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물포해전 직후 프랑스인이 취재한 이 자료의 생생한 객관성이 종요롭다. 물론 이 자료도 성찰적 접근이 필요하다. 아다시피 러일전쟁은 최초의 제국주의전쟁이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벌어진 추악한 식민지쟁탈전이라는 점도 그렇고 이 전쟁이 단지 러시아와 일본의 싸움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러시아 뒤에는 프랑스가, 일본 뒤에는 영국과 미국이 버티고 있었다. 가스통 르루는 명백히 반일친러의 시각으로 제물포해전을 복원하면서 패배한 러시아수병을 영웅으로 축성하는 서사전략을 구사했던 것이다. 서구제국주의의 시선에 조선과 제물포는 없다. 아니 인천도 없다. 이 책에도 조선과 조선인, 인천과 인천인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 한계 때문에, 이 책을 오늘의 한국인, 오늘의 인천인의 눈으로 다시 감아 독해하는 작업은 중요하다.
--- p.8 (추천의 말 중에서)
독자 여러분은 내가 포트사이드에서 제물포의 영웅들을 만나 어떻게 이들과 함께 마르세유로 돌아갔고, 5일 간 함께 항해를 하며 어떻게 그들로부터 제물포 해전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들었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벨라예프 지휘관님, 그리고 바랴그 호와 카레예츠 호의 장교들, 특히 드 베렌스 대위님, 드 레비츠키 대위님, 베를링 대위님께 감사드리고 싶다. 이분들께서 2월 8일과 9일에 벌어진 제물포 해전에 대해 자세히 증언해주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스트랄리앵 호에 탔던 친절하고 사근사근한 데스볼스 의사 선생님께도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데스볼스 의사 선생님은 내게 자신의 선실을 내주었고, 덕분에 나는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보안을 유지하며 제물포 해전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대해 러시아 장교들과 이야기 나눌 수 있었다.
역사? 사실 나는 제물포 해전에 관한 정보만을 단순히 제공하려고 마음먹었다. 만일 내 기록 속에 사료적 가치를 띤 부분이 있다면, 모두가 러시아 장교들과 병사들 덕분일 것이다. 이들이 제물포를 역사에 남긴 장본인들이기 때문이다. 피로 쓴 역사! 난 수기처럼 자세하게, 객관적이고 직설적으로 이번 이야기를 기록하려고 노력했으며 사실을 기록해야 한다는 생각 외에 다른 마음은 없었다. 2월 8일과 9일에 벌어진 제물포 해전에 대해 러시아 장교들과 해군들이 들려준 대로 적었을 뿐이다. 물론 내가 상상을 배제하고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노력을 해도 부차적인 부분에서 본의 아니게 100%의 사실성을 살리지 못했을 수도 있고, 부차적인 부분까지 모두 그대로 사실적으로 적었을 수도 있다. 어쨌든 내가 이번 집필 작업을 하면서 느낀 감정은 놀라움이다.
격렬했던 제물포 해전 이야기를 마치기 전, 여러분에게 해야 할 이야기가 있다. 제물포 해전에서 살아남은 러시아 병사들이 오로지 한 가지 욕망으로 불탔다는 사실이다. 바로 한국으로 되돌아가고 싶다는 욕망이다. 그들은 서울 주재 러시아 공사에게 소식이 전해지길 바라고 있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선전포고 없이 제물포 해전이 벌어진 사실을 그들이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제물포 해전에서 살아남은 러시아 장교들과 병사들에게는 오로지 한 가지 희망 밖에 없었다. 짜르에게 이를 실현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사 부탁할 참이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 죽을 때까지 싸울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
--- p.171~173
이 책은 무엇보다도 러일전쟁의 실질적인 개전을 가져온 제물포해전에 대한 자세한 재현이라는 점에서 큰 가치가 있다. 객관적이고 사실적으로 기록하고자 했지만 본의 아니게 100% 사실을 살리지 못했을까 걱정하는 모습에서 저자의 실증적 자세를 엿볼 수 있다. 그렇지만 때로는 인터뷰하듯이 때로는 사실의 전개를 직접 목격하듯이 기술하는 등 생동감 있게 재현하면서도 주관이 섞이는 것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주관들 가운데 가장 명백한 것은 일본군의 입장이나 정보는 전혀 없이, 유럽 사람들의 일반적인 정서에 영합하여 러시아 장병들의 입장에 공감하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재현했다는 점일 것이다. 이것이 이 책이 지닌 뚜렷한 특징이다.
어떤 한계와 특징에도 불구하고 제물포해전에 대해 이만큼 자세한 정보를 제공한 책은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
--- p.205~206 ('해설 - 제물포해전의 복원과 영웅의 탄생'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