쥘리앵 바뇌브는 1943년 8월 18일 오후 3시 28분에 세상을 떠났다. 죽는 데 걸린 시간은 정확히 23분. 불이 붙기 시작한 후 그의 마지막 숨이 화염에 휩싸인 폐로 빨려 들어가는 데 꼭 그만큼이 걸렸다는 뜻이다. 자신의 일생이 그날 끝나리라는 걸 쥘리앵 자신도 알지 못했다.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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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보면 그의 운명은, 올리비에 드 노옌이 아비뇽에 있는 교황의 새 궁전에서 수백 미터 떨어진 생 아그리콜 교회 근처에서 한 여인을 처음 보았을 때 결정되었다. 유럽 역사상 가장 음울한 세기라 할 수 있는 시대에 태어나 죽음을 맞도록 운명지어진 스물여섯 살의 젊은이 올리비에, 그는 자신의 시로 그 여인을 불멸의 존재로 만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무렵을 저주받은 시대라고 불렀고, 인간의 죄를 벌하는 신의 복수에 절망해 미쳐버린 사람도 적지 않았다. 올리비에도 그런 사람 중 하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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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기를 시켜 폐허에서 시신을 끌어낸 후 깨끗하게 닦아 장례 채비를 갖춘 것도 만리우스였다. 이 비극적 소식을 전하러 죽은 이의 집을 찾아간 것도 그였고, 그 늙은 그리스 철학자가 당시 스물다섯쯤 된 아직 결혼하지 않은 딸 소피아와 단둘이 살고 있다는 걸 알아낸 것도 그였다. 그는 우선 그녀의 반응에 감동했다. 눈물이나 슬픔, 어떤 품위 없는 애통의 표현도 없이 이야기를 듣고 난 후 감사하다고 말하고, 시신이 어디 있는지 묻고는 시원한 음료를 대접했다. 그날은 타는 듯이 더웠다. 감정의 과시와 비탄이 당연한 시점에 그녀가 보여준 품위와 자제력은 인상적이었다. “이젠 행복하실 거야.” 그것이 그녀의 유일한 반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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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비에는 대단찮은 인간애를 위해 위대한 사상들에 대항했으며 스스로 고난을 겪음으로써 그것을 명백하게 했다. 쥘리앵은 그조차 할 수 없었다. 그의 삶이 이미 끝났기 때문에 무언가 가치 있는 일을 할 기회도 사라진 것이었다. 그가 할 수 있었던 건 적어도 자신이 얼마나 잘못 생각했었는지 이해했음을 알리면서 다음에 누군가가 자신을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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