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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화에 관한 몇가지 기억

수선화에 관한 몇가지 기억

대원 | 솔과학 | 2001년 04월 3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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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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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01년 04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28쪽 | 361g | 153*224*20mm
ISBN13 9788987794273
ISBN10 898779427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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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대원
정유생(1957)으로 1983년 순천 송광사로 출가, 계룡화상을 은사로 수계득도했다. 제방 선원에서 정진하다가 LA 고려사 국제선원장(94), 송광사 교무(96), 수련국장(97)과 서울 길상사 수련원장(98)을 역임했다. 지금은 모든 소임을 놓고 다시 선원과 토굴에서 정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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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화를 언제 처음 보았을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소싯적 중학교 영어 책에서 읽었던 나르시소의 전설에서 처음으로 수선화라는 꽃이 있음을 알았다.

6년 전 오랜만에 송광사로 들어와 선원에서 살았다. 그 때 수선사의 앞뜰에 핀 수선화를 보고 너무 좋아 토굴에다 몇 포기 옮겨 놓았더니 포기가 늘어 작년에는 11포기에서 50송이나 피었다. 그 중 한 포기는 흰 수선이었다. 내 작은 뜨락에 제일 먼저 피는 꽃이다.

<하워드 앤즈>라는 영화를 보았다. 영국을 배경으로 한 영화라서 뭔가 색다른 것이 있을까 하고 보았는데 별로 재미가 없었다. 다만 영화에 베에토벤의 교향곡 5번 중 3악장을 피아노로 연주하는 장면과 빗속에 바뀐 우산을 찾느라 헤매던 가난하지만 낭만적인 청년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하워드 앤즈의 늪에 지천으로 피어 있던 수선화만 본전생각을 덜 나게 해 주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수선화의 모습만은 정말 좋았다.

94년 1월에 1년 예정으로 미국 LA로 갔다.

낯선 나라였지만 워낙 한국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이라 미국이라는 느낌은 별로 없었다. 길을 나서면 부딪치는 얼굴 빛깔과 생긴 모습이 다른 사람들을 볼 때서야 비로소 여기가 인종의 도가니 미국임을 실감할 뿐이었다.

미국에 있을 때 내가 제일 좋아하던 TV 방송이 공영방송인 PBS다. 헌금(donation)하라는 광고와 기업협찬 광고 이외에는 광고를 하지 않는다. 흘러간 좋은 영화도 많이 보여주고 기록영화나 음악연주 실황도 자주 보여준다. 재방송도 자주 한다. 이 방송을 통해 '쓰리 테너'의 로마 월드컵 기념 연주실황(콜롯세움)과 미국 월드컵 기념 연주실황(다저스 야구장)을 보았고 야니(Yanni)의 그리이스 아크로폴리스 연주실황을 볼 수 있었다. 켈리포니아는 사막의 도시다. 미국의 서부는 <서부영화>라는 말이 상징하듯이 사막에서 말을 타고 다니는 총잡이들이 늘 연상된다. 그 사막에서 봄에 피는 꽃이 장관이다. 캘리포니아의 주화가 야생 양귀비(Wild Puppy)인 것을 보면 사막에서 야생 양귀비가 많이 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끝없이 펼쳐진 사막에 피어있는 야생화는 사막이라는 환경과 어울려 환상적인 분위기를 보여준다.

그 TV에서 어느 날 수선화 마을을 보여주었다. 마을 이름은 지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우연히 오후에 TV를 켜니 소개를 하고 있었다. 매주 한번씩 남자 리포터가 특별한 곳을 찾아가는 프로그램이었다.

LA와 샌프란시스코 중간쯤에 있는 한적한 시골 마을로 기억되는데 그 마을 전체가 수선화로 채워져 있었다. 공간이란 공간은 모두 온갖 종류의 수선화로 채운 모습을 상상해 보라.

그때 비로소 수선화 종류도 수십 가지가 넘는다는 것을 알았다. 해마다 봄이면 이 마을은 수선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성지가 되어 방문객을 맞아들인다고 한다. 장삿속이 아니라 수선화를 사랑하는 사람끼리 교류를 하고싶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만일 다시 미국에 갈 기회가 있다면 꼭 그 마을을 방문해보고 싶다. 그러자면 초봄에 가야한다. 유명한 곳이라 수소문하면 금방 알 수 있으리라.

나는 그 해 봄까지만 해도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아 공영방송에서 소개해준 사막으로 가볼 생각은 못하고 그저 TV만 바라보며 감탄할 뿐이었다. 서너 달이 지나 주변 지리에 익숙해져 마음놓고 운전하게 되었을 때는 이미 봄이 지나가 버렸다.

미국의 슈퍼마켓에서는 조그만 화분을 핀다. 값도 그리 비싸지 않다. 보통 15불이면 괜찮은 것으로 살 수 있다. 어느 날 법당의 탁자 위에 수선화 화분이 서너 개 놓여 있는 것을 보고는 마음이 즐거웠다. 누군가 수선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또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후에 나도 하나 사서 평소 고맙게 대해 준 사람에게 선물로 주었다.
--- p.5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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