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서론
1.1 언어의 특징
언어(language)란 무엇인가? 누구나 직관적으로 언어가 무엇인지 안다. 그러나 이 질문에 간단히 대답하기란 쉽지 않다. 일단, 언어란 누군가가 다른 이에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라는 사실에는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그리하여 만약 언어를 ‘의사전달도구’로 정의한다면, 여기에는 인간의 언어뿐만 아니라 동물의 의사전달방식도 포함될 것이다. 만약 언어를 ‘인간이 사용하는 의사전달도구’로 정의한다면, 여기에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과 신문, 잡지, 문학 작가들의 글, 몸짓(body language) 등도 포함될 것이다. 언어의 정의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하지만, 이 책에서는 언어의 정의를 ‘의사전달을 위해 인간의 발성기관에서 만들어진 관습적인 기호들의 체계’로 정의하겠다. 이 정의에 따라 언어의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1.1 기호로서의 언어
언어는 기호(sign)들로 구성되어 있다. 기호란 겉으로 드러나는 형태(form)와 그 형태가 전달하는 의미(meaning) 또는 기능(function)의 이원적 구조로 되어있다. 우리는 인간의 언어가 단어(word)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안다. 단어들도 일종의 언어기호이다. 가령 desk라는 단어는 d-e-s-k라는 일련의 소리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이 이 단어의 형태이다. 그리고 desk라는 단어를 들으면 우리는 이것이 공부할 때 사용하는 가구의 일종임을 안다.
이것이 이 단어가 전달하는 의미이다. 그런데 언어기호는 단어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기호의 단위가 구(phrase)나 문장(sentence) 같이 더 클 수도 있고, 단어보다 더 작을 수도 있다. 흔히 단어가 의미나 문법기능을 지닌 가장 작은 언어 단위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상 가장 작은 언어기호는 단어가 아니라 형태소(morpheme)이다. 가령 위에서 예를 든 desk란 단어는 한 개의 형태소로 되어 있는 단어이다. 그러나 unhappy는 un-과 happy의 두 개의 형태소로 구성된 단어이다. un-이 독립된 단어가 아닐 뿐이지 ‘not’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desks는 desk와 복수의 기능을 지닌 -s의 두 개의 형태소로 구성된 단어이다. 이때 desk와 happy처럼 독립할 수 있는 형태소를 자립형태소(free morpheme)라고 한다. un-과 -s처럼 단어로 독립할 수 없는 형태소를 의존형태소(bound morpheme)라고 한다. 의존형태소는 다른 말로 접사(affix)라고 부르기도 한다. 접사는 위치에 따라 접두사(prefix)와 접미사(suffix)로 나뉜다. 접두사는 단어의 중심이 되는 어간(stem) 혹은 어근(root, base) 앞에 나타나는 접사를 말하는데, un-, in-, re-, mis-, dis-, over- 등이 그러한 예이다.
접미사는 -s처럼 어간의 뒤에 나타나는 접사로서, -ness, -ion, -ive, -ly, -ed, -ing 등이 있다. unhappy, desks처럼 한 개의 어간에 한 개 이상의 접사를 붙여서 단어들을 확장하는 방식을 접사첨가(affixation)라 부른다. impossibility, international, manliness, dehumidifier, reactivation은 각각 몇 개의 형태소로 되어 있는지 분석해 보자.
반면에 railroad란 단어는 rail과 road의 두 개의 자립형태소로 구성되어 있다. 두 개나 그 이상의 자립형태소로 구성된 단어를 합성어(compound)라고 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새로운 단어를 만드는 것을 합성(compounding)이라 한다. boyfriend, postoffice, blacklist, bittersweet, highborn, pickpocket, spoon-feed는 모두 2개의 자립형태소로 구성된 합성어이다. 이와 같이 2개의 형태소로 구성된 합성어가 영어에 가장 흔하지만, father-in-law, sergeant-at-arms, master of ceremonies, jack-in-the-box, run-of-the-mill처럼 더 긴 것도 있다. 또한 합성과 접사첨가는 sleepwalking, ungentlemanly처럼 동시에 일어날 수 있다.
1.1.2 기호의 자의성
언어기호에 대한 중요한 사실 중에 하나는 대부분의 경우 기호의 형태와 의미 사이에 자의성(arbitrariness)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자의성이란 형태와 의미 사이에 필연적 연관성이 없고 일종의 사회적 약속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뜻이다. 따라서 기호의 의미를 형태로부터 예측할 수 없다. 원어민화자가 desk란 단어의 의미를 아는 것은 어릴 때부터 그렇게 배웠기 때문이지, d-e-s-k라는 발음이 필연적으로 ‘책상’을 의미해야 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
만약 언어기호가 자의적인 것이 아니라 비자의적(즉 필연적)인 것이라면 모든 언어에서 ‘책상’이라는 단어는 d-e-s-k로 발음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어에서는 ‘책상’으로, 프랑스어에서는 bureau, 독일어에서는 Schreibtisch로서, 형태상 전혀 닮지 않았다. 언어는 기호로 구성되어 있고, 그 기호는 일종의 사회적 약속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위의 언어의 정의에서 언급하였듯이, 언어는 관습적인(conventional) 특성을 지닌다고 말할 수 있겠다.
언어의 기호 중에는 비자의적이고 보편적인 특징을 보이는 예도 소수 존재한다. 소위 말하는 ‘의성어(onomatopoeia)’가 대표적인 예이다. 의성어는 자연의 소리를 모방하기 때문에 여러 언어에서 비슷한 형태를 지니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영어의 개 짖는 소리 bow-wow([bawwaw])는 독일어에 wau-wau([vawvaw]), 프랑스어의 ouah-ouah([wawa])이다. 영어의 고양이 소리 miaow([miaw])는 프랑스어에서도 miaou([miaw]), 독일어에서 Miau([miaw])로서, 발음상 상당한 유사성을 보인다. 그러나 의성어마저도 모든 언어에서 완전히 같지 않다.
개 짖는 소리의 경우 영어와 독일어가 상당히 비슷하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다. 한국어의 경우 ‘멍멍’으로 차이가 더 벌어진다. 동일한 소리를 듣고도 각 언어마다 다르게 인지하기도 하고, 또 서로 다른 언어자원을 가지기 때문에 모방하는 방식이 다른 것이다. 따라서 의성어도 어느 정도의 자의성을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___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