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나는 돌부처의 목 부러진 이유를 알겠다
부러져 뒹굴며 발끝에 채이는
미소의 이유를 알겠다
내 안에서 서로 싸우는 짐승들 또한 그렇다
그래, 너희들, 그렇게 싸우는
분명한 선악의 경계가 있는 것이냐
인면과 수심 중 분명한 승자가 있는 것이냐
오늘은 아예
인면이나 수심의
어느 한쪽 얼굴이 아닌
두루뭉수리 인면수심의 얼굴로 돌아다녀야겠다
--- p.58 <목 부러진 동백>
우리 동네는 충북과 보은의 동남쪽 끝머리에 있다. 이곳에서 동쪽을 붙잡고 자동차로 사오 분 가량 줄달음치면, 경북을 잇는 도계와 만나게 되고 거길 한발 넘어서면 상주 화서 땅의 시작이다. 상주에 갈 때면 나는 늘 가슴이 뛰곤 하는데, 쌀·누에고치·곶감으로 이름난 그 三白의 고장은, 단숨에 내 상상력을 휘어잡는, 뛰어난 시인과 소설가의 고향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마음은 거기서 그치질 않고 상주를 지나 문경 예천 영주 너머 영동 산악 어딘가를 헤매곤 하는데, 그것은 그런 오랜 방황과 모색 끝에 오래도록 책들이 썩지 않고 노래가 죽지 않는, 시의 천축국에 가 닿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열망에서인 것이다. 삶의 불연속과 유한을 노래할 수밖에 없는 내 짧은 혀를 자책하면서, 본디 내게는 주어지지 않은 시인으로서의 천품을 조금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안타까움에서인 것이다.
--- 시인의 말 중에서
삶이 어찌 이다지 소용돌이치며 도도히 흘러갈 수 있단 말인가
그 소동돌이치는 여울 앞에서 나는 백 년 잉어를 기다리고 있네
어느 시절이건 시절을 앞세워 명창은 반드시 나타나는 법
유성기 음반 복각판을 틀어놓고, 노래 한 자락으로 비단옷을 지어
입었다는 그 백 년 잉어를 기다리고 있네
들어보시게, 시절을 뛰어넘어 명창은 한 번 반드시 나타나는 법
우당탕 퉁탕 울대를 꺾으며 저 여울을 건너오는,
임방울, 소리 한가락으로 비단옷을 입는 늙은이
삶이 어찌 이다지 휘몰아치며 도도히 흘러갈 수 있단 말인가
---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