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쪽 바다에는 곤(鯤)이라는 큰 물고기가 붕(鵬)이라는 엄청 큰 새로 탈바꿈했다네. 그리고 거대한 날개짓을 하면서 회오리바람을 타고 9만 리 고공으로 치솟아 오른 붕새는 6개월을 날개짓 없이 날아가 마침내 이상향 천지(天池)에 도달했다네.」
《장자》 책의 서막을 장식하고 있는 붕정만리(鵬程萬里)이야기입니다. 이 글을 읽다보면 가슴이 시원하게 뻥 뚫리면서 쌓인 스트레스가 저절로 풀리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데 이런 유익한 우화들이 많아 마음이 답답하고 괜히 우울해질 때 가볍게 읽는 책이기도 합니다.
《장자》를 호방한 해학소설의 원조로 보기도 하고, 중국 역사상 걸출한 10대 문학명저 중에서 으뜸으로 꼽기도 합니다.
장자의 글에는 이야기형식을 빌린 비유적인 표현이 많습니다. 장자는 ‘생사’를 만물 변화의 한 과정으로 보았습니다. ‘생(生)’은 이 세상에 잠시 나타나 유람하는 것이고, ‘사(死)’는 유람을 끝내고 본래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위대한 귀향이라는 뜻으로 ‘대귀(大歸)’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죽음을 슬픈 일로 여기지도 않았고, 불로장생을 추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사물이 변화하는 흐름에 따라 자유를 추구하면서, 현실 정치와는 거리를 두고 유유자적하며 생활하였습니다.
이야기 중에 유가들의 고루한 행태를 비꼬는 글들이 자주 나옵니다. 유가들은 인간사회의 질서유지에 관점을 두고 예절을 강조합니다. 장자는 이들이 공자를 내세워 인의(仁義)를 말하면서 허세를 부리고, 자기들끼리만 정을 주고받는 위선적 유학자를 비판하지만, 장자가 인의의 본 개념을 부정한 것은 아닙니다.
장자가 살았던 전국시대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를 죽이고 내가 살아야하는 살벌한 시대였지요. 그 때의 상황은 2300여 년이 지난 지금의 현 상황을 비춰보게 하는 거울입니다. 그때와 지금을 비교해보면 변함없는 큰 특징 하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여전히 명리(名利)를 추구하는 간 큰 대도(大盜)들이 권력을 쥐고 있고, 또 패거리들이 파벌을 만들어 자기들끼리만 정을 주고받으며 활개치고 있다는 점입니다.
“허리띠 고리 하나 훔친 좀도둑은 엄한 처벌을 받고, 부정으로 나라를 훔친 대도는 통치자가 되어 인의를 말하고 도리를 주장한다면, 그런 나라에는 도덕이라는 규범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그걸 도적질한 장물이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도척(盜), [외편] ‘거협’이야기가, 지금도 실감 나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조울증이나 우울증과 같은 신경정신질환이 만연하고 있는 현시대는 중국의 전국시대보다도 심각해 보입니다.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율과 자살률은 세계 최고수준입니다. 빈부 격차가 심한 우리 사회에서 가난은 그 자체로 형벌입니다. 돈이 자유와 삶의 의지를 빼앗아 가버리는데도, 사회는 외롭고 가난한 자를 더욱 소외시키고 있습니다. 우려할 일은 삶의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고 자신을 포기해버리는 연령층이 계속 낮아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각박한 세상만을 탓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방이 비어 있어야 생기가 돌듯이 마음도 비어 있어야 명랑한 기운이 생겨납니다. 또 “뱁새가 숲 속에 집을 짓는 데는 나뭇가지 한 개만 있으면 된다.”고 했습니다. 욕심은 줄일 수 있으면 좀 더 줄이고, 의지할 가지가 하나라도 있으면 감사한 마음 지녀야지요. 어제의 영광이나 내일의 꿈보다도, 바로 지금 여기에서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어 웃고 울고 노래 부르며 사는 게 행복의 요체입니다. 《장자》 속에서 그렇게 사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붕새처럼 뜻을 높고 원대한 창공에 두고 소요유逍遙遊의 삶을 누리는 것이다. 장자는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 천지의 기운에 마음을 싣고 자유롭게 노니는 경지를 ‘소요유’라 했다. 다시 말하면 명리(名利 명예와 이익)를 추구하며 다투는 험한 세상사 모두 잊어버리고, 아무런 속박 없이 어느 것에도 의지함이 없이 지내는 ‘승물이유심乘物以遊心’의 경지다. 이것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삶이라는 것이 다.
쓸모없다는 나무
혜자: 나에게 한 그루 큰 나무가 있는데, 사람들은 가죽나무라고 부르지. 몸통은 옹이가 많고 뒤틀리어 먹줄을 칠 방법이 없고, 작은 가지 또한 틀어지고 구부러져 있어 잣대를 댈 수 없다네. 길가에 자라는데도 목수가 거들떠보지도 않아. 지금 그대가 하는 말도 허풍스럽게 크기만 하지 쓸모없는 가죽나무 같구려. 그러니 모두가 그대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 것이야.
장자: 그대는 살쾡이나 족제비를 본 적이 있는가? 납작 엎드려 먹이를 노리다가 작은 짐승이 나타나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높이 뛰고 낮게 뛰다가 덫이나 그물에 걸려 죽기가 일쑤지. 들소를 보게나. 저 몸집이 마치 구름처럼 크지만 쥐새끼 한 마리도 못 잡는다네.
이제 그대가 가지고 있는 큰 나무가 쓸모없다고 걱정하는데, 어찌하여 그것을 아무것도 없는 마을, 너른 들판에 심어놓을 생각은 못하는가? 나무 주위를 하는 일 없이 배회하기도 하고, 그 아래 그늘에 누워 마음의 자유를 누릴 생각을 하지 못하는가[소요호침와기하逍遙乎寢臥其下]
저 나무는 도끼로 찍힐 일도 없을 터이고, 누구로부터도 해를 입을 일도 없다네. 쓸모없는 것이 거꾸로 보면 안전한 것이지, 어찌 걱정할 일이라 하겠는가? 쓸모없음이 가장 큰 쓸모라는 말일세.
혜자는 위나라 재상을 지낸 사람으로 본명은 혜시惠施이다. 《장자》에서 장자와 변론辯論하기 적당한 상대자로 등장하는, 명가名家의 대표인물이다. 혜자는 현실 사회에서 이름을 높이고 이로움을 취하려는 통상적인 관점에서 사물을 보고, 장자는 그런 관점을 초월하여 정신적 층면層面에서 사물을 보았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