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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의 성

유리의 성

김나래 | 동아 | 2015년 09월 11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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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09월 11일
쪽수, 무게, 크기 384쪽 | 354g | 128*188*18mm
ISBN13 9791155114384
ISBN10 1155114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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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익, 끼익.
우아한 곡선이 아름다운 앤티크 흔들의자가 규칙적으로 흔들렸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과 따스한 햇살이 너무나도 좋아 흔들의자에 앉아 조용히 책을 읽고 있던 여인이 눈을 감았다.
불어오는 바람결에 묻어나오는 향긋한 꽃 내음에 봄이 만연했음이 느껴져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여인은 특유의 예민한 감각으로 방금 전과는 공기가 달라졌음을 느꼈다. 얼굴을 향해 보드랍게 내리쬐던 햇살이 살짝 사라진 듯한 느낌? 아니나 다를까, 그녀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있으면 춥지 않아?”
“햇살이 너무나도 좋은걸요.”
부드러우면서도 힘 있는 남자의 목소리에 여인은 감았던 눈을 살포시 떴다. 편안한 폴로 티셔츠와 갈색 면바지를 입은 사내가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래도 아직은 추워. 이거라도 덮고 있어.”
손수 챙겨온 카디건을 얇은 어깨에 걸쳐주고 도톰한 모포까지 무릎에 꼼꼼히 덮어준 뒤 남자는 또 다른 의자에 앉았다.
“고마워요.”
“별말씀을요. 그보다 이런 것으로 식사를 대신하는 것은 아니겠지?”
부드럽게 응수한 남자의 눈길이 머문 곳은 티테이블이었다. 여인의 취향이 한껏 반영된 듯 티테이블은 화려하면서도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었다.
은은한 얼그레이 홍차 향은 지나가는 이로 하여금 한 번쯤 돌아보게 할 만큼 향기로웠으며 핑크 컬러의 작약과 아네모네, 그린 빛의 심바디움으로 장식한 티테이블은 중세시대 영국의 티테이블을 연상시킬 정도였다.
홍차와 어울리는 스콘과 블루베리 타르트 또한 테이블 위를 가득 채워 간식을 싫어하는 사람조차 한 번 앉아보고 싶어 할 정도였지만 남자의 마음에는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쿡쿡, 그럴 리가요. 이건 간식이에요.”
“너무 많이 먹지는 마. 괜히 입맛 없어서 식사 못 하니까.”
“잔소리쟁이.”
남자의 말에 여자가 코를 찡긋하며 작게 투덜댔지만 남자에게는 소용없는 투정이었다.
“그렇게 말해도 소용없다고.”
“그럼 딱 하나만 더 먹을게요.”
손가락까지 꼽아가며 말하는 여자의 작은 애교에 남자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짐짓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마지막이야.”
“네에.”
먹는 것조차 어여쁘다는 듯 머리를 쓰다듬는 남자의 손길에 여자는 조용히 미소 지으면서 지금의 행복을 만끽했다. 이러다 언젠가 깨어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꿈만 같은 지금 이 순간이 지속되길 바랐다.
‘내가 그때 이 사람의 손을 잡지 않았다면 지금 나는 어땠을까…….’
간혹 생각하게 된다.
그날 만약 내가 그곳에 있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처럼 이렇게 행복한 미소 지으며 있을 수 있었을까. 당장이라도 부서질 것만 같은 위태로운 유리의 성 안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을까.
생각하던 모든 일을 이루고 난 뒤 어찌 되었을지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하다. 행복이라는 단어는 생각하지도 못한 채 모든 목적을 이루고 난 뒤 빈껍데기처럼 살아가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난…… 그날을 잊을 수 없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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