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3~89. 1903년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뉴질랜드의 북쪽에 있는 엘트햄 섬에서 태어났다. 그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로마사를 공부했고, 1949년부터 『로마의 건국』의 저자 휴 래스트의 후임으로 고대사 캠던 교수(Camden Professor)로서 1970년까지 옥스퍼드 대학에서 로마사를 가르쳤으며, 1970년 정년퇴직을 한 뒤에도 계속해서 로마사 연구에 헌신했다. 그리스어와 라틴어에 탁월했던 그는 36세의 젊은 나이에 『로마혁명사』(1939)의 성공을 시작으로, 『타키투스』(1958) 『식민시의 엘리트들』(1958) 『아우구스투스 시기의 귀족들』(1986) 등의 역작을 내면서 로마사의 대가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고, 그밖에 관련 논문을 많이 썼다. 1948~52년에 로마사 연구학회 회장직을 지냈고, 그 학회지인 『로마사연구』(JRS) 편집위원회에서 오랫동안 활동했으며, 유네스코 철학 인문학연구 국제협회의 사무총장을 거쳐, 1971년에는 회장이 되었다. 그는 『로마혁명사』 출판 50주년 기념식을 3일 앞두고 1989년 9월 4일에 86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로마혁명사』는 36세의 사임을 ‘로마사의 황제’로 즉위케 한 대작이었다. 1930년대는 그 어느 때보다도 아우구스투스와 그의 체제에 호의적인 연구들이 붐을 이루던 시대였다. 당시 유럽인들은 제1차 세계대전과 대공황의 여파로 경제가 침체되고 이데올로기가 대립되어 사회적 분열과 민족적 정체성 위기를 겪고 있었다. 특히 독일과 이탈리아에서는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국민적 지지를 받으며 강력한 국가 건설에 나서고 있었는데, 이러한 시대 분위기에 맞게 아우구스투스는 1세기 이상의 내전을 종식시키고 지중해 세계에 ‘로마의 평화’(pax romana), 아니 ‘아우구스투스의 평화’(pax augusta)를 가져다 준 위대한 프린켑스로 평가되고 있었다. 바로 이러한 시대 분위기에 아우구스투스의 권력 정치에 비판적이었던 사임은, 혁명의 우두머리로서의 아우구스투스를 ‘잔인한 모험가’, ‘군사적인 선동가’, ‘테러리스트’, ‘독재자’로, 정치가로서의 그를 ‘능력 있는 위선자’로 묘사하는 등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았다. 『로마혁명사』는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을 때에 출판되었기 때문에 이 책에 대한 정당한 평가는 다소 늦어진 감이 있지만, G.W. 보어소크가 그를 ‘로마사의 황제’(The Emperor of Roman History)라 지칭한 것이나, G. 알푈디가 “우리 세기(20세기)의 고대 사가들 중의 프린켑스”라고 부른 것은 과도한 칭찬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노벨상의 후보로 선정되기도 했다. 『로마혁명사』는 로마사의 고전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당대의 시대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은 냉철한 역사 연구의 좋은 사례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
허승일(許勝一)은 1940년생으로 서울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로마군대와 카이사르의 정치」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건국대학교 사학과 교수를 지낸 뒤, 서울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를 거쳐 지금은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한국서양고전학회, 한국서양사학회, 한국서양고대역사문화학회 회장 역임한 뒤, 지금은 현재 키케로학회 회장, 서양사연구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증보로마공화정연구』 『로마공화정』 『스파르타 교육과 시민 생활』 『로마 제정사 연구』(공저) 『역사교육론』(공저) 등이 있고, 역서로는 『로마혁명사 1·2』(공역)를 비롯하여, 『로마사회사』 『키케로의 의무론』 『서양사학사』(공역) 등이 있다. 그밖에 「서양 고대 그리스 로마 세계의 인성 교육」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김덕수(金悳洙)는 1959년생으로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를 졸업한 뒤, 같은 학교 대학원 서양사학과에서 「프린키파투스의 위기와 아우구스투스의 원로원 재편(23~18 BC)」로 석사 학위를 받은 뒤, 「아우구스투스의 프린키파투스의 형성과정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목원대학교 사학과 교수를 거쳐 지금은 서울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로 있다. 저서로는 『그리스와 로마-지중해의 라이벌』 『역사 속의 말, 말속의 역사』 『로마제정사연구』 『지중해 문명의 바다를 가다』(공저)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로마혁명사 1·2』(공역)를 비롯하여, 『로마문명사』 『로마사』 등이 있다. 그밖에 「아우구스투스의 정치위기와 원로원 재편」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