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토를 만난 건 2006년 1월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서였다. 유럽 미술관 여행과 관련한 책을 준비하고 있던 나는 2005년 12월 말 최신 정보 수집차 갑작스레 유럽으로 날아갔다.
런던을 시작으로 빌바오, 마드리드, 베를린, 피렌체, 로마 등등을 거쳐 드디어 1월 16일 파리에 도착했고, 다음 날 오르세 미술관을 찾았다. 나는 책에 필요한 그림들을 체크하면서 열심히 돌아다니다가 점심을 먹기 위해 카페테리아를 찾아가는 중이었다. 그때 마치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에 나오는 교장 선생님처럼 수염이 덥수룩한 사람이 말을 걸어왔다. --- p.12, '새로운 모험의 세계로' 중에서
간소하고 선적인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은 이 성당은 12세기 걸작 중 하나이다. 일설에 따르면 당시 열두 살이던 노르만 왕 윌리엄 2세의 꿈속에 성모가 나타나 선왕 윌리엄 1세가 보물을 묻은 곳을 알려주었고, 성모가 나타난 그곳에 성당을 짓기 시작해서 20여 년 후에 완공했다. 노르만 양식의 전형적 형태인 두 개의 직사각형 탑, 비잔틴식의 위계질서를 엄격하게 반영한 모자이크, 아라비아식 패턴으로 장식한 목재 천장 등 다양한 양식이 혼재된 이 성당을 윌리엄 2세는 무척 자랑스러워했다고 한다. --- pp.36~39, '로베르토네 집' 중에서
에리체는 무척 시적이고 낭만적인 느낌을 주는 곳이지만, 한여름인데도 무척 쌀쌀했다. 얇은 숄을 두르고 다녔는데도 손이 시리다는 느낌이 들었으니까. 만약 겨울에 간다면 꽁꽁 싸매고 다녀야 할 것 같다. 커피 한 잔 하려고 바에 들렀다. 우리나라에서 으레 그렇듯 잠깐이라도 테이블에 앉아 수다를 떨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카운터 앞에서 진한 에스프레소를 한입에 툭 털어 넣고는 길을 나선다. 하긴 식후에 커피 한 잔 하려는 것이니 굳이 돈을 더 내고 테이블에 앉을 필요는 없지. --- p.103, '중세의 고즈넉한 골목길을 거닐다' 중에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파졸리니를 다듬었다. 아무 생각 없이 칼로 끝 부분을 다듬다가 갑자기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 집에 간다는 게 제정신이냐고, 새우잡이 배에 팔려가는 거 아니냐고 하던 류의 말이 생각나 웃음이 났다. ‘그러게. 뭘 믿고 그랬을까?’ 하지만 아무리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이라고 해도 사람 사이에는 뭔가 통화는 게 있고, 왠지 느낌이 좋은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물론 그 느낌이 틀릴 때도 있지만, 나의 경우는 감사하게도 그런 느낌이 통했고 그걸 믿고 움직였을 때 생각지도 않은 좋은 결과를 낳았다. 이 기적 같은 만남에는 분명 하늘의 섭리가 존재한다고 나는 믿는다. 정말 한순간 한순간이 어쩌면 그렇게 잘 맞아떨어졌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그러나 어쨌든 여행자라면 어딜 가든지 일단 조심하고 또 조심할 일이다. 처음부터 지나치게 친절한 사람은 경계해야 한다. 물론 경계하는 티를 팍팍 낼 필요는 없다. 알아서 피해가면 그만이다. 특히 여성 여행자라면 소심증을 발동해서라도 미리 알아서 조심해야 한다.
--- pp.165~166, '물고기 두 마리와 칸놀로 셋' 중에서
마퀘다 길을 지나면 나오는 한 바에서 오렌지 주스와 물 한 병을 마시며 작은 파이로 고픈 배를 채웠다. 사람이 있는 테이블인데도 양해를 구하고 자리를 잡았다. 우리와 달리 자리가 없으면 모르는 사람끼리 잘 앉아서 먹고 얘기를 하는 것이 이네들이니 딱히 이상할 것도 없다. 우리나라처럼 자리가 많이 마련되어 있지도 않고. 다만 그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말없이 주스를 들이켰다는 것.(이탈리아 남자들은 정말 수다쟁이다.)
--- pp.224-226, '시내 관광지 대탐험' 중에서
그래도 참 신기하다. 아기의 말을 부모만 알아듣듯 루치아, 로베르토와는 의사소통이 잘 되는 걸 보면 말이다. 물론 로베르토가 영어를 워낙 잘하기도 하지만, 내가 이탈리아어 단어를 늘어놓으면 무슨 뜻인지 금방 이해하고 문장으로 만들어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루치아 역시 처음과 달리 영어를 이해하는 정도가 눈에 띄게 좋아졌다. 루치아가 말하는 것을 내가 짐작해서 이해하듯이 루치아도 그런 모양이었다. 한 달 동안 같이 살면서 서로에게 맞춰나가는 관계로 변화한 것이다. 알게 모르게. --- pp.232~233, '로마시대 황제의 빌라를 구경하다' 중에서
새우잡이 배에 팔려가는 건 아닐까 하고 주저했다면, 지금의 이런 벅차오르는 따스함은 평생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영화에서나 봄직한 시실리에 우리가 갈 일은 생전 없었겠지. 한 달여의 여행이었지만, 그 이전과 이후의 나는 무척 달라진 느낌이다. 난 그곳에서 여유롭게 삶을 누리는 법을 배웠고,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 상황 속에서도 가슴으로 소통하는 법을 배웠다. 캐나다의 대자연을 가슴에 담기 위해 떠났던 여행도, 그림을 보기 위해 유럽의 미술관으로 떠났던 여행도 내게 이만큼 잔잔한 감동을 주지는 못했다. 어쩌면 난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된 여행을 한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을 찾아 나선 그런 여행 말이다.
--- p.287, 에필로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