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준은 식민지 기간 동안 13편의 신문 연재소설과 70여 편의 단편들, 수백 편의 아름다운 수필로 널리 사랑받던 서정주의 작가였다. 골동품과 고서적을 수집하는 복고적 취미를 즐기고 계급문학을 주창하던 ‘카프’ 작가들과 대립해 순수문학을 내세운 ‘구인회’를 이끌기도 했다. 휘문고 시절 동맹휴학을 주동해 퇴학당했고, 일제 마지막까지 창씨개명을 거부하고 강제로 시국강연회에 끌려 나가자 춘향전의 한 쪽을 읽고 내려올 정도의 민족의식은 가지고 있었으나 항일운동에 직접 관여해 감옥살이를 한 적은 없었다. 소극적으로나마 일제의 전쟁 고취와 조선어 철폐 정책에 저항했지만 친일 문학 단체에 이름을 올렸을 뿐 아니라 끝내는 한 편의 소설을 일본어로 쓰게 되자 고향에 내려가 해방까지 은둔한, 선비형 지식인의 전형이었다.
순수파의 대표적 작가로 분류되던 이태준이 해방 후 갑자기 공산주의자들과 어울리기 시작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놀라고 걱정한다. 하지만 친일파들이 재득세하는 남한의 현실은 이태준뿐 아니라 다수의 예술가들을 분노케 했고, 40명에 이르는 문인들이 월북하던 시절이었다.
진정 사람들을 놀라게 한 것은 이태준이 북한에서 처음 출간한 책인 『소련기행』이었다. 사회주의 소련을 지상천국으로 묘사한 이 책이야말로 많은 독자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20세기 초반의 인류를 사로잡은 공산주의 이론과 실천은 충분한 생산력과 민주주의 훈련이 되지 않은 상태의 인간들이 유토피아를 누리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가를 입증한다. 이태준에 앞서 소련을 방문했던 서구의 진보적 지식인들은 이 점을 간파하는 데 그리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제국주의의 혜택으로 물질적 풍요와 자유를 경험하여온 그들에게 소련의 하향 평준화된 복지 수준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을뿐더러, 스탈린 일인 독재는 오히려 회의와 혐오를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식민지 치하에서 극단적인 빈곤과 군국주의 파시즘을 동시에 겪어야 했던 조선의 지식인들이 지상낙원의 이면에 감춰진 공포를 간파할 혜안을 갖는 것은 무리였다. 이태준도 그 역사적 시각장애자의 한 사람이 된 것이다.
이태준이 완벽한 복지라는 제도적 승리 이면에 감춰진 부작용을 깨닫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그가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있다는 정보는 월북한 지 몇 해 지나지도 않아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남한 측은 전쟁의 와중에 세 차례나 그를 구출하기 위한 작전을 벌인다. 그러나 작전은 모두 실패하고, 이태준은 전쟁이 끝날 무렵 다른 많은 월북자들과 함께 역사의 미아가 되어 사라져버린다.
평등이냐 자유냐 하는 문제는 21세기에 들어와서도 여전히 범인류적인 논쟁거리로 남아 있다. 공산주의 대 자본주의라는 간단한 공식으로부터 사회주의 대 자본주의, 또는 사회민주주의 대 신자유주의라는 다소 복잡한 공식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면서 만인의 평등을 추구하려는 노력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성과는 적지 않았다. 우리는 자본주의를 자처하는 남한이 얼마나 많은 부분에서 사회주의 제도를 도입하고 있는가 알 필요가 있다. 이제는 누구에게나 익숙해진 퇴직금 제도, 의료보험, 국민연금, 외국인 차별 금지, 호주제 폐지 등이야말로 일제시대 조선공산당의 주장이었다. 반공과 용공, 보수와 진보, 복지와 성장 같은 단순한 대위법으로 역사와 인간을 함부로 재단하지 말아야 할 이유이다.
이런 점에서 지나간 역사는 미래 사회의 밑그림을 그리는 데 훌륭한 재료가 된다. 한국 현대사, 나아가 20세기 인류의 경험을 면밀히 살펴보는 일이야말로 현재를 제대로 해석하는 기본이 되고, 미래를 상상하는 토대가 된다. 내일을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과거사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다.
이태준의 삶 역시 일개 소설가의 생애를 넘어 한국 현대사의 소중한 증언으로 가치를 가진다. 자본주의가 최악의 폭력성을 보여주던 제국주의 시대의 희생자로서, 해방 후에는 평등과 자유가 극단적으로 대립하던 야만의 시대를 살아야 했던, 월북 후에는 민족주의 좌파라는 이름의 폭력이 생각과 표현의 자유마저 앗아가버린 불모의 땅에서 최후를 맞아야 했던, 그 가운데서도 인간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 애쓰던 이태준의 증언은 소중하다.
이태준은 작품으로 말하는 소설가였다. 개인사를 따로 기록한 자서전이나 본격적인 구술은 남아 있지 않다. 가족이 함께 월북하는 바람에 증언해줄 유족조차 없다. 대신 자신의 삶을 반영한 자전소설들을 많이 남긴 편이다. 여러 수필을 통해 자신의 성장 과정과 생각, 생활에 대해 사실적인 증언을 남겨두기도 했다. 저명한 작가였던 만큼 언론의 취재 기사나 타인의 회고담도 꽤 있는 편이다.
이 책은 이러한 자료들을 근거로 그의 삶의 궤적을 추적해보는 데 의미를 두었다. 문예물을 통한 추측이 많아 세부적으로는 실제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겠지만 개인사적, 문예사적 탐구보다는 이태준이라는 한 지식인을 통해 우리 현대사의 한 단면을 보여주려는 목적을 갖고 읽는다면 나름대로 흥미로울 것이다.
문제는 월북 이후이다. 북에 올라간 후의 이태준은 본인의 심정을 보여주는 어떤 글도 남기지 못했다. 오로지 조선노동당의 공식 발표문 같은 선전 선동적인 글들뿐이다. 불가피하게 타인들의 증언에 의존하거나 필자의 해석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글의 배경을 설명할 만한 수필이나 인터뷰 기사도 전혀 없으니 소련과 북한의 보편적인 상황을 그릴 수밖에 없다. 이런 부분은 언젠가 통일이 되어 이태준의 북에서의 삶을 보다 생생히 취재할 수 있을 때 보강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머리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