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의 교감과 스마트폰과의 피드백의 차이점에 주목해보자면, 우리는 모든 피드백을 동일선상에 놓고 생각할 수 없다는 점을 발견한다. 어떤 피드백은 상호작용 속에서 서로를 변화시키고 그 사이에서 감정과 정서, 정동의 흐름을 발생시킨다. 그러한 열린 피드백 자체가 생명을 성립시킬 수 있는 자연생태계의 비밀이다. 그러나 스마트폰의 피드백은 상호작용(interaction) 환경이 미리 결정되고 디자인되어 있으며, 그 사이에서 무엇인가가 발생할 가능성이 철저히 차단된 코드화된 질서에 머문다. 스마트폰과의 피드백은 그 사이에서 욕망, 무의식, 정동의 흐름을 발생시켜 그 생명 에너지의 힘이 특이점을 통과하는 순간 생명까지도 발생시킬 수 있는 생태계의 피드백과는 완전히 다른 성격이다. 우리는 여기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왜 사람들은 스마트폰에 그렇게 집착하며 교감과 접촉에는 익숙치 않은가?” 여전히 이것이 문제다. 사람들은 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기 바쁘고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 흥미를 갖지 못하는가? --- p.39~40
다시 네트워크 문제로 돌아가서, 네트워크가 가진 수평적이고 유연한 조직방식은 자본주의의 경직된 기업이나 사회질서에 하나의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어 포스트포디즘(post-Fordism)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네트워크 유형의 조직이 가진 시너지 효과에 대해서 주목하면서 기업문화의 변화나 기업조직의 재배치에도 활용될
가능성을 발견했다. 위계화를 통해서 관료적으로 조직된 기존 기업들은 노동자들이 역할, 직분, 기능에 따라 분화됨으로써 새로운 상황에 유연하고 능동적이고 창조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이에 기업들은 위계와 직분을 다 제거하고 수평적으로 재배치된 팀 단위의 전략회의나 재배치를 수행하면서 네트워크 효과를 도입하려 했다. 자본주의의 착취질서는 네트워크 효과가 바로 공동체 내에서 작동하는 정서, 무의식, 욕망의 흐름, 생태적 지혜에 기반을 둔 집단지성, 각각은 유한하지만 접속 결합을 달리하면서 무한대로 결합될 수 있는 다채로운 관계망의 부분이자 일부에 다름 아니라는 점을 발견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자본주의는 새로운 착취방식으로 들뢰즈와 가타리가 『앙띠 오이디푸스』에서 언급한 ‘코드의 잉여가치’에 대해서 주목한 것이었다. --- p.125~126
오늘날 자본은 공동체적 관계망을 흉내 내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관계를 소비하고 착취하기 위한 목적이 있다. 현대인은 스마트폰이라는 첨단기기를 사용하면서도 공동체적 관계망으로부터 분리되어 어떻게 대화해야 하는지 방법조차 잊어버렸다. 무척 외롭고 고독하며 상처받기 쉽고 불안정하고 피상적인 감정에 사로잡히기 쉬운 사람들은 대화를 하는 목적이 관계를 맺고 서로를 존중하며 우리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새로운 사랑과 정동을 순환시키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래서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가장 발전된 인류가 가장 유아적인 방식으로 대화하며, 인류 역사상 가장 고립되고 현실을 살아가기 어려운 사람들이 서로 자기 탓, 남 탓을 하며 비난하는 상황이 연출된다. 그러나 우리는 공동체적 관계망의 공감대화가 가진 강력한 시너지 효과와 일관성의 구도, 평화의 언어를 회복함으로써 이러한 아수라장의 상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해결의 단초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p.210
인터넷의 집단지성은 생태적 지혜의 일부일 뿐 전부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할머니들과 여성들이 숲과 종자, 하천, 발효, 식생 등의 지혜를 공유하면서 얼마나 풍부한 생태적 지혜를 갖고 있었는지 과거의 역사로부터 희미하게 알고 있다. 효율적인 기술로도 완전히 표현할 수 없는 관계 속에서 얻어지는 지혜의 요소들은 생활의 편리성과 효율성 앞에 사라지고 있다. 또한 초기자본주의는 공유지를 여성으로부터 빼앗으면서 시장이라는 권력이 작동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냈다. 이제 스마트폰에 대해서 다시 지혜를 묻고자 한다면, 기술이 어떤 맥락에서 어떻게 전유되고 있는지에 대해서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기술이 관계망의 풍부화가 낳은 시너지 효과의 일부라는 점에서, 우리는 다시 너와 나 사이에서 벌어질 공통성, 이를 풍부하게 할 특이성에 주목한다. 공동체의 품으로 스마트폰이 재전유되었을 때, 기술은 이제 효율과 자동성의 입장이 아니라 비효율적이고 불필요하다고 여겨졌던 우리의 인간관계를 풍부하게 하고, 자율적인 행동에 더 나서게 하는 표현소재가 될 수 있다. 이 글을 이제 막 다 읽은 여러분은 생태적 지혜에 대한 질문을 다시 던져도 좋다. “당신에게 스마트폰은 과연 똑똑한가?”
--- p.264~2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