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생각 없이 사는 것은 그리 나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생각이 필요할 때는 이미 갖고 있는 생각을 꺼내 쓰면 된다.
똑 같은 것이 없으면 유사한 생각을 꺼내면 된다.
이것은 매우 효율적인 방법으로 뇌가 있는 동물들은 다 그렇다.
그렇게 꺼내 쓴 생각도 크게 나쁘지 않다는 경험을 해왔다.
결국, 인간은 새로운 생각이 크게 필요 없기 때문에
갖고 있는 생각대로 살거나,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들어가기 전에」중에서
호모 휴리스틱쿠스(Homo Heuristicus)는 인간의 한 유형으로 어떤 상황에 직면했을 때 최선책을 찾기보다는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대안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인간의 한 유형을 필자가 정의한 신조어이다. 그리고 거의 모든 인간이 이 유형에 속한다. 호모 휴리스틱쿠스는 대개 복잡한 문제를 단순한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여기서 단순한 방법이라는 것은 호모 휴리스틱쿠스들이 이미 경험을 하여 알고 있는 방법을 말한다. 그러다 보니 문제가 발생하면 과거에 썼던 방법을 자꾸 현재의 문제에 그대로 사용하려 든다. 그 문제가 수없이 많은 문제들 중 하나이며, 복잡하고 역동적인 시장과 경제 구조로 인해 과거의 상황과 지금의 상황이 다르다는 사실을 자꾸 잊는다.
--- p.46
1907년에 세계에서 가장 큰 배의 선장이 기자와 인터뷰한 내용이다. “이렇게 큰 배가 사고가 나면 큰일인데 어떻게 대비하고 있습니까”라고 기자가 질문하자 선장이 대답한다. “나는 여태까지 사고를 낸 적도, 본 적도 없다. 앞으로도 사고는 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대답한 선장의 이름은 에드워드 존 스미스다. 5년 후인 1912년 타이타닉호와 함께 바다에 가라앉는 비운의 선장 이름이다. 이 책의 탈고를 위해 이 글을 정리하고 있을 때인 2014년 4월 16일 가슴아픈 ‘세월호’ 사고가 났다. ‘세월호’ 선장도 사고 이전에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타이타닉호 선장과 유사한 말을 했었다.
--- p.60
익숙한 패턴에서 벗어나려 할 때도 자제력이 필요하다. 익숙한 패턴의 대표적인 것으로 고정관념이 있다. 미국의 유명한 평론가로 ‘여론’이라는 명저를 저술한 월터 리프먼은 “사람들은 이해하기에 앞서, 먼저 분류를 시도한다.”라고 말했다. 어떤 대상을 확실히 알기 전에 먼저 갖고 있는 생각으로 평가한다는 것이다. 호모 휴리스틱쿠스는 경험했던 것에 대해서는 자신만의 분류 체계를 가지고 있으나,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분류 체계가 없다. 문제가 되는 것은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해 경험에 의해 생겨난 분류 체계를 적용한다는 것이다. 그 분류 체계가 옳은지 그른지도 모르는 채 말이다. --- p.134
업무 도중에 각종 문자 메시지를 포함한 이메일이 오면 이메일을 확인하기 위해 집중하고 있던 업무를 정지하게 된다. 집중도가 떨어지는 데 따른 스트레스도 생긴다. 연구 결과 이때 생기는 스트레스는 단기 기억력 저하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고 한다. 또한, 이메일 때문에 방해받기 전의 상태로 돌아가는데 평균 15분 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산술적으로 따져 이메일이 평균 30통 온다고 가정하면 7시간 30분을 허비하게 되는 것이다.
--- p.172
인간의 뇌는 크게 뇌줄기(Brain stem), 변연계(Limbic system), 대뇌 신피질(Neo cortex)로 구분이 되어 있고, 인간의 모든 감정은 두 번째 뇌인 변연계에서 처리하는데, 우리가 스스로 조절할 수 없다. 더군다나 의사소통을 담당하는 대뇌 신피질과 변연계는 서로 소통하지 않는다. 즉, 무의식 상태에서 우리가 느끼는 ‘흥분·공포·분노·쾌락’으로 행동하는 것이 호모 휴리스틱쿠스이기 때문에 아무리 이성적으로 생각한다고 해도 ‘사고 형성의 시대’에 형성된 변연계를 억누르기가 쉽지 않다.
--- p.255
호모 휴리스틱쿠스는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 반드시 판단한다. 판단을 위한 생각을 하는 것도 일종의 행동으로, 행동하기 위해서 생각을 한다. 이때, 아무 노력 없이도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무의식적으로 제어할 수 없는 순간에 이루어진다. 이것은 전문가로서의 훈련된 지식에 의해 행해지기도 하지만, 우리의 삶을 곤 란하게 만드는 편견이라고 부르는 형태로 흐르기도 한다. 두 경우 모두 자신이 굳게 믿고 있는 지식을 기반으로 판단하게 된다. 어떤 지식을 근거로 판단하는 것은 그 지식이 옳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특정 지식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지식의 한계를 알고 있어야 하고, 그 한계는 매우 좁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호모 휴리스틱쿠스는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며, 심지어 알고 있는 것이 모두 옳다고 생각한다. 모든 일의 시작은 자신이 ‘알고 있느냐’와 ‘모르고 있느냐’의 대결에서 ‘알고 있느냐’가 이겨야만 시작된다.
--- p.307
호모 휴리스틱쿠스 조직 내에서 움직이는 프로세스도 마찬가지다. 처음 만들어진 프로세스는 적용하기 이전에는 명확한 용도를 알지 못하거나, 적용 의도를 분명히 알고 있는 호모 휴리스틱쿠스가 많지 않기 때문에 많은 문제를 발생시킨다. 따라서 발명품과 같이 명확한 용도를 찾아야 한다. 프로세스의 용도가 명확해지려면 처음 ‘발명’된 프로세스를 반드시 적용하면서 관찰을 해야 한다. 적용을 통해 발생하는 많은 시행착오를 수정해 나가면 자연스럽게 그 프로세스의 명확한 용도가 나오게 되어 있고, 용도가 명확해지면 그 용도에 걸맞은 프로세스가 ‘발명’되는 것이다.
--- p.3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