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두교에 전해 오는 이야기에 이런 것이 있다. 이세상이 처음 이루어졌을 때 인간에게는 행복이 미리 주어져 있었다. 그러니 인간들이 얼마나 하염없이 늘어져 살았겠는가. 보다못한 제석천이 인간들에게서 행복을 회수해 버렸다. 그런데 문제는 회수한 행복을 어디에 숨겨 두느냐는 것이었다.
한 신이 제안하였다.
'깊은 바다 속에 감춰 두면 어떨까요?'
제석천은 고개를 저었다.
'인간들의 머리는 비상하다. 바다 속 쯤이야 머지않아 뒤져서 찾아 버릴 것이다.'
다른 신이 제안하였다.
'히말라야 정상에 감춰 두면 어떨까요?'
이번 역시도 제석천은 고개를 저었다.
'인간들의 도전과 탐험은 따를 동물이 없다. 그러니 제아무리 높은 산 위에 숨겨 두어도 이내 찾아 버릴 것이다.'
궁리하고 궁리한 끝에 제석천은 무릎을 치고 일어났다.
'인간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 두기로 하자. 인간들의 머리가 비상하고 도전하는 탐험 정신이 강해도 자기들 마음속에 숨겨져 있는 행복을 아아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물질 파고가 높은 현대에 있어 깊은 것을 생각케 하는 우화가 아닐 수 없다. 사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바깥을 향한 갈퀴질에 지칠 대로 지쳐 가고 있는 중이다. 물론 이 갈퀴질은 행복 찾기이다. 그러나 죽음을 맞는 이들은 말하곤 한다. 그동안 눈코 뜰 사이도 없이 갖은 수모를 당하면서 갈퀴질해서 모아 놓은 것이 행복이 아니라 검불이었노라고.
나는 얼마전 두 아이를 둔 주부의 짧은 수기를 읽었다. 이분의 글은 남편의 귀가 시간이 늦어서, 아이들이 공부를 않고 속을 썩여서 , 돈이 없어서 등 짜증 많은 나날 가운데의 '어느 날 갑자기'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머리가 깨어질 듯이 아파서 병원에 가 검사를 해 보니 결과가 뇌종양으로 나왔다는 것이다. 성공보다도 사망률이 훨씬 높은 수술 날짜가 잡히자 그녀는 집으로 돌아와 모든 것을 정리했다고 했다. 빌린 돈이며, 받아야 할 것이며, 돌려주어야 할 것이며..제일로 많이 운 것은 옷장을 열어 아이들 옷을 정리할 때였다고 한다. 나중에는 다용도실로 들어가 빈 세탁기를 돌리며 넋 놓고 울었다는 여인. 이여인은 수술실로 들어가면서 남편한테 '미안해요.'라는 말을 남겼는데, 평소에 무뚝뚝하기로 소문난 남편이었는데도 바닥에 풀썩 주저앉아 버리더라고 했다. 그러나 이 여인의 뇌종양 수술은 다행히 성공이었다. 수술을 받기 위해 머리를 깎았다고 하자, 큰아이는 저금통을 깨뜨려서 가발을 사 오고, 작은아이는 모자를 사오고.......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병원을 나서는데 기쁨에 몸이 나뭇잎처럼 떨리더라며 이렇게 글을 맺고 있었다.
'나는 지금 짜증 낼 시간이 없다. 오늘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어떻게 해 줄까? 저녁 반찬은 무엇을 할까? 남편 마중을 나가서 무슨 장난말을 걸까? 온통 행복할 궁리에도 부족한 시간이다.'
--- 본문 중에서
회사에 여고를 갓 졸업한 신입 사원이 들어왔다. 키도 작고 얼굴도 복숭아처럼 보송송하다. 어쩌다 사원들끼리 우스갯소리라도 하면 빰에 먼저 꽃물이 번진다.
한번은 실수한 일이 있어서 나무랐더니 금방 눈물을 방울방울 떨어뜨렸다.
"우유를 더 좀 먹어야겠군."
혼자말을 하면서 돌아서다 말고 물어보았다.
"올해 몇 살이지?"
그러자 신입 사원을 손수건으로 눈 밑을 누르면서 가만가만히 대답하였다.
"스무살이에요."
여자 나이 스무 살...... 소녀에서 성인으로 턱걸이를 하는 저 나이. 무엇이거나 그저 우습고 부끄럽기만 한 저 시절. 나는 문득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키웠다. 우리 어머니가 하늘의 별로 돌아가신 나이가 바로 저 스무 살이었던 것이다.
열일곱에 시집와서 열여덟에 나를 낳고 꽃다운 스무 살에 이 세상살이를 마치신 우리 어머니, 그렇기 때문에 나는 어머니의 얼굴을 모른다. 그러나 어머니의 얼굴은 기억하지 못해도 어머니의 내음은 때때로 떠오르곤 한다.
바닷바람에 묻어 오는 해송 타는 내음.
고향의 그 내음이 어머니의 모습을 아련히 보이게 한 날을 기억한다. 유년 시절, 눈발이 희끗희끗 날리던 날이었다.
---p.69-70
그제야 나는 비로소 스무 살 우리 어머니의 깊은 마음을 짚었다. 아이 우는 소리에 타지 않을 어머니의 속이 어디 있을까. 그러나 달려오고 싶은 마음보다도 시누이들한테 눈치 보일까 봐 자리를 얼른 뜨지 못했을 우리 어머니. 아무리 울보라고 소문난 나였대도 때로는 어머니 품에서 웃어보이기도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누가 볼까 봐 내 어린 뺨에 볼 한번 비비는 것도 우리 어머니는 참 어려웠으리라. 오늘도 하얀 박속 같은 스무 살 우리 어머니는 그 앳됨 그대로를 지니고 사진틀 속에서 당신보다 더 늙어 가는 아들을 말없이 내려다보고 계신다. 풋콩에서와 같은 비린내 나는 부름이 들릴 듯도 한데...
--- p.73
5월의 아침은 첫눈 온 날 비로 마당을 쓴 것처럼 신선하다. 새벽잠을 털어 낸 아낙이 머리에 하얀 수건을 쓰고 대문을 따면 바람이 한 바퀴 뒤꼍까지를 돌아 밤 자국을 마저 헹구고 성근 대밭으로 빠져나간다.
그때부터이다. 밤새 달그락거리며 살강 밑을 오고 가던 쥐들이 숨고 나면 외양간의 점잖은 소가 그의 목에 달린 쇠방울로 기척을 한다.
감나무 밑에는 감꽃이 숭숭숭 져 있고 담장 밑 붓꽃은 이제 막 파란 잉크빛으로 피어나고 있고 담장을 타고 오르는 호박순은 또 하룻밤 사이에 한 뼘이나 자랐다.
어디 5월의 밤사이에 생긴 일이 이뿐이랴. 텃밭에는 고추꽃이 이울면서 고추가 갓 생겨나고 가지 또한 꽃이 이운 자리에는 개도토리처럼 가지가 빠끔히 비어져 나오고 있다. 그리고 또 완두콩 두렁에는 보랏빛으로 핀 완두콩꽃이 한창인데 달팽이란 녀석이 엉거주춤 나와 앉아 꽃향기를 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기도 하다.
이 아침 길을 걸어 보라. 풀숲에서 묻어 드는 이슬로 하여 바짓가랑이는 후줄근히 젖고 연못에 비껴들어 있는 하늘은 어이 저리도 청순한가. 거기에 떠 있는 한 송이 수련은 여기 지상이 좋아 얼른 하늘로 돌아가지 못한 별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5월. 이 중에서도 나를 황홀케 하는 것이 있다. 이것은 보리밭 언덕이고 방죽길이고 잿가이고를 가리지 않고 하얗게 피어나는 찔레꽃이다.
어린 시절 우리들은 소꿉살림을 살 때, 이 꽃잎을 따서 조개 껍데기에 담아 밥으로 삼곤 하였는데 이 꽃향기가 너무도 아까워 입으로보다는 코로 더 많이 냠냠거렸던 것을 기억한다.
아니, 찔레꽃에 대한 상념도 보리처럼 익어 가고 있는 5월이다.
문정희 시인은 <찔레>라는 시에서 이렇게 읊고 있다.
꿈결처럼 / 초록이 흐르는 이 계절에 / 그리운 가슴 가만히 열어
한 그루 / 찔레로 서 있고 싶다.
사랑하던 그 사람 / 조금만 더 다가서면 / 서로 꽃이 되었을 이름
오늘은 / 송이송이 흰 찔레꽃으로 피워 놓고
먼 여행에서 돌아와 / 이슬을 털 듯 추억을 털며 / 초록 속에 가득히 서 있고 싶다.
그대 사랑하는 동안 / 내겐 우는 날이 많았었다. (중략)
그래, 지금 사랑에 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참깨를 털 듯 추억을 털어 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랑의 아픔이 꽃이 아니라 가시가 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5월에는 초록이 소록소록 쟁이는 달이므로 울음도, 추억도, 아픔조차도 아름다운 녹음 속에 감싸안을 수 있는 것이다.
---pp.1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