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연구의 이론적 배경과 다루는 대상의 한정
본 저서의 이론적 입장은 인지언어학에 기반을 둔다. 인지언어학에서는 의미를 인지 현상으로 보고 그 특성을 인지과정에서 찾는다. 따라서 인지언어학에서는 의미와 개념화의 구별을 하지 않는다(래너커, R. Langacker 1987, S. 5). 그러므로 바람직한 의미론은 개념과 같은 추상적인 개체의 구조분석과 명시적 기술을 시도해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본 저서에 쓰이는 ‘도식(schema)’은 대상, 사건을 이해하기 위한 개념의 틀을 뜻한다. 인지언어학에서 통용되는 주요 용어들이 이 연구에서도 쓰인다. 가령 ‘모습’과 ‘바탕’, 변별적 현저성, 탄도체(trajector)와 지표(landmark)등을 들 수 있다.
일반적으로 언어유형학 연구는 이론적이고 추상적인 학문분야인데 반하여 대조언어학 및 언어교육은 실제적으로 응용가능한 분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본 저서는 이러한 이론과 실제의 이원론적 구분이 아니라, 언어교육을 위해서는 두 분야가 긴밀하게 연관되어 고찰되어야 한다는 기본 입장에서 출발한다. 이런 점에서 실제 쓰임에 기반을 둔 인지문법이 중요하며 인지 언어유형학적인 연구와 대조 연구는 교육학적인 측면에서 이러한 인지문법의 토대를 이룬다.
1장에서는 인지언어학에 토대를 둔 본 저서의 이론적 입장을 밝히고 난 뒤, 다음의 2가지 이론적 배경도 이 연구의 전반에 걸친 이론적 배경을 이루고 있음을 서술하고자 한다.
첫째, 코제리우(E. Coseriu)의 의미구분에 따라 의미를 3가지로 나누었다. 그에 따르면 의미는 지시적 의미(Bezeichnung), 개별 언어적 의미(Bedeutung) 그리고 의의(Sinn)로 구분되는데, 이에 따라 1부에서는 중점적으로 공간을 표현하는 전치사와 언어외적 현실 간의 관계를 다루었기 때문에 언어보편성의 문제가 주로 논의된다. 언어보편성의 문제와 연관되어, 의미표상이나 개념체계 등을 다룰 때에는 술어논리도 활용하여 의미 분석을 시도하고자 한다.
둘째, 레벨트(W. J. M. Levelt)의 언어생성모델을 수정한 이강호(2007a)의 언어생성모델을 이론적 배경으로 한다. 이 모델에 따르면 레벨트의 의미표상은 개별 언어적 의미, 개념체계는 지시적 의미에 해당하며, 그리고 문맥정보(CT)는 사용상의 의미를 구성하는데 본질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다음에서 본 저서를 3부로 구분한 근거로서의 의미의 세 가지 종류에 대해서 먼저 서술하고, 이어서 레벨트의 언어생성모델을 수정한 저자의 모델을 소개하고자 한다.
1. 의미의 3가지 종류(Bedeutung, Bezeichnung, Sinn)
저자는 어느 특정한 상황에서의 발화가 가지는 기능을 코제리우의 견해에 따라 “텍스트내의 의의(Sinn)”라고 명명한다. 이러한 “텍스트상의 기능(Textfunktion)”은 화자가 발화할 때, 청자에게 전달하려고 하는 내용과 일치하기 때문에 “화자의 의도(Intention des Sprechers)”라고도 부를 수가 있다. 그라이스(H. P. Grice)가 “의미”의 정의를 “화자의 의도”라고 내린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모든 텍스트는-문학 텍스트에서부터 일상생활에 쓰이는 텍스트에 이르기 까지-어느 특정한 “텍스트 내의 의의(Sinn)”를 가지게 된다.
“텍스트에서 일어나는 것, 혹은 발생하는 것으로 묘사되는 모든 것은 사용상의 의미 혹은 의의를 가지는데, 이러한 의미는 통상 서술되는 표현 자체와 직접적으로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텍스트 상에서 비로소 찾아내야만 하는 것들이다.”
여기서 서술되는 표현 자체 즉 “개별 언어적 의미(Bedeutung)”와 우리가 텍스트에서 찾아내야 하는 것으로서의 “텍스트 내의 의의”는 통상 서로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일상생활의 언어 사용에서 다음과 같은 언어 사용을 흔히 접하게 된다. 어떠한 문장이나 텍스트를 읽고도 그것의 순수한 언어적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는 경우다. “이 모든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Was bedeutet dies alles?: What does it all mean?)” 이 질문에서 “was(=what)”는 “텍스트 내의 의의”를, “dies alles: it all(이것들)”은 “개별 언어적 의미”를 각각 나타낸다. 구체적인 예로서 프란츠 카프카(F. Kafka)의 문학작품을 들기로 한다. 카프카의 작품에서 언어적으로 매우 평이하고도 일상적인 문체, 특히 “군더더기가 없고, 정확하며, 심지어 매우 꼼꼼한 사실묘사에 집착한 나머지 관청에서 쓰이는 스타일의 문체”가 쓰인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주지할 만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렇게 간략하고 일상적인 문체로 쓰여 졌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고 질문하게 되는 것이다. “개별 언어적 의미(Bedeutung)”와 “텍스트 내의 의의(Sinn)”, 그 둘 사이의 관계를 따지자면, 확실히 전자가 후자를 우선한다. 왜냐하면 텍스트는 언어적으로 형상화된 세계와 연관되기 때문이다.
“개별 언어적 의미”는 언어적으로 주어진, 더욱 상세히 말하자면 개별 언어적으로 주어진 내용을 뜻한다. 이것은 어떠한 개별 언어 예를 들어 독일어나 한국어 등의 언어자체 내에서 그리고 이러한 언어의 대립적 관계를 통해 주어진 내용을 말하는데, 그 내용은 문법 영역이나 어휘 영역에도 해당된다. 개별 언어들의 의미가 여러 가지 형태로 복잡하게 조합된 틀은 개별 언어적 연구의 고유한 본령을 이룬다.
“개별 언어적 의미”라는 개념은 무엇보다도 “대조언어학”에서 필요한데, 왜냐하면 이러한 개념을 통해 대조되는 개별 언어들이 각각 무엇이 다른 것인가를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
“지시적 의미(Bezeichnung)”는 현실세계에서 그에 상응하는 언어외적인 것과 관계한다. 지시적 의미는 사물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하며, 이러한 세계는 언어를 통해 형상화된 세계로서 비로소 언어를 통해서만 도달될 수 있는 세계이다. “개별적 의미”는 개념적인 것을 말하고 “지시적 의미”는 그 반면에 외부세계의 대상과 관계한다고 일반적으로 말할 수 있겠다. 사람들이 동일한 사물이나 사태를 여러 가지 상이한 개별 언어적 의미로 관계시킨다는 것은 일상생활에서 흔히 발견된다. 마찬가지로 사물은 상이하게 파악될 수 있으며, 각각의 “개별 언어적 의미”는 사물이나 사태의 어떤 특정한 파악에 상응한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코제리우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언어외적인 현실 세계에서 어떤 명확한 영역이 그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낮’과 ‘밤’에 대한 개념으로서도 명확치 않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 원리적으로 볼 때, 언어적 차이가 현실에서의 객관적 영역과 일치할 수도 있으나 꼭 일치해야만 한다는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The fact that in extralinguistic reality there are no clear bound-aries between day and night does not mean that the concepts ‘day’ and ‘night’ are unclear as concepts. […] As a principle, it can be stared that linguistic distinctions may, but need not conincide with objective boundarie in reality.(Coseriu 1974, S. 141~142)”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