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에 다니는 많은 여성들은 체중기에 의존하여 산다. 그들은 체감적인 몸의 변화가 오기 전에 체중기의 수치를 통해 몸의 변화를 먼저 보고/느낀다. 하지만 대부분의 여성들이 일상 생활 속에서 느끼는 몸의 변화는 자신이 입는 옷을 통해서이다. 이전의 옷이 더 이상 맞지 않는 체형의 변화는 살을 빼야 한다는 현실적인 위기 의식을 준다. 30대 여성들 중에는 헬스에 오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최근에 유행하는 옷을 입을 수 없는 좌절 때문이었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옷에 대한 언급은 특히 외모가 중시되고 스타일이 자신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유행 담론이 되면서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많은 여성들이 옷을 사러 갔을 때 옷가게 종업원들의 말 때문에 상처를 받았다고 말하곤 하는데, 이는 여성들의 외모가 어떻게 자기 평가와 밀접하게 맞물려 있는가를 말해 준다. 종업원들은 "날씬함과 이쁨"을 동일시하고, 뚱뚱한 여성들을 기본적으로 바람직한 고객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이런 분위기는 날씬하지 않은 여성은 기본적으로 환영받지 못한다는 것을 전제하는데, 이는 대부분의 여성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뚱뚱하다는 자기 부정과 경멸에 빠지게 만들고, 항상 자신이 충분히 여성적이지 않다는 자기 회의에 빠지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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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은 여성들이 사회에서 점하는 위상을 변화시킨다. 그래서 세상을 다르게 보는 시각을 갖게 하는데, 가장 대표적인 언설이 바로 "아줌마"이다. 출산 후의 한 여성은 "이제 더 이상 순진하거나 나약해질 필요가 없고, 아니 그래서도 안 되고, 한순간에 세상에 대해 모든 것을 다 알아 버린 '못할 게 없는' '아줌마'가 됐다는 느낌을 가졌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최근에 이러한 "아줌마"의 이미지는 특히 젊은 여성들에게 수용하기 힘든 정체성의 갈등을 동시에 일으킨다.
여성들은 출산 후의 자신의 변화된 지위나 역할을 아무런 갈등 없이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갈등하고 긴장한다. 특히 딸 세대 여성들이 보여 주는 갈등은 모성에 대한 강항 이데올로기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추구했던, 예를 들면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공적 영역의 전문직 여성, 모성 이미지보다는 여전히 젊은 남편의 애인이나 아내라는 다른 정체성과의 강한 경합 상태를 보여 준다. 더욱이 아름다움과 젊음, 그리고 능력으로 재현되는 대중 매체의 이미지가 지배하는 1990년대에, 결혼에 상관없이 "여전히 여성다워야 하고 날씬해야 하고, 능력 있어야 한다"는 여성성에 대한 담론은 출산 후에 동반되는 신체적·사회적 변화를 여성들로 하여금 수용하기 어렵게 만든다. 따라서 여성들은 출산 후에 임신중에 증가한 체중을 조절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심할 때는 출산 후의 날씬한 몸을 위해 임신중에도 다이어트를 한다. 또 출산 후의 다이어트를 위한 음식 조절 때문에 처음부터 모유 수유를 안 하고 분유를 먹이기도 한다. 딸 세대의 젊은 여성들 중에는 산후 우울증에 걸렸었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산후 우울증도 이러한 지위 변화로부터 야기되는 갈등의 한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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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한국 사회에는 성과 관련하여 다양한 태도와 입장을 갖는 여자들이 등장했다. 여성은 남성과 똑같이 성에 대한 욕망과 쾌락을 갖는다는 성해방주의자 여자들에서부터, 페미니스트이며 동시에 성적으로 해방된 여성임을 자처하는 포르노 배우와 누드 모델, 또 성적 매력을 사회적 자본으로 사용하는 여성이 곧 해방된 여성이라고 인정하는 젊은 여자들이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동시에 직장과 가정 그리고 거리에서 성폭력과 성희롱을 경험한 피해 여성들이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성의 성은 여전히 금기이고 위험이다. 따라서 여성의 몸이나 성에 관한 지식들을 과다하게 유포하는 것은 "여성성"을 저하시키는 것이라고 믿는 여자들이 여전히 많고, 성적인 행위를 적극적으로 하지만, "성적"인 것에 대한 자기 언어를 갖지 못한 십대, 이십대 초반의 젊은 여자들이 거리를 메우고 있다.
1990년대 한국의 대중 매체는 성적으로 적극적인 젊은 여성과 과다한 성적 욕망으로 괴로워하는 가정 주부들을 재현해 냄으로써 성적 존재로서의 여성을 보여 준다. 성적 존재로서 여성들이 부상되고 재현되면서 남성 중심의 성 체제에서 여성의 성이 갖는 위험성을 지적해 내고 성폭력이나 성희롱의 문제를 사회화, 정치화시키는 1990년대의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스트들은 성적으로 교착된 지점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어떤 남성 문화 평론가는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은 섹시하지 않다"고 한국의 (제도적) 여성주의자들의 무성성을 비판한다. 성 담론에 관한 한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은 성을 다룰 수 없는, 보수적이거나 무성적인 존재로 간주된다. 이럴 때 여성이 성을 논하는 것은 위험하다. 여성의 성 경험을 드러내고 여성의 성적 주체성을 논하는 여성 작가들은 본격적인 작가로 취급되지 못하거나 페미니즘을 잘못 이해한 아류 혹은 이류 페미니스트라고 남성 지식인들로부터 비난받고 공개적 충고를 듣는다. 반면에 남성 중에는 우리 사회에서는 성 개방이 곧 여성 해방이라며, 결혼한 여성에 대해 창녀론을 쓰는 남성이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성적 개방은 여성의 고유성을 손상시키고, 남녀의 성 질서를 훼손한다고 생각하는 남성들과 여성들이 대다수이다. 그래서 많은 여성주의자들과 여성 작가들은 성을 논할 때 문화적 자기 검열을 경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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