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 고서점, 중고서점. 같은 대상을 지칭하는 이름이 다양하다. 헌책방은 헌 책을 파는 서점이라는 뜻이지만, 책방 자체가 '헌 책방'이라는 느낌이 들고 '헌 책' 역시 물리적으로 낡아버린 책임을 강조하는 말 같아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는다. 고서점은 고서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서점이라는 뜻인데, 일본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고서점은 수집할 가치가 있는 오래된 희귀본, 귀중본을 취급한다는 느낌이 들어 그다지 친근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중고서점은 문자 그대로 중고 도서를 취급하는 서점이라는 뜻인데, 책을 일반 중고품과 같은 반열에 놓는 것 같아 마음에 걸린다.
이름이야 어떻든(일단 이 글에서는 헌책방이라는 말을 사용하기로 한다.), 헌책방에서 책 사냥을 하는 재미는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른다. 헌책방의 어둡고 좁은 서가 구석에서 예기치 않게 좋은 책과 만났을 때의 기쁨, 절판되어 구할 길이 없어진 탓에 어쩔 수 없이 포기해버린 책과 우연히 만났을 때의 반가움, 값이 비싸 구입을 망설였던 책을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싼값에 구하면서 짓는 미소, 책을 소유하고 있던 사람의 솔직한 심정이 드러나 있는 짧은 메모를 우연히 읽을 때의 불온한(?) 즐거움.
그러나 앞서 언급한 즐거움은 그야말로 '낭만에 대하여'에 속하는 사항들이라 하겠고, 현실적으로는 최근 우리 나라의 헌책방들이 전반적으로 쇠락일로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사동 통문관, 신촌 공씨책방 등, 우리 나라 헌책방 역사에서 중요한 몇몇 서점들의 힘도 예전 같지 않다. 생각의 속도가 생각의 깊이보다 중시되는 요즘이고 보면, 헌책방을 뒤지는 행위는 속도 경쟁을 스스로 포기하는 처사나 다름없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생각의 속도에 가치를 두는 사람이라면 지금 소개하는 <세계의 고서점>(신한미디어)이라는 책을 무척 조심할 일이다. 헌책방이 건네는 치명적인 유혹의 손길 바로 그것이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이 책이 소개하는 헌책방의 국적은 다음과 같다. 영국, 아일랜드, 스페인, 포르투갈,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덴마크, 스웨덴, 미국, 아르헨티나, 호주, 러시아, 폴란드, 중국, 대만, 필리핀, 미얀마, 베트남, 그리스, 과테말라, 칠레, 멕시코, 일본, 벨기에, 인도, 남아프리카 공화국, 체코, 아이슬란드, 캐나다. 모두 적고 보니 31개 나라다. 물론 한 사람이 모두 집필하지는 않았고 나라 숫자만큼이나 여러 명의 필자들이 집필했다. 특기할 만한 것은 세계 여러 나라의 헌책방을 단순하게 소개하는데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요컨대 헌책방이 반영하고 있는 해당 국가, 해당 지역의 전반적인 사회, 문화 풍토까지 전해준다. 헌책방을 중심으로 한 세계기행인 셈이다. 예를 들어 다음 부분(이하 pp.160-161 일부)을 보면 스웨덴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대략적으로나마 가늠하기에 충분하다. '스웨덴의 독서 사정과 서적 시장 구조를 간단히 표현하면 이렇다. 국민은 독서를 좋아한다. 책은 자유가격제, 비싸다. 도서관 네트워크의 정비도가 높다. 고서점이 많다. 스웨덴 생활에서 책은 일상 필수품. 그리고 스웨덴은 책값이 비싸기로 유명하다. 비쳐 보일 정도의 스칸디나비안 블루로 유혹하던 짧은 여름이 끝나면, 춥고 길고도 어두운 겨울이야말로 독서의 최적기. 그야말로 책과 알코올이 없으면 지낼 수 없다. 그러나 알코올이 비싸듯 책값도 싸지 않다. "스웨덴은 사람들의 키와 세금이 크고 높네요." "책과 결근율은 더 비싸고 높답니다." 여행자와의 대화에 늘 등장한다. 학생도 셀러리맨도 그다지 책을 사지 않는다. 살 수 없다. 독서를 좋아한다와 책을 스스로 산다와는 별개. 도서관이 발달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실업률이 높아지면 도서관 이용율은 한층 높아진다고 한다.'
책을 말하는 책, 독서와 서점을 말하는 책 가운데 <일본 고서점 그라피티>(신한미디어), <독서의 역사>(세종서적), <생각을 넓혀주는 독서법>(멘토) 등을 권하고 싶다. 이 가운데 <생각을 넓혀주는 독서법>의 저자 모티머 애들러가 최근에 세상을 떠났다. 브리테니커 백과사전의 편집자로 명성을 날렸고 고전 읽기의 중요성을 각별히 강조한 분으로, '독서계의 큰 어르신'이라고 할 수 있다. 평생 동안 독서의 가치, 고전의 가치, 더 나아가 인문 정신의 가치를 보전하는데 노력했던 애들러 선생의 별세에 애도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