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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눈, 동백

붉은 눈, 동백

: 제19회 김수영문학상 수상작

문학과지성 시인선-239이동
리뷰 총점7.4 리뷰 3건 | 판매지수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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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년 6월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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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0년 02월 29일
쪽수, 무게, 크기 93쪽 | 159g | 130*205*15mm
ISBN13 9788932011455
ISBN10 8932011451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1. 시인의 말
2. 궤짝에서 꺼낸 아주 오래된 이야기
3. 희생
4. 촛불
5. 머리 흰 물 강가에서
6. 임방울
7. 어느 회의주의자의 일생
8. 우리들의 찐빵에 대하여
9. 나, 동백꽃 보러 간다
10. 동백
11. 동백 열차
12. 이야기 벌레들
13. 접시라는 이름의 여자
14. 동백이 활짝,
15. 검은머리 동백
16. 동백의 등을 타고 오신 그대
17. 동백이 지고 있네
18. 봄밤
19. 사상누각
20. 봄날
21. 山經 가는 길
22. 기타
23. 山經에 가서 놀다
24. 봄날을 가는 山經
25. 병뚜껑
26. 향일암 애기 동백
27. 총알
28. 관음이라 불리는 향일암 동백에 대한 회상
29. 山經을 비추어 말하다
30. 아이스크림
31. 동백 선생
32. 이른 아침 창가 나뭇가지에 동백이 앉아 있었네
33. 담쟁이넝쿨이 동물 해부학을 들여다 보다
34. 나비經은 언제 오는가
35. 탱자나무 울타리가 있는 과수원
36. 목 부러진 동백
37. 외투
38. 동백國에 배를 띄워 보내다
39. 동백 대왕 신종
40. 뜨개질
41. 뜨개질, 그 후
42. 아이스크림을 휘젓다
43. 외투가 얼어 죽었다
44. 나비의 꿈
45. 살구나무
46. 金사슴
47. 이지 라이더
48. 주름살
49. 해설 : 검은머리 동백, 시인의 숙명적인 부조리 - 김춘식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이제 나는 돌부처의 목 부러진 이유를 알겠다
부러져 뒹굴며 발끝에 채이는
미소의 이유를 알겠다

내 안에서 서로 싸우는 짐승들 또한 그렇다
그래, 너희들, 그렇게 싸우는
분명한 선악의 경계가 있는 것이냐

인면과 수심 중 분명한 승자가 있는 것이냐
오늘은 아예
인면이나 수심의
어느 한쪽 얼굴이 아닌
두루뭉수리 인면수심의 얼굴로 돌아다녀야겠다
--- p.58 <목 부러진 동백>
우리 동네는 충북과 보은의 동남쪽 끝머리에 있다. 이곳에서 동쪽을 붙잡고 자동차로 사오 분 가량 줄달음치면, 경북을 잇는 도계와 만나게 되고 거길 한발 넘어서면 상주 화서 땅의 시작이다. 상주에 갈 때면 나는 늘 가슴이 뛰곤 하는데, 쌀·누에고치·곶감으로 이름난 그 三白의 고장은, 단숨에 내 상상력을 휘어잡는, 뛰어난 시인과 소설가의 고향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마음은 거기서 그치질 않고 상주를 지나 문경 예천 영주 너머 영동 산악 어딘가를 헤매곤 하는데, 그것은 그런 오랜 방황과 모색 끝에 오래도록 책들이 썩지 않고 노래가 죽지 않는, 시의 천축국에 가 닿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열망에서인 것이다. 삶의 불연속과 유한을 노래할 수밖에 없는 내 짧은 혀를 자책하면서, 본디 내게는 주어지지 않은 시인으로서의 천품을 조금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안타까움에서인 것이다.
--- 시인의 말 중에서
삶이 어찌 이다지 소용돌이치며 도도히 흘러갈 수 있단 말인가
그 소동돌이치는 여울 앞에서 나는 백 년 잉어를 기다리고 있네
어느 시절이건 시절을 앞세워 명창은 반드시 나타나는 법
유성기 음반 복각판을 틀어놓고, 노래 한 자락으로 비단옷을 지어
입었다는 그 백 년 잉어를 기다리고 있네
들어보시게, 시절을 뛰어넘어 명창은 한 번 반드시 나타나는 법
우당탕 퉁탕 울대를 꺾으며 저 여울을 건너오는,
임방울, 소리 한가락으로 비단옷을 입는 늙은이
삶이 어찌 이다지 휘몰아치며 도도히 흘러갈 수 있단 말인가
--- p.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송찬호는 이 시집에서 지상의 존재들에게 싱싱한 운동성을 부여한다. 가령 이 시집에 자주 등장하는 동백들은 “뚝, 뚝 떨어져내리”고 “솟구쳐오”르고 “뛰어내리”고 “앞발을 번쩍 들고” 있고 “불끈”하며 “얼굴 붉은 짐승”이 되어 있다. 그는 동백을 “짐승 닮은 꽃”으로 재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시집은 1989년 나온 첫 시집 {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 1994년 나온 {10년 동안의 빈 의자}에 이어 6년 만에 내는 시집이다. 시력에 비해 과작(寡作)이고,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기보다는 고급 독자들과 비평가들 사이에서 호평 받고 있는 이 시인은 현직 농부이다. 느직이 전화를 걸면 “읍내에 나갔다”거나, “축사에 있다”는 가족의 대답을 들을 수 있다. 원고를 독촉하노라면 “요즘 하우스 하느라,” “한창 밭일 할 철”이라는 어눌한 변명을 듣게 된다. 그렇다고 그의 시집에서 흙 냄새를 기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위의 예를 보듯, 대상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은 관광객의 그것도 아니지만, 텔레비전 농촌 드라마에 나오는 농부의 눈도 아니다. 유난히 붉은 빛을 길어내고, 그것을 현란하게 반짝이게 하는 수법은 오히려 “도시의 거리를 산책하는 사람”이다.

이렇듯 그의 시 세계는 우리의 상투적인 세계 인식, 평면적인 대상 인식을 보기 좋게 배반한다. 프랑스의 시 전문 계간지 {포에지}의 편집장 클로드 무샤르의 말, “그의 시적 언어는, 실제 사물을 가리키더라도 언어 그 자체로 존재하는 상상 세계를 만들어낸다. 독자들은 그의 시어들이 평범한 단어를 가볍게 스쳐 새로운 순수함으로 빛남을 느낀다”는 그런 점에서 적실한 지적이다. 90년대의 식물성 상상력도 이제 상투화의 경계를 받고 있지만, 송찬호의 시적 상상력은 그 식물성들을 퍼덕이게 한다. 당대의 상상력이 한 시인을 통해 또 다른 변신을 할지 두고 볼 일이다.

회원리뷰 (3건) 리뷰 총점7.4

혜택 및 유의사항?
환상 공간, 산경으로 가는 도정으로서의 시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YES마니아 : 골드 r*******1 | 2001.01.06 | 추천2 | 댓글0 리뷰제목
"오랜 방황과 모색 끝에 오래도록 책들이 썩지 않고 노래가 죽지 않는, 시의 천축국에 가 닿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열망"(시집 뒷면의 시인 후기)이 이 시집을 끌고 가는 에너지라고 한다면, 그 에너지-열망의 꽃핌이 바로 시집 제목인 '동백'이다. '동백'은 이 시집을 관통하면서 등장하여 독특하게 의미화되고 있는데, 더 나아가 특유한 상징을 성취하기까지 한다. 시의 천축국에 닿을;
리뷰제목
"오랜 방황과 모색 끝에 오래도록 책들이 썩지 않고 노래가 죽지 않는, 시의 천축국에 가 닿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열망"(시집 뒷면의 시인 후기)이 이 시집을 끌고 가는 에너지라고 한다면, 그 에너지-열망의 꽃핌이 바로 시집 제목인 '동백'이다. '동백'은 이 시집을 관통하면서 등장하여 독특하게 의미화되고 있는데, 더 나아가 특유한 상징을 성취하기까지 한다. 시의 천축국에 닿을 수 있을 것이라는 열망이 만들어 놓은 환상적인 '하나의 세계'를 선명하게 드러내고 상징하는 것이 바로 동백이라고 한다면, 동백을 드러나게 하는, 동백 배후의 구축된 '하나의 세계'를 '산경'이라고 할 것이다. 이 시집은 이 '산경'을 향해 가는 여러 가지 길을 몽상하는 시편들이 주조로 되어 있다. 이러한 시의 천축국에 대한 열망이 산경이란 환상 세계를 찾아나서는 고행으로 실천되게 되었을까? 그는 열망이 결국 '기적처럼' 현실화될 것을 믿고 있다. 그 현실화는 물론 환상이다. 하지만 그 환상은 시인 자신을 바꿀 것이다. 무슨 말인가? 다음의 시를 보자. "촛불도 없이 어떤 기적도 생각할 수 없이/나는 어두운 제단 앞으로 나아갔다/그때 난 춥고 가난하였다 연신 파랗게 언 손을 비비느라/경건하게 손을 모으고 있을 수도 없었다/그런데 얼마나 손을 비비고 있었을까/그때 정말 기적처럼 감싸쥔 촛불이 켜졌다/주위에서 누가 그걸 보았다면, 여전히 내 손은 비어 있고 어둡게 보였겠지만/젊은 날, 그때 내가 제단에 바칠 수 있던 건/오직 그 헐벗음뿐, 어느새 내 팔도 훌륭한 양초로 변해 있었다/나는 무릎을 끓고 어두운 제단 앞으로 나아갔다/어깨에 뜨겁게 흘러내리는 무거운 촛대를 얹고"(<촛불> 전문) 무슨 기대를 하고 제단에 나아간 것은 아니었겠지만, 시인은 무엇인가 기도하기 위해 제단에 나아갔으리라. 그 기도는 절박한 것이었을 게다. 시인은 '춥고 가난하였'던 것이다. 그 황량한 심신은 '손을 모으고 있을 수도 없'을 정도로 주체하기 힘든 상황 속에 놓여 있었다. 그래서 촛불도 없는 제단이지만 그 앞에라도 나아가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지 않았겠는가. 이 절박함 속에서의 기도, 아마 빛과 열을 달라고 할 그 기도는 시인도 놀라도록 거짓말같이 이루어진다. 그 기적은 시인 자신이 촛불이 되어버림으로서 달성되는 것이다. '바칠 수 있던 건/오직 그 헐벗음뿐'일 정도로 곤란한 상황 속에서 시인의 열망이 절박하면 절박할수록 그 열망은 시인 자신을 열망에 맞게 존재 변이를 시켜 열망을 이루게 한다. 물론 그것은 '사실적'이지 않다. "주위에서 누가 그걸 보았다면, 여전히 내 손은 비어 있고 어둡게 보였"을 것이다. 시인 자신이 촛불이 된다는 이야기는 실제로 일어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시의 세계에선 이루어지지 않겠는가? 팔이 양초로 변해 있다는 거짓말, 하지만 시의 세계에선 그것이 진실이 될 수 있다. 열망 속에서 이루어낸 기적, 촛대가 된 시인은 바로 시 자체이다. <촛불>에서 볼 수 있듯이 송찬호 시인에게선 바로 열망이 만들어낸 환상의 현실화가 바로 시가 될 것이다. 이 시집에서 시인의 열망이 만들어낸 환상 세계가 바로 '산경'인데, 하지만 산경은 쉽게 묘사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쉽게 묘사된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환상에 그쳐버리고 말 것인데, "경 없이 가는 길, 그것이 문자의 운명"(<산경을 비추어 말하다>에서)이기 때문이다. 문자는 원래 환상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운명을 타고 난 것이다. 우리에게 정보를 알려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문자라면. 하지만 하나의 협약된 기호로서가 아니라 우연이 만들어진 기호로서 문자, 징조로서의 문자가 있다. 옛 사람들은 거북이 등을 구워 거기에 갈라진 선의 모양을 징조로 삼아 미래를 예측하지 않았던가. 송찬호는 시인을 바로 거북이 같다고 본다. "자신의 등을 구워/문자를 만드는 사람,/우리 동네 시인/같은 사람"은 "세상에는 등에 거울을 지고/ 다니는 사람"(같은 시에서)이다. 거북이 등에 불을 지피고 미래를 보여주는 이가 바로 시인이며, 거북이 등은 바로 미래를 비추어주는 매개체, 거울이다. 송찬호는 "그런 거울 백 개를/모을 수 있다면/산경을 두루 비출 수 있다 했단다"라고 말한다. 거북이 판 하나, 거울 하나는 바로 시 한편을 말할 것이다. 그 시는 어떻게 이루어질지 시인 자신도 알 수 없다. 시인은 자신의 등을 굽고 무엇이 될 지 모를 갈라진 선들, 우연의 문자들을 만들고 미래의 세계를 암시할 뿐이다. 산경을 찾는 사람들은 <촛불>의 시인처럼 어떤 절박한 상황 속에서 무엇인가 열망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세상의 절경 한 폭 짊어지지 못하고 春窮을 넘어가는 저 비탈의 노래가 저러다 정말 산경의 진수를 찾아 들어가는 거 아닌가/살 만한 땅을 찾아 저렇게 말뚝에 매인 집 한 채 뿌리째 떠가고 있으니/검은 아궁일 끌어 묻고 살 만한 땅을 찾아 참을 수 없이 느릿느릿 저 신선 가족이 가고 있으니"(<봄날을 가는 山經>)라고 시인이 쓰고 있듯이 '살 만한 땅을 찾'는다는 열망을 안고 어디론가 떠나가는 사람들, 그들은 시의 세계에선 살만한 땅인 '산'을 만나 '산경의 진수'를 찾아들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그들이 산경의 진수가 되어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초가 되어버린 '나'처럼. (그런데 시인은 이들 떠가는 가족 무리들을 '느릿느릿 저 신선 가족'이라고 표현했지만, 그 표현은 여유롭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을 견디어 내는 그 답답할 정도의, '참을 수 없'을 정도의 우직함을 의미하는 것일 게다.) 그런데 산경은 구체적으로 어떤 곳인가? 중국 신화 전설 집인 산해경의 환상 세계일텐데, 시인은 산해경 세계의 무엇을 주목하는 것일까? 산경의 세계는 결코 뚜렷하게 드러낼 수 없는 세계이다. 이 세상의 세계는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구운 거북 등판의 무늬처럼 추상적으로 암시할 수 있을 뿐 선명히 드러낼 순 없는 세계일 듯 하다. 시인의 문자는 이 완전히 드러낼 수 없는 세계를 좀 더 선명히 드러내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리라. 시인은 이 세계를 드러내기 위해 새로운 상징을 창출한다. 그것이 동백인바, 산경은 바로 이 동백이 있는 곳으로서 암시될 뿐 뚜렷이 그려지지 않는다. 하지만 역시 동백마저도 그 의미를 완전히 드러낼 수 없다. 동백을 붙잡아 그릴 수 있는 때는 바로 다음 순간이다. "마침내 사자가 솟구쳐 올라/꽃을 활짝 피웠다./허공으로의 네 발/허공에서의 붉은 갈기//나는 어서 문장을 완성해야만 한다/바람이 저 동백꽃을 메어물고/땅으로 뛰어내리기 전

[인상깊은구절]
이제 나는 돌부처의 목 부러진 이유를 알겠다 부러져 뒹굴며 발끝에 채이는 미소의 이유를 알겠다 내 안에서 서로 싸우는 짐승들 또한 그렇다 그래, 너희들, 그렇게 싸우는 분명한 선악의 경계가 있는 것이냐 인면과 수심 중 분명한 승자가 있는 것이냐 오늘은 아예 인면이나 수심의 어느 한쪽 얼굴이 아닌 두루뭉수리 인면수심의 얼굴로 돌아다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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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경 가는 길 내용 평점3점   편집/디자인 평점3점 e******e | 2000.03.18 | 추천1 | 댓글0 리뷰제목
송찬호의 첫 시집 {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민음사, 1989)의 [인공정원]과 두 번째 시집 {10년 동안의 빈 의자}(문학과 지성사, 1994)의 [달은 추억의 반죽 덩어리]를 찬찬히 눈여겨보았던 독자라면 이번 세 번째 시집에 관심이 가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첫 시집에서 보여줬던 송찬호만의 언어와 그 언어로 빚어낸 세계의 독특함은 기억할 만한 것이었다. 특히 [인공정원]에서;
리뷰제목
송찬호의 첫 시집 {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민음사, 1989)의 [인공정원]과 두 번째 시집 {10년 동안의 빈 의자}(문학과 지성사, 1994)의 [달은 추억의 반죽 덩어리]를 찬찬히 눈여겨보았던 독자라면 이번 세 번째 시집에 관심이 가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첫 시집에서 보여줬던 송찬호만의 언어와 그 언어로 빚어낸 세계의 독특함은 기억할 만한 것이었다. 특히 [인공정원]에서 보여줬던 그의 시세계는 언어를 질료로 하는 시가 구축해야 할 하나의 지향점으로까지 보였다. 물론 세상의 저자거리와 골목을 오가는 사람들이 서로 부대끼는, 그 시끄러움을 삶의 꿈틀거리는 언어로 포획하여 다시 세상의 한복판에 내놓는 방법도 있을 테지만, 송찬호처럼 조금은 그러한 현실로부터 몇 센티미터쯤 공중으로 떠올라 우리에게 자신이 가고자 하는 세계를 은밀히 건네어주는 시인도 필요하다. 주제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 이 두 시집은 조금 다른 면을 보여주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관통하고 있는 지점이 있다. 그것은 그의 시적 원동력을 상상력에서 얻고 있다는 점이다. 그 상상력은 현실에 뿌리를 둔 것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현실로부터 자유로운 세계를 지향하고 자 하는 상승적 상상력이었다. 그렇다고 그것은 삶으로부터 도망이 아니다. 어쩌면 '부정적 로트레아몽 콤플렉스'라고 불러야 할 지도 모를 동물적인, 그러나 자기 내부로 향한 공격성 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그의 상상력은 현실계를 떠나 단순히 상상계로 진입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며 현실의 단단한 방호벽에 미세한 균열, 그 자리에 조금은 아름다운, 언어와 존재 의 세계를 만들어보겠다는 도전 정신이다. 그러한 그가 이번 시집을 통해 드러낸 현실의 균열의 틈은 다름 아닌 [동백]이었다. 동백 은 사자이며, 사자의 울부짖음이며, 뚝뚝 끊어져버리고 말 목숨이며, 山經이다. 산경에 이르 는 길은, 壬申年 음력 동짓달 초하루, 파도가 잦아들자 동백국 으로 떠나는 배를 띄웠다 배에는 가축과 곡식 검은 부싯 돌과 흰 물을 실었다 가축과 곡식은 외눈이 반쪽이 쭉정 이 따위의 불구이거나 이름이 없는 무명의 것들로 동백 국에 가서 그들의 병을 씻어주고 귀한 이름의 종자로 얻 어올 작정이었다 배는 쉼 없이 나아갔다 그러나 동백국 길은 얼마나 멀고 험하던가 - [동백國에 배를 띄워보내다], 일부 무릇 생명이 태어나는 경계에는 어느 곳이나 올가미가 있는 법이지요 그러니 생명이 탄생하는 순간에 저렇게 떨림이 있지 않겠어요? 꽃을 밀어내느라 거친 옹이가 박인 허리를 뒤틀며 안간힘 다하는 저 늙은 동백나무를 보아요 그 아득한 올가리를 빠져나오려 짐승의 새끼처럼 다리를 모으고 세차게 머리로 가지를 찢고 나오는 동백꽃을 이리 가까이 와 보아요 - [관음이라 불리는 향일암 동백에 대한 회상], 일부, 이하 강조 필자 마침내 사자가 솟구쳐 올라 꽃을 활짝 피웠다. 허공으로의 네 발 허공에서의 붉은 갈기 나는 어서 문장을 완성해야만 한다 바람이 저 동백꽃을 베어물고 땅으로 뛰어내리기 전에 - [동백이 활짝] 전문 그에게 동백은 현실의 꽃이자 현실 너머의 꽃이다. 검은머리 나무는 어디에 그 붉음을 가 지고서 이 세상에 꽃을 틔워보내는가. 틔워보냄은 뛰쳐나옴이다. 그 움직임의 역동성, [사자 ]의 동물성으로 바라볼 수 있는 힘, 그런 것이 송찬호만의 상상력이다. 왜 그는 멀고도 험한 붉은 나라, 동백국에 가려고 하는가. 저 길길이 날뛰던 무쇠 덩어리도 오늘만큼은 화사하게 동백 열차로 새로 단장됐답니다 삶이 비록 부스러기 쉬운 꿈일지라도 우리 그 환한 백일몽 너머 달려가 봐요 잠시 눈 붙였다 깨어나면 어느덧 먼 남쪽 바다 초승달 항구에 닿을 거예요 - [동백 열차] 일부 동백국은 부스러지기 쉬운 꿈 너머의 백일몽 같은 나라다. 비록 그것이 백일몽이라 하더 라도, 우리는 꿈꿔야 한다. 먼 남쪽 바다 초승달 항구를.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은 정 말 꿈이 아닐까. 마치 우리가 꿈을 꾸고 나서 그것이 꿈이었구나 깨닫는 것처럼 우리의 현 실은 우리가 깨닫지 못한 꿈일지도 모른다. 미처 동백이 찬연히 피어있는 것을 다 둘러보기 도 전에 동백은, "동남풍/바람의 밧줄에/모가지를 걸고는/목숨들이 송두리째/뚝, 뚝 떨어져내 ([나, 동백꽃 보러 간다] 일부)"리고 만다. 멀리서는 보이지만 가까이 가면 사라져버리는 동 백,은 어찌보면 그가 기다리는, 그가 도달하고자 하는 詩 한 편이며, 노래이다. 삶이 어찌 이다지 소용돌이치며 도도히 흘러갈 수 있단 말인가 그 소동돌이치는 여울 앞에서 나는 백 년 잉어를 기다리고 있네 어느 시절이건 시절을 앞세워 명창은 반드시 나타나는 법 유성기 음반 복각판을 틀어놓고, 노래 한 자락으로 비단옷을 지어 입었다는 그 백 년 잉어를 기다리고 있네 들어보시게, 시절을 뛰어넘어 명창은 한 번 반드시 나타나는 법 우당탕 퉁탕 울대를 꺾으며 저 여울을 건너오는, 임방울, 소리 한가락으로 비단옷을 입는 늙은이 삶이 어찌 이다지 휘몰아치며 도도히 흘러갈 수 있단 말인가 - [임방울] 전문 여기에서 그의 시세계의 방향성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시가 백 년 잉어가 되기 를 희망하는 것에 다름아닌 것이라는 것을. 산경에 이르는 길이라는 것을.

[인상깊은구절]
삶이 어찌 이다지 소용돌이치며 도도히 흘러갈 수 있단 말인가 그 소동돌이치는 여울 앞에서 나는 백 년 잉어를 기다리고 있네 어느 시절이건 시절을 앞세워 명창은 반드시 나타나는 법 유성기 음반 복각판을 틀어놓고, 노래 한 자락으로 비단옷을 지어 입었다는 그 백 년 잉어를 기다리고 있네 들어보시게, 시절을 뛰어넘어 명창은 한 번 반드시 나타나는 법 우당탕 퉁탕 울대를 꺾으며 저 여울을 건너오는, 임방울, 소리 한가락으로 비단옷을 입는 늙은이 삶이 어찌 이다지 휘몰아치며 도도히 흘러갈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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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찬호, [붉은 눈, 동백]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d******h | 2008.10.02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우리 집에는 아주 오래된 얼룩이 있다. 닦아도 닦아도 잘 지워지지 않는 누런 냄새, 누런 자국의   우리 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그 건망증이다. 바스락바스락 건망증은 박하 냄새를 풍긴다 얘야 이 사탕 하나 줄까, 아니에요, 할머니 할머닌 벌써 십년 전에 돌아가셨잖아요!   - <궤짝에서 꺼낸 아주 오래된 이야기>   이 시는 2연으로 완성되었기도 하고;
리뷰제목

우리 집에는 아주 오래된 얼룩이 있다.

닦아도 닦아도 잘 지워지지 않는

누런 냄새, 누런 자국의

 

우리 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그 건망증이다.

바스락바스락 건망증은 박하 냄새를 풍긴다

얘야 이 사탕 하나 줄까, 아니에요, 할머니

할머닌 벌써 십년 전에 돌아가셨잖아요!

 

- <궤짝에서 꺼낸 아주 오래된 이야기>

 

이 시는 2연으로 완성되었기도 하고 <상자>에서는 시의 일부분이기도 하다.

 

안도현 시인 덕분에 알게된 이 시 하나만으로도

나는 이 시집을 샀다.

 

그 기발하지만 쓸쓸한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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