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금 52년 간의 군복무를 마치려고 합니다. 제가 처음 군에 입대할 때, 20세기가 시작되기도 전이었습니다만, 그것은 제 소년 시절의 모든 희망과 꿈의 실현이었습니다. 제가 웨스트 포인트 연병장에서 임관하던 그 날 이후로 세상은 여러번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희망과 꿈도 오래 전에 사라졌지만, 저는 그 시절 가장 즐겨
부르던 어느 軍歌의 후렴 한 구절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노래는 '老兵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고 당당하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노래 속의 老兵처럼 이제 저는 제 軍생활을 마감하고 사라지려 합니다. 神께서 의무에 대한 깨달음을 주신 바에 따라, 자신의 의무를 다하려고 애쓴 한 노병으로 말입니다. 감사합니다.
--- p.173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한장의 약속어음을 결제 하기 위해 이곳 수도 워싱턴에 모인 것입니다. 미국을 건국한 사람들이 헌법가 독립선언서에 거창한 말들을 써넣었을 때 그들은 모든 국민들이 상속받을 한장의 약속어음에 서명을 한 셈입니다 그 약속어음이란, 모든 인간에게 삶과 자유, 행복추구라는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보장한다는 약속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이, 우리 흑인들에 관한 이 약속어음이 보장하는 바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비낟. 미국은, 이 신성한 의무를 존중하지 않고, 흑인들에게 부도수표를 주었습니다. ... 중략...나의 네 자녀들이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에 따라 평가받는 그런 나라에 살게 되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 p.99,105
"In war there can be no substitute for victory."
"戰爭에서는 승리 이외에 다른 代案이 없습니다."
<연설의 배경>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는 1903년에 육군 사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육군 복무를 시작했다. 그는 군에서는 極東通(극동통)으로 알려질 만큼 극동 지역의 정세에 해박한 지식과 전략을 갖추고 있었다. 필리핀에서 미국 극동군 사령관으로 근무한 바 있으며 태평양전쟁을 맞이해 남서태평양 지역 사령관으로 對日 작전을 지휘하면서 일본을 항복시키고 일본 점령군 최고사령과이 되기도 했다. 1950년 6 · 25 동란이 일어나자 UN군 최고사령관으로 부임했고, 특히 인천상륙 작전을 지휘해 戰勢(전세)를 역전시켜 적을 韓滿 국경까지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이어 중공군의 개입으로 다시 후퇴를 하게 되자 중공에 대한 반격을 강력히 주장했고, 이로 인한 트루먼 대통령과의 대립으로 1951년 사령관의 지위에서 해임된다. 맥아더 장군은 軍 전략가로서뿐만 아니라 날카로운 통찰력과 설득력을 갖춘 유려한 문체의 좋은 글들을 많이 남긴 문장가로도 알려져 있다. 트루먼 대통령에 의해 사령관직에서 해임되어 귀국한 뒤, 1951년 4월 19일 미국 상하 양원 합동회의에서 남긴 다음의 고별 연설은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는 마지막 말이 시사하듯이, 확고한 신념과 뛰어난 전략으로 수많은 전쟁을 치러온 최고 군인의 조국에 대한 우려와 자신에 대한 유감, 감회를 설득력 있고 차분하게 드러내고 있다.
---pp.154~155
"In war there can be no substitute for victory."
"戰爭에서는 승리 이외에 다른 代案이 없습니다."
<연설의 배경>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는 1903년에 육군 사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육군 복무를 시작했다. 그는 군에서는 極東通(극동통)으로 알려질 만큼 극동 지역의 정세에 해박한 지식과 전략을 갖추고 있었다. 필리핀에서 미국 극동군 사령관으로 근무한 바 있으며 태평양전쟁을 맞이해 남서태평양 지역 사령관으로 對日 작전을 지휘하면서 일본을 항복시키고 일본 점령군 최고사령과이 되기도 했다. 1950년 6 · 25 동란이 일어나자 UN군 최고사령관으로 부임했고, 특히 인천상륙 작전을 지휘해 戰勢(전세)를 역전시켜 적을 韓滿 국경까지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이어 중공군의 개입으로 다시 후퇴를 하게 되자 중공에 대한 반격을 강력히 주장했고, 이로 인한 트루먼 대통령과의 대립으로 1951년 사령관의 지위에서 해임된다. 맥아더 장군은 軍 전략가로서뿐만 아니라 날카로운 통찰력과 설득력을 갖춘 유려한 문체의 좋은 글들을 많이 남긴 문장가로도 알려져 있다. 트루먼 대통령에 의해 사령관직에서 해임되어 귀국한 뒤, 1951년 4월 19일 미국 상하 양원 합동회의에서 남긴 다음의 고별 연설은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는 마지막 말이 시사하듯이, 확고한 신념과 뛰어난 전략으로 수많은 전쟁을 치러온 최고 군인의 조국에 대한 우려와 자신에 대한 유감, 감회를 설득력 있고 차분하게 드러내고 있다.
---pp.154~1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