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나의 결혼식 날이었다.
결혼식이 다 끝나도록 친구 형주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바로 그때 형주 아내가 토막 숨을 몰아쉬며, 예식장 계단을 급히 올라왔다.
“석민이 아빠는 오늘 못 왔어요. 죄송해요.
석민이 아빠가 이 편지 전해드리라고 했어요.”
친구 아내는 말도 맺기 전에 눈물부터 글썽였다.
엄마의 낡은 외투를 덮고 등 뒤의 아가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철환아, 형주다.?나 대신 아내가 간다.
하루를 벌어 하루를 먹고 사는 리어카 사과장사이기에
이 좋은 날, 너와 함께할 수 없음을 용서해 다오.
사과를 팔지 않으면 석민이가 오늘 밤 굶어야 한다.?
어제는 아침부터 밤 12시까지 사과를 팔았다.
온종일 추위와 싸운 돈이 만 삼천 원이다.
나 지금, 눈물을 글썽이며 이 글을 쓰고 있지만 마음만은 기쁘다.
‘철환이 장가간다...... 철환이 장가간다...... 너무 기쁘다.’
아내 손에 사과 한 봉지 들려 보낸다.
지난밤 노란 백열등 아래서 제일로 예쁜 놈들만 골라냈다. 신혼여행 가서 먹어라.”
편지와 함께 들어 있던 만 원짜리 한 장과 천 원짜리 세 장.......
뇌성마비로 몸이 불편한 형주가, 거리에 서서 한겨울 추위와 바꾼 돈이다.
나는 웃으며 사과 한 개를 꺼냈다.
“형주 이놈, 왜 사과를 보냈대요. 장사는 뭐로 하려고.......”
씻지도 않은 사과를 나는 우적우적 씹어댔다.?
왜 자꾸만 눈물이 나오는 것일까. 새신랑이 눈물 흘리면 안 되는데.......
나는 이를 사려 물었다. 하지만 참아도 참아도 터져 나오는 울음이었다.
--- 본문 중에서
내가 아홉 살 때, 우리 엄마는 남의 집에서 식모살이를 했습니다.
엄마는 내가 사는 산동네에서 멀리 떨어진 2층 집에서 살았고,
한 달에 한 번 집에 왔습니다.
아버지가 하시던 고물상이 기울대로 기울어, 먹고 사는 일이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엄마가 식모살이를 간 부잣집에는 몸이 불편한 할머니가 혼자 살고 있었습니다.
엄마는 할머니 곁에서 끼니를 챙겨드리고 병수발까지 해야 했습니다.
그 해 겨울은 다복다복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산동네에 눈이 내리는 날이면, 고물상 앞마당은 온통 눈밭이었습니다.
한 밤중, 그지없이 아름다운 눈밭 위에 서면 눈부시게 명멸하는 푸른 별빛들......
그 별빛은 엄마의 얼굴이었다가, 엄마의 눈빛이었다가,
어느새 엄마의 눈물이 되곤 했습니다. 매일 밤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습니다.
엄마가 보고 싶은 날이면, 형과 함께 먼 길을 걸어 엄마가 일하는 2층 집으로 갔습니다.
차가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걸어가는 길가에 크리스마스 캐럴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 본문 중에서
눈에 가득 눈물을....... 가슴 가득 감동을.......
초등학생들도, 어른들도
함께 공감할 수 있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쓰고 싶었습니다.
상추 잎만한 노트 9권에
5년 동안 조금씩 적어 놓은 글들을 여기에 모았습니다.
이 책에 있는 이야기들은 모두 실화입니다.
비바람 몰아쳤던 내 삶의 이야기도 담았고,
자연 속에서 보고 느꼈던 감동과 재미도 담았습니다.
불을 끄고 잠자리에 누웠다가도 좋은 문장이 떠오르면
머리맡을 더듬거려 노트를 찾았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노트 위에 미친 듯이 글을 써 내려갔습니다.
불을 켤 잠시의 여유조차 내겐 없었습니다.
신호등이 깜박이는 길을 건너다가도
좋은 문장이 떠오르면 후다닥 노트를 꺼냈습니다.
“야, 인마! 너 죽으려고 환장했어!”
차도 끝에 서 있는 나를 향해 택시기사가 다급하게 소리쳤습니다.
그 말이 무섭지 않았습니다. 나는 미쳐 있었습니다.
이 책에 있는 글들은 시가 아닙니다. 시를 흉내 낸 건 더욱 아닙니다.
시처럼 리듬을 주고 싶어서, 줄을 바꾸며 쓴 것입니다.
리듬을 주려고 한 줄을 내리려면,
적어도 수십 번은 소리 내어 읽어야 합니다.
보통의 글쓰기보다 훨씬 고된 작업이었습니다.
몇 년 동안 일터를 잃어버린 후배는
어린 딸이 놀이공원 가지고 조를 때마다, 등 위에 딸아이를 앉혀 놓고
지칠 때까지 말을 태워 준다고 했습니다.
얼마 전, 일터를 다시 얻은 후배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형...... 지금 내 손에 뭐 있는 줄 알아?
우리 지민이 줄 커다란 곰인형 사 가지고 가는 길이야.
그런데 마음이 너무 아파.......
이까짓 곰 인형 하나 때문에
우리 지민이를 너무 오랫동안 기다리게 했어.......”
후배는 간신히 울음을 삼키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행복해지는 아름다운 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같은 반 친구의 물건을 훔친 적이 있습니다.
담임선생님은 내 종아리를 모질게 때리셨습니다.
그런데, 나를 때리시는 선생님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습니다.
선생님의 눈물이 매보다 더 아팠습니다.
선생님의 사랑은 내 삶을 바꿔 놓으셨습니다.
여기 실려 있는 이야기들이 따스한 눈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환한 등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른이 되어 버린 아들을 보며 차마 한 번 안아보고 싶다고
말하지 못하는 우리 엄마가,
가슴에 꼭 끌어안을 수 있는 책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책의 저자 수익금은 <연탄길 나눔터>를 통해,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 나누어 쓰겠습니다.
우리 시대의 커다란 산이신
이외수 선생님과 류시화 선생님과 최일도 목사님께
깊은 감사와 존경을 바칩니다.
유기훈 선생님과 <행복한 물고기> 한옥현 선생님께도 머리 숙입니다.
글재주도 없는 나를, 여기까지 이끌어 주신 많은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재주는 없지만 좋은 정신으로 글을 쓰겠습니다.
하나님...... 저를 깨우실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 작가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