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일 강은 그저 평화롭게 흐르지 않고 특히 삼각주 지역에서 해마다 높이 범람하는 특성을 지녔는데, 고대 이집트에서는 이 범람의 주기를 잘 계산하여 농사에 최대한 이용하는 것이 경제와 국가의 안정을 위해 매우 중요한 지식이 되었다. 이집트에서 기하학, 천문학이 발달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헤로도토스의 말이다.
(…) 이집트인들은 태양년을 발견하고 그 흐름을 12부분으로 분할한 최초의 민족이다. 이들은 이런 지식을 별들을 관찰하여 얻어냈다. 내 생각에 이집트인들은 그리스인들보다 훨씬 현명하게 한 해를 계획한다.
비단 이집트 문명뿐 아니라 고대 농경 사회에서는 어디든 물을 다스리는 일, 즉 관개(灌漑)와 치수(治水)가 국가의 존립을 좌우하는 중대사였다. 전설에 따르면 고대 중국에서 요(堯) 임금이 왕위를 순(舜) 임금에게 물려준 것 역시 그가 황하의 물길을 관리하는 데 큰 공을 세웠기 때문이다. 이렇게 관개 치수가 사회의 발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문명을 일컫는 수력 문명(hydraulic civilization)이라는 전문 역사 용어도 있다. (중략) 독일의 역사학자 비트포겔(Karl August Wittfogel)에 따르면, 고대 오리엔트 각 지역마다 강력한 왕권이 등장한 것은 이렇게 물을 다스려야 할 사회적 필요성이라는 공통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 pp.26-27「나일 강의 선물 이집트 문명」중에서
스파르타의 군국주의와 단순한 생활 방식은 후대에 ‘스파르타 식 농담(Laconic joke)’ 혹은 ‘스파르타 식 어법(Laconic phrase)’이라고 불리게 되는, 군더더기 없이 간결한 화법을 낳았다. (중략) 플루타르코스는 산문집 『모랄리아Moralia』에서 고대 스파르타인들의 간결한 명언을 다수 정리하여 소개하고 있다. (중략) 페르시아 전쟁 당시 페르시아 장수가 무기를 내려놓고 항복하라고 최후통첩을 보내자 스파르타 왕 레오니다스는 이렇게 대답했다.
“직접 와서 가져가라.”
이 말은 그리스어 발음 그대로 ‘몰론 라베(Molon Labe)’라고 쓰기도 하는데, 지금도 그리스 군의 모토로 사용된다고 한다. (중략) 여성들도 입담이라면 남자에게 뒤지지 않았다. 스파르타 여성들이 아들이나 남편이 전쟁에 나갈 때면 한 말은 “부디 몸조심하세요.”, “사랑해요.”가 아니라 다음과 같았다.
“그걸 들고 오든지, 그 위에 누워 오든지.”
여기서 ‘그것(it)’은 스파르타 전사들의 중요한 전투 장구인 방패(shield)를 말한다. 즉 방패를 ‘들고(with)’ 온다는 말은 전쟁에서 생환한다는 것이고, 방패 ‘위에(on)’ 누워서 온다는 말은 시체가 되어 돌아온다는 얘기다. 이런 말을 아들이나 남편에게 태연히 하는 것을 ‘쿨’하다고 해야 할지 냉담하다고 해야 할지 심히 헷갈린다.
--- pp.114~116「짧지만 강한 스파르타 식 화술」중에서
폼페이는 로마 시대에 인기 있는 휴양 도시로 승승장구하다가 서기 79년 베수비오 화산(Mount Vesuvius)이 폭발하면서 순식간에 화산재에 묻혀 버렸다. 화산 폭발 직후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Herculaneum) 두 도시 일대에서 벌어진 아비규환의 참상을 전하는 문헌으로는 로마의 정치가이자 역사가 플리니우스가 묘사해 놓은 것이 유명하다. (중략)
[현장에 있었더라면] 여자들의 비명, 어린이들의 절규, 남자들의 고함을 들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식을, 부모를, 남편을 부르며, 대답하는 목소리로 서로를 확인하려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운명을, 또 어떤 이는 자기 가족의 신세를 한탄했습니다. 죽음의 공포 때문에 차라리 죽기를 소망하거나, 신들을 향해 [구원을 바라며] 손을 쳐든 이들도 있었지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이 이제는 아예 없다고, 그리고 우리가 들어 오던 그 최후의 끝없는 암흑이 세상에 내렸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때 현장에서 목숨을 잃은 로마인들에게는 정말 미안한 말이지만, 그 가공할 재앙이 후손들에게는 조금은 축복이기도 했다. 도시 전체가 화산재로 뒤덮이면서 일종의 박제 표본처럼 되어 이후 1,600여 년간 완벽한 상태로 보존되었기 때문이다. (중략) 폼페이 유적에 들어서면 문자 그대로 타임머신을 타고 딱 서기 1세기의 로마로 돌아간 느낌이다.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된 잘 닦인 중앙 도로를 걷다 보면 당장에라도 길모퉁이에서 토가(toga)를 입은 로마인들이 불쑥 나타나 말을 걸 것만 같은 느낌에 사로잡힌다.
--- pp.210-211「폼페이 유적, 로마의 타임캡슐」중에서
로마 제국의 쇠락과 멸망의 원인을 규명하고자 지금까지 수많은 학자들과 저술가들이 여러 가지 이론을 제시해 왔다. 자유 시민 계급의 붕괴, 북방 민족의 유입에 따른 국가적 정체성의 상실, 특히 후기로 갈수록 심각해졌던 재정 적자 및 통화 가치 하락 등의 다양한 이론들이 거론되었는가 하면, 그저 시스템으로서의 수명이 다해 망했을 뿐이라는 일종의 자연사 이론도 등장했다. (중략) 에드워드 기번의 경우, 로마의 쇠퇴를 문화적 쇠퇴와 연결한 것이 흥미롭다. 로마가 그 성공과 성취에 도취된 바로 그 순간 쇠락의 싹이 잉태되고 있었다고 지적하는 다음의 문장은 인상적이다.
이 기나긴 평화와 로마인들의 늘 변함없는 통치 체제는 천천히 은밀하게 작용하는 독약을 제국의 신체 기관 속에 주입했다. 사람들의 정신은 점차 똑같은 수준으로 감퇴했고, 천재성의 불길은 꺼져 버렸으며, 심지어 무인 정신마저 증발했다. (…) 그들은 통치자의 뜻에 따라 법률과 총독을 받아들이고, 국방은 용병 군단에 의탁했다. 지극히 용맹한 지도자의 자손도 시민과 종복이라는 지위에 만족했다. 그나마 큰 포부를 가진 젊은이들조차 궁전에서 일하거나 황제의 근위대에 가입했다. 그리고 정치적 세력이나 결속의 기회를 박탈당한 채 버려진 속주들은 서서히 나른한 개인주의의 무관심 속으로 침잠해 갔다.
기번은 개척 정신과 상무 정신이 실종되고,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이들이 일신의 안위를 좇아 궁전과 황제의 깃발 아래로, 즉 근위대에나 들어가려고 하던 세태를 슬쩍 꼬집고 있다.
--- pp.213-214쪽「그리스도교가 로마를 쇠락하게 했을까」중에서
역사책인 정사 『삼국지』는 팩션인 『삼국지연의』를 읽는 것과는 다른 독특한 재미를 선사한다. ‘조조의 재발견’만 해도 그렇다. 정사 『삼국지』의 첫 권은 「무제기武帝紀」, 바로 조조의 일대기인데, 그 속에서 드러나는 조조의 면모는 『연의』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중략)
여포는 유비를 공격하여 하비를 취했다. 유비가 [조조에게] 도망 왔다. 정욱이 공[조조]에게 이르기를, “유비를 보건대 크게 민심을 얻을 만한 영웅의 자질이 있사옵니다. 다른 사람 밑에서 끝낼 인물이 아닙니다. 빨리 서두르느니만 못합니다.” 했다.
“빨리 서두르느니만 못하다.(不如早圖之)”-에둘러 말하기는 했지만 조조의 참모인 정욱은 속히 유비를 죽여 후환을 없애라고 충고한 것이다. 그런데 이때 조조의 대답이 매우 인상적이다.
공이 말하기를, “지금 당장은 영웅을 거둘 때다. 한 사람을 죽여 천하의 민심을 잃을쏘냐. 아니 된다.(不可)” 했다.
‘불가(不可)’-한자를 잘 모르는 독자라도 이 말 한마디의 단호한 느낌은 짐작할 수 있으리라. 이 대화에 따르면 조조, 확실히 대인배다. 유비를 일부러 살려 둔 조조는 우물쭈물하다가 실기하여 할 수 없이 유방을 살려 준 항우와는 멘탈이나 스케일 자체가 다르다. 조조는 천하 민심의 흐름상 유비 같은 영웅을 거두어 보호해야 할 때라고 결론을 내린다. 또 유비가 공을 세우고 업적을 이뤄 봐야 결국에는 모두 자기 품 안에 들어올 것이라는 여유도 느껴진다. 남들보다 긴 호흡으로 세상을 보는 것도 분명 리더의 자질이다.
--- pp.311-312「『삼국지』 vs. 『삼국지연의』」중에서
프랑스 혁명의 역사에 조예가 깊었던 마르크스는 원조 나폴레옹 및 그 조카 루이 나폴레옹의 정권 탈취 과정을 비교 분석한 팸플릿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The Eighteenth Brumaire of Louis Bonaparte」의 서두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헤겔이 어디선가 언급하기를 모든 세계사적 중요 사실과 인물은 말하자면 두 번씩 나타난다고 했다. 하지만 처음에는 비극으로, 두 번째는 소극으로 등장한다고 덧붙이는 것을 잊어버렸다.
이 문장에서 “역사는 처음에는 비극으로, 이어서 희극으로 되풀이된다.(History repeats first as tragedy, then as farce.)”라는 명언이 탄생했다. 마르크스가 원래 말하고자 한 바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쿠데타 및 정권 쟁취가 프랑스 혁명을 무위로 만든 비극이라면, 그 조카인 루이 보나파르트가 숙부를 본떠 일으킨 쿠데타 및 황제 즉위는 아예 기가 막히다 못해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 코미디라는 것이었다.
--- p.467「기나긴 혁명의 메아리」중에서
『토인비가 말하는 토인비』의 말미에 아널드 J. 토인비는 인간사의 본질에 대한 자신의 솔직한 견해를 밝힌다. (중략)
악마란 불가피한 자극자 또는 도발자라는 말은 인간의 삶에 관한 심오한 진리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악마는, 비록 조개에게는 고약한 것이겠지만 그 속에서 진주를 만들어 내는 한 알의 모래 같은 존재입니다. (…) 아이스킬로스는 그것을 두 단어로 정리한 바 있습니다. ‘파테이 마토스’-고통으로부터 배운다는 뜻으로, 배우기 위해서는 고통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죠.
바로 이 대목에 토인비 문명론의 에토스가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악마는 인류에게 자극을 주기 위해 존재한다.-‘필요악(necessary evil)’이라는 표현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악의 존재, 그로부터 파생한 긴장과 공포는 인간을 자극하여 더욱 생산적, 창조적으로 만든다. 에덴 동산에는 문명이 없었다.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도전이 없다면 응전도 없으며, 발전도 없다.
--- pp.505-506「‘문명을 추동하는 힘」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