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일독일을 말한다] 시리즈 안내
<통일독일을 말한다> 3부작은 독일 통일 15주년을 맞는 시점에서 날로 심각해지는 동·서독 주민 간의 사회문화적 갈등의 양상을 살피고 그 원인을 추적한 책이다. 제1권 ??머릿속의 장벽??은 통일독일의 사회문화적 갈등을 다각적으로 분석한 13편의 논문을 모은 것이고, 제2권 ??변화를 통한 접근??은 독일 통일의 주역 20인과 가진 인터뷰를 묶은 것이며, 제3권 ??나의 통일 이야기??는 동독의 ‘보통사람들’과 가진 인터뷰를 엮은 것이다.
‘통일독일 3부작’은 상호 보완적 관계를 맺으면서 통일독일의 현실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국내 최초의 독일 통일 종합결산서이다. 제1권이 실증적 자료와 과학적 분석에 근거하여 통일독일의 현실에 대한 객관적 시각을 제공한다면, 지식인 인터뷰집인 제2권은 통일독일의 현재와 미래를 거시적으로 조망하는 ‘독수리 시각’을 제시하고, 동독 주민 인터뷰집인 제3권은 통일이 보통사람들의 생활세계에 몰고온 변화를 구체적으로 증언하는 ‘개구리 시각’을 보여준다.
이처럼 독일 통일이라는 현상을 정중앙에서 응시하거나, 위에서 아래로 조망하거나, 혹은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는 다시각적 관점을 취함으로써 이 3부작은 통일독일의 전체상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통일 15주년을 맞은 독일의 모습은 한마디로 동서 베를린을 가로지르던 장벽을 하나하나 헐어내어 동·서독 사람들의 머릿속에 다시 고스란히 쌓아놓은 형상처럼 보인다. 동·서독 ‘체제’를 가르던 물리적 장벽은 사라졌으나, ‘사람들’ 사이에 놓인 정신적 장벽은 오히려 높아만 가고 있다.
이 책은 오늘날 통일독일이 겪고 있는 극심한 문화적 갈등과 사회적 분열을 톺아봄으로써 통일문제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촉구하려는 의도에서 기획되었다. 진정한 통일은 단순히 이질적인 정치경제 체제를 통합하는 문제라기보다는 그 체제 속에서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내면의 문제, 즉 그들의 의식과 정서와 심리가 상호 소통하는 과정의 문제이기 때문에, 이제 통일을 정치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의 문제로, 체제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문제로 파악하는 인식의 일대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통일연구에 있어서 ‘문화적 전환’이 요구되고 있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진정한 통일은 정치경제적 통합이 아니라, 사회문화적 융합에 의해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이다. 동독주민들이 경제적 격차의 해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통일독일보다 구동독 사회와 더욱 일체감을 느끼고 있는 현실은 통일이 체제나 제도의 문제이기에 앞서 인간들 사이의 상호 이해의 문제, 즉 ‘문화의 문제’임을 생생히 증언한다.
둘째, 정치경제적 통합이 궁극적으로 힘의 논리에 의해 좌우되는 반면, 사회문화적 통합은 오로지 서로의 변화를 전제로 하는 대화의 기반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힘의 우위를 과시하는 냉전적 사고에서 벗어나 공동의 가치를 모색하는 개방적 사고로 나아가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셋째, 민족의 개념을 앞세우는 낭만적 민족주의 담론만으로는 통일 이후의 사회문화적 갈등을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통일 이후 발생하는 실질적인 갈등은 구체적인 생활세계에서 일어난다. 이것이 문화적 상호 이해를 위한 세심한 관심과 배려가 필요한 이유이다. 따라서 한반도의 통일과정에서 예상되는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세대, 성, 계층, 직능, 지역 등의 차이에 따른 문화갈등의 양상이 심층적으로 연구될 필요가 있다.
남북관계가 여전히 냉전적인 체제갈등의 단계에 머물러 있는 한반도에서는 아직도 사회문화적 차원의 통일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통일논의는 시스템 통합이나 통일비용이라는 기능적 차원에서, 혹은 민족화해나 민족통합이라는 정서적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을 뿐이다. 이런 의미에서 통일의 사회문화적 차원을 다루고 있는 이 책은 그간 국내 통일논의에서 나타난 심각한 공백을 메우고 한반도 통일의 바람직한 모습을 구상함에 있어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