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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하늘에 걸린 빨랫줄 하나

빈 하늘에 걸린 빨랫줄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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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6년 07월 07일
쪽수, 무게, 크기 224쪽 | 415g | 142*225*20mm
ISBN13 9788991240209
ISBN10 899124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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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변영림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국문학과를 다니던 때, 시인이 되고 싶어하는 정진규를 만나 졸업하던 1961년 결혼했다. 궁핍한 시인의 아내가 되어 세 남매를 낳고, 결혼한 지 10년 만에 교사임용고시를 보고 이듬해 3월 면목여자중학교 국어교사가 되어 28년 6개월을 재직하다가 1998년 8월에 명예퇴직을 했다.

한국전쟁 중에 여읜 아버지, 다섯 남매의 맏이로서 엄마와 함께 집안을 돌보며 공부를 한 학생 시절, 시인 김진규와의 45년간의 결혼생활, 의무와 책임이 가득한 28년간의 교사생활, 독문학자ㆍ조각가ㆍ경영컨설턴트로 활동하는 세 남매 등의 이야기로 저자의 삶을 잔잔하게 들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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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한 다발과 귤 한 봉지
40여 년 전, 그날은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그런데 쌀독이 비었지. 내일은커녕 오늘도 먹을 것이 없었다. 어른 두세 숟가락이면 배가 부를 아이가 “배고파”하며 돌아앉았다. 그 작은 등을 보며 이 어미의 무능이 너무너무 부끄럽고 가슴이 찢어졌다. 당신은 원고료 받을 것이 있다며 쌀을 사오겠다고 나갔지.
해가 저물어도 당신은 돌아오지 않았어. 밤 12시가 지났어. 2시가 다 되어 당신은 술이 억병으로 취해서 장미꽃 한 다발을 안고 돌아왔어. 한 손에는 그 비싼 귤을 한 봉지나 사들고. 내가 꽃다발을 받으며 물었지. “쌀은?” 가방을 빼앗듯이 해서 열어보니 그 속에는 책만 가득했어.
...
생전 처음 남편이 껄껄 웃었다
딸이 늦게 결혼하는 바람에 우리는 비교적 늦게까지 자식 거느린 부모로 젊게 살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2년 전부터 둘만 살면서 남편과 나는 서로 말이 없어졌다. 한 번 말을 잃어버리면 되찾기가 어렵다. 느릿느릿 걷는 걸음걸이, 무표정한 얼굴, 서로 따로따로 딴 세상에서 그림자끼리만 오락가락하는 집안,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렇다. 연습을 하자. ‘명랑할 것, 무언가라도 자꾸 서로 이야기할 것, 우리 사는 집 공기를 밝고 가볍게 할 것.’ TV도 함께 보고 채널권 가지고 싸움도 하고 큰소리로 웃고 떠들어 이 무거운 공기를 흔들어 놓겠다. 마음먹은 그날 밤. 나는 남편의 침대에 올라앉아 TV도 함께 보면서 별 것 아닌 것에 깔깔 웃었다. 남편에게 미혼모 안 만들어주어 고맙다는 실없는 소리도 했다. 생전 처음 남편이 껄껄 웃었다.
...
나이 들기 전에는 나도 많이 억울했다
나이 들기 전, 퇴직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많이 억울해 했다. 평생 남편은 자기 좋은 일만 하고 궂은일은 다 내 몫이라고 억울해 하고, 평생 남들 하는 즐거운 생활과는 거리가 멀게 살기 바쁜 것 억울해 하고, 나 혼자 참고, 나 혼자 이겨내고, 나 혼자 해결하고--. 이런 것 저런 것 다 억울했다.
그러나 보이지 않게 남편이 뒤에 버티고 있어 나를 지탱해주었다는 것을 나이 한참 들고 나서야 그것도 어렴풋이 깨달았다. 남편은 나보다 더 외롭고 더 힘들었겠다는 생각도 든다. 젊어서부터 외롭다는 말 입에 달고 사는 그가 고까워서 “그럼 나는?”하고 오히려 단단해졌고, 피를 말리며 <현대시학>을 만들어가는 것 일부러 외면했다. 남편은 내게 너무 무겁다. 그의 세계는 너무 깊고 요원해서 내가 들어갈 수가 없다. 함께 있으려 해도 언제나 내가 설 자리가 없다. 그래서 나는 나대로 외롭다. 그가 외로운 만큼---. 잠든 남편의 얼굴을 보면서 이 푸근하지 못한 너무나 작은 아내를 가진 그가 불쌍해진다. 어쩔 수 없이 혼자 싸워온 그가 불쌍하다. 늙은 병사처럼.
--- 본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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