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이는 1917년 6월과 10월, 11월에 걸쳐 32일간 울릉도 식물채집을 하고 이곳에서 채집한 식물 학명에 ‘다케시마’란 이름을 넣었다. 나카이가 울릉도와 독도를 착각했던 것은 아니다. 현재 일본에서는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부르지만, 에도시대까지만 해도 울릉도와 독도를 통틀어 ‘다케시마’라고 불렀다. 나카이가 울릉도에서 식물채집을 하고 다케시마나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 1917년에서 1942년 사이인 것을 보면 그 무렵까지도 일본인들은 울릉도를 다케시마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당시 일본 최고 지식층이라 할 만한 도쿄대학교 교수조차 독도에 대한 인식이 없었음을 역설적으로 말해주는 증거라 할 수 있다.
--- p.18
『조선식물향명집』에 이르면 ‘개’자가 붙은 풀꽃 이름은 대폭 늘어 무려 78종에 이른다. 이를 분석해본 결과, 78종 가운데 20종은 일본 말 ‘이누(犬)’의 번역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개나리(조센렌교)처럼 일본어로는 ‘조센(朝鮮)’이라고 불리던 것도 6종이나 ‘개’로 번역되었다는 것이다.
--- p.48
바람꽃 가운데 쌍둥이바람꽃은 한 줄기에 꽃이 2개가 달려서 붙은 이름이다. 쌍둥이바람꽃의 일본 이름은 고라이니린소(高麗二輪草)다. 놀랍게도 ‘고려’자가 들어 있다. …… 흥미로운 것은『조선식물향명집』에 호랑버들(고라이밧코야나기, 高麗跋扈柳), 능수버들(고라이시다래야나기, 高麗枝垂柳), 쌍둥이바람꽃 등 고라이(고려)가 붙은 식물이 22종이나 나오는데, 한글 번역에서는 모두 ‘고려’를 뺀 채 번역되었다는 점이다.
--- p.52~53
금강초롱은 예전엔 화방초(花房草)라고 불렸다. 이 이름은 하나부사 요시모토(花房義質, 하나부사 요시타다라고도 부름)의 이름에서 가져온 것이다. 하나부사는 초대 일본 공사로, 일제가 조선을 강점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했던 시기 활동한 인물이다. …… 나카이는 금강초롱 말고도 초대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사내초(寺內草)라는 이름도 지어 헌상했다.
--- p.89~92
칼송이풀은 일본 칼 나기나타(?刀, 치도)와 닮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 칼송이풀을 다루는 많은 식물도감 가운데 칼송이풀이란 이름이 왜장도에 왔다는 것을 설명해주는 책은 없다. 하고 많은 칼 가운데 이순신 장군의 칼도 아니고 하필 우리를 침략했던 일본의 칼이라 부끄러워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단순한 무지일까? 그 까닭은 모르겠으나 분명한 것은 칼송이풀이란 이름이 왜장도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이다.
--- p.107~108
꿀풀과에 속하는 큰개불알꽃, 선개불알꽃은 열매가 개의 음낭처럼 생겨 붙은 일본 이름 이누노후구리를 번역한 것이고, 난과에 속하는 개불알꽃은 『조선식물명휘』에서 ‘개불알탈’이라 한 것을 고치지 않고 지금까지 개불알꽃으로 부르고 있는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의 식물 자원을 파악하기 위해 일본인들이 만든 식물도감의 풀꽃 이름을 이제라도 손봐야 한다. 그러나 일부관계자들은 “잘못된 것이라도 정착된 것이니 그냥 부르자”라는 주장을 한다. 과연 잘못된 것도 오래 부르던 이름이면 그냥 불러야 하는 것일까?
--- p.112
푸르른 5월이면 들이나 시골길에서 며느리밑씻개를 쉽게 볼 수 있다. 하고 많은 이름 가운데 ‘밑씻개’란 이름을 붙인 까닭은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말은 일본 말 의붓자식의밑씻개(마마코노시리누구이, 繼子の尻拭い)에서 유래한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의붓자식’을 ‘며느리’로 바꿔 부르고 있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의붓자식이 밉지만 한국에서는 며느리가 미운 것일까? 어쨌든 가시가 촘촘히 난 풀로 밑을 닦는다는 발상이 떨떠름하다. …… 멀쩡한 꽃에 며느리밑씻개 같은 이름을 붙인 것에 대해 생태학자 김종원 교수는 『한국식물생태보감』에서“기울어져 가는 조선 유교 양반 사회, 일제 식민 통치, 그리고 연거푸 일어난 한국전쟁, 이러한 반생명적인 통한의 세월 속에서도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지탱해준 것은 밥상을 책임진 며느리의 살림살이 덕택인데 그 며느리를 욕되게 할 이유는 없다”고 꼬집었다.
--- p.114~117
등대풀은 등잔풀의 오역이다. 일본의『어원유래사전』은 “등대풀에서 등대란 항로 표시를 위한 등대가 아니라 옛날 집안의 조명 기구인 등명대를 말한다. 등대꽃을 보면 심지처럼 노란 꽃대가 올라와 있고 꽃잎이 그 주변을 받쳐서 마치 등잔처럼 보여 이렇게 부른다”라고 풀이하고있다.
등대풀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등잔불을 켠 듯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이것도 일본인의 눈에 그렇게 보인다는 것이다. 한국인이 이름을 붙였다면 전혀 다른 이름이 나왔을지 모른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일본 이름을 따서 등대풀이라 부를 뿐 『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은 채 식물 생태만 설명하고 있다. 등대풀은 높은 언덕에서 꼿꼿이 자라는 식물이 아니라 땅에 납작 엎드려 살아가는 들꽃이다. 일본인이 붙인 이름을 그대로 가져오는 것도 모자라 제대로 번역도 하지 못했으니 손꼽히는 부끄러운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등잔풀로 고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 p.131~133
광대나물도 우스운 번역이다. 광대나물의 일본 이름은 호토케노자(佛の座)인데 직역하면 부처자리란 뜻이다. 꽃을 받쳐주는 부분이 불상을 받치는 대좌(臺座)와 닮아서 붙은 이름인데 무슨 까닭인지 우리나라에서는 광대나물로 부르고 있다. 그리스도교에서 예수의 십자가가 중요한 상징인 것처럼 불상 역시 부처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상징일 것이다. 번역자들이 왜 이런 번역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비아냥거리듯 중대가리, 광대나물이라 부르는 것은 좋은 의도로 느껴지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불교를 깎아내리는 이름이 되었다.
--- p.143
벚꽃은 일본인들이 유독 사랑하는 꽃으로, 일본을 대표하는 꽃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벚나무가 일본을 상징한다 하여 베어없애기도 했다. 하지만 제주 왕벚나무(Prunus yedoensis Matsumura)는 제주도 신례리와 봉개동, 전라남도 대둔산에 자생하는 순수 우리나라 특산종이다. 1908년 프랑스 출신의 에밀 타케 신부가 한라산 자락에 있는 관음사 뒤 해발 600미터 지점에서 채집한 왕벚나무를 당시 장미과의 권위자인 베를린대학교 베른하르트 쾨네 교수에게 보내 제주도가 왕벚나무의 자생지임이 최초로 밝혀졌다. 하지만 왕벚나무의 학명에는 우리나라 학자가 아닌 일본 학자 마쓰무라의 이름이 들어가 있다.
--- p.1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