종 음악축제가 끊이지 않는다. 5월에는 빈 봄 축제가 열리고, 앞서 3월 말에는 정통 델타 블루스에서 록, 소울, R&B 등을 즐길 수 있는 ‘빈 블루스 스프링’, 여름에는 ‘오페라 축제’가 유명하다. 여름에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축제는 밤마다 시청사 앞에서 펼쳐지는 ‘뮤직 필름 페스티벌’이다. 오페라, 발레, 클래식 연주는 물론이고 팝, 재즈, 록 콘서트까지 대형 스크린을 통해 무료로 즐길 수 있다. 특히 5월 말에서 6월 초 사이에는 쇤브룬 궁전 뜰에서 열리는 빈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연주회를 보기 위해 세계의 음악 팬들이 모여든다. 이른바 오픈 에어 콘서트, 심지어 공짜다. 나도 이 공연을 보려고 일부러 5월 말에 빈을 찾았다._78~79p
네오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진 빈 국립 오페라하우스는 1869년 개관 기념으로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를 초연했고, 구스타프 말러,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등이 음악감독을 맡으며 그 명성을 온 세상에 알렸다. 총 2천 2백여 석 규모로 유럽에서는 가장 큰 공연장인데, 시즌이 끝나는 7~8월을 제외하고 해마다 3백 회 이상의 오페라와 발레가 무대에 오른다._86p
소나르는 1994년부터 시작돼 2013년 20회를 맞은 멀티미디어 예술 축제다. 음악제와 전시회로 나뉘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 Festival of Advanced Music and New Media Art ’라는 부제답게 일렉트로닉으로 대표되는 각종 소리와 미디어 아트가 융합된 혁신적인 퍼포먼스를 선사한다. 현재로서는 이 페스티벌을 적당히 설명할 말이 없는 것 같다. 그만큼 기존 장르의 벽을 허물고 다른 매체를 흡수하는 새로운 형태의 축제다. 뉴미디어와 접목된 색다른 감각의 음악축제라고 할까? 실험적이고 깨어 있는 음악으로 대중과 교감하는 축제의 장답게 전 세계에서 가장 급진적인 뮤지션들은 물론 케미컬 브라더스, 펫숍보이스, 메시브 어택 등 인기 스타들이 대거 참여한다._109~110p
1933년 피렌체는 5월 음악제를 열어 피렌체가 음악의 도시임을 세상에 알렸다. 6월까지 이어지는 이 축제는 코무날레 극장, 시뇨리아 광장, 미켈란젤로 광장, 보볼리 공원, 베키오 궁전 등의 노천무대에서 도시의 싱그러움과 함께 관광객들을 유혹한다. 주빈 메타 같은 유명한 지휘자가 시뇨리아 광장에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그곳에 있는 다비드 복제품처럼 현실감각이 떨어지지만, 어차피 피렌체의 모든 것은 현실과는 거리가 멀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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