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이 결국 사람 사는 이야기이듯, 학생들의 질문도 그들의 삶을 온전히 담고 있습니다. 다양하게 나오는 질문은 그 자체로 충분한 힘을 가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별다른 요소를 덧붙이지 않아도, 그 질문들만으로 훌륭한 수업이 되곤 합니다. 이 책은 이렇게 재기발랄한 여고생들의 다양한 생각과 고민이 듬뿍 담긴 소설 수업을 ‘소설 형식’으로 꾸며본 것입니다.
--- pp.4~5
숨 막히도록 규제가 빡세지만 대학은 잘 가는 학교와, 두발부터 다 자유롭지만 대입 실적은 그닥인 학교. 너라면 어디 갈래?
--- p.68
“선생님, 인문학이란 게…… 이렇게 사람들 마음 아픈 거 공부하는 거예요?”
“하하, 음 뭐, 그렇다고 할 수 있지.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해서 공부하는 거니까.”
“그렇구나. 그럼 전……, 이젠 인문학 안 배울래요.”
“으응? 아니 왜? 미지 같은 인문학 영재가.”
“아니에요. 전 별로 상처받은 게 없어서요. 다른 사람 아픈 걸 이해하는 게 잘 안 되나 봐요.”
어느새 내 뺨 위로 눈물이 흘렀다. 나는 고개를 조금 돌려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린 채 슬쩍 눈물을 닦아 냈다.
“그거면 돼, 미지야. 그거면 돼. 같이 옆에 있어 주고, 같이 울어 주면 돼. 미지는 상처가 없다고? 그래, 그럴 수 있지. 하지만, 그래서 미지 같은 사람이 더 필요한 거야. 미지는 튼튼하니까 누군가 아파서 쓰러졌을 때 도와 줄 수 있잖아?”
--- pp.237~238
나는 빨간약을 손에 꼭 쥐고 밤하늘을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다시, 상처난 무릎을 내려다보았다. 나 자신을 존중하는 것에서부터 인문학은 시작한다는 말을 기억해 냈다.
‘그래, 나는 나다. 내가 그 친구들, 그 아픈 마음들, 다 알거나 제대로 치료해 주지는 못할지라도, 작은 상처는 감싸 줄 수 있지. 빨간약을 바르고 후후 불어 줄 수는 있지. 곁에 있어 줄 수는 있지. 엎어진 김에 누워도 된다고, 다시 일어날 거면 도와주겠다고, 그렇게 해 줄 수는 있지. 그렇게 해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다시 일어나서 다시 나와 함께 살아가 준다면, 그걸로 된 거 아닌가. 그래, 나는 빨간약이다. 그것만으로도 괜찮아.’
--- pp.240~2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