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수가...... 그이는 돌아오지 않을 생각이구나. 목에 매달린 덩어리가 점점 커졌고 콧날이 시큰해졌다. 지금까지 실랑이하며 쌓인 미운 정 고운 정은 그렇다 치더라도 자기 생명을 구해준 은혜를 이토록 무정하게 되갚음하다니. 이제꼼짝없이 얼어죽겠구나. 내가 죽고나면 후회하겠지. 비록 승리감을 만끽하지 못한다 해도 통쾌한 복수가 될 거야. 다시 몸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하자 브렌나는 딱딱한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망토와 담요를 갖다 덮고 차버리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내가 이렇게 아픈데 그는 아무것도 몰라.] 몽롱한 상태에서 그녀는 혼잣말을 했다. [안다 해도 별 차이가 없을 거야. 야만인이니까. 나 같은 건 상관하지 않아......] 그녀는 돌아누우며 눈물을 흘렸다. [후회하게 될 거예요, 게릭, 후회...... 후회하게.....]
--- p.246
그녀는 긴 의자에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술을 따르는 게릭을 지켜봤다. 촛불 한 자루가 깜빡거리며 흐릿한 빛을 던졌지만 그의 모습은 또렸했다.암녹색 바지와 가죽 부츠를 긴 팔의 흰 실크 가운으로 갈아입고 평소 애용하던 묵직한 은목걸이 대신 에메랄드가 박힌 메달의 금목걸이를 찬 터였다.처음 생각 처럼 많이 취한 기색도 아니었다. 이제 그가 술잔을 건네자 브렌나는 쌉쌀하고 달콤한 액체를 소량씩 맛보며 뒷맛의 여운을 즐겼다.
--- p.223
그녀가 격하게 다그치자 게릭이 문가에서 돌아섰다. 어휴, 저 밉살스런 미소!
「당신을 여기에 잡아두는 사람은 내가 아니오. 당신이지. 내 뜻대로 봉사하는 노예만 정상적인 생활을 즐길 수 있는 특권이 부여된다구.」
브렌나는 파르를 떵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 고압적이고 거만한 폭군! 지옥불에서 타죽을 놈!」
「그런 말하는 당신은 고집스러운 당나귀야! 쳇, 이와 이렇게 되었으니 내 진면목을 보여주지. 각오해.」
--- p.1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