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을 훈련시키면 특정한 시각에 특정한 냄새를 음식 보상물과 연결시킬 수 있다. 오전 10시에서 11시 사이에 라벤더가 아닌 오렌지 꽃을 먹이와 연결시키도록 훈련시키고 11시에서 12시 사이에는 그 반대로 훈련시키면 벌은 제시간에 올바른 꽃을 선택한다. 벌이 이런 재주를 발휘하는 것은 우리들처럼 태양 주기에 따라 매일 재설정되는 일간주기 시계가 있기 때문이다. 벌은 이 시계를 보고 정해진 시간에 특정한 사건(가령 10시에 오렌지 꽃, 11시에 라벤더)을 떠올린다(Koltermann, 1974). 벌은 시간을 아는 법을 아는 것 같다. 물론 자신이 시간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문제다.
--- pp.52~53
일정한 수준으로 돌아와 그 상태에 머물려고 노력하는 항상성 체계와는 달리, 일간주기 시계 같은 자립적인 진동자는 규칙적으로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이동하려는 경향을 갖고 있다. 약간의 정교한 공학이 있고 없고의 차이를 떠나서 유기체의 천연 분자공학에서든 우리 인간의 기계?전기 공학에서든 규칙적이고 자립적인 진동은 시계의 핵심이다. 단순한 생체시계에 필요한 추가사항은 체내 진동을 태양, 달, 별 등의 천문학적 진동에 연결시키는 설정 메커니즘 그리고 그 출력물을 생물학적으로 유용하게 만들어주는 수단뿐이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 일간주기 생체시계의 핵심이다. 생체시계는 생체 리듬으로 측정되는 출력물과, 규칙적이고 예측 가능한 환경변화에 그 리듬을 연결시키는 재설정 메커니즘을 가진 진동자다.
--- pp.71~72
상대 선수의 힘을 역이용하는 유도 선수처럼 유기체들은 자신의 환경에 정면으로 부딪히기보다 환경의 자연적인 리듬들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간다. 야생의 동물이나 식물이 규칙적인 환경 변화를 예측할 수단을 가지고 있다면, 그 조건들을 이용하는 방식으로 행동할 것이다. 그래서 조만간 동이 틀 것을 아는 새는 최초의 빛에 대해 생리적으로 준비를 할 것이다. 생화학 작용이 한낮의 필요 사항에 응할 수 있도록 활성화되려면 그 새는 새벽을 예상해야 한다. 부지런한 새가 벌레를 잡는 것은 이와 같이 더 좋은 시간 프로그램이 있기 때문이다. 일간주기 리듬은 하루의 긴급한 일들을 예상하게 해주는 필수적인 시간 프로그램을 만들어낸다.
--- p.101
참새에게서 망막을 분리하면 일간주기 리듬에 따라 망막에서 멜라토닌이 생산된다. 참새의 눈에도 독립적인 시계가 있는 것이다! 이 주기적인 멜라토닌도 혈관에 도달할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멜라토닌은 일간주기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고 입증되었으므로 이것 역시 참새의 전체적인 일간주기 체계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포유동물과 마찬가지로 새들에게도 망막과 SCN을 연결하는 망막시상하부 경로가 있다. 눈은 또한 교감신경계의 입력신호에 따라 SCN이 만들어 보내는 정보를 받는다. 따라서 SCN은 눈의 리듬을 주기적으로 조절하고 그런 다음 SCN에 주기적 신호를 돌려보내는 회로의 일부일 가능성이 있다. 빈센트 캐손과 마이클 메너커는 참새 연구로 밝혀진 사실들에 기초하여 새의 일간주기 구성을 보여주는 모델을 만들고 ‘조류 신경내분비 회로’란 이름을 붙였다.
--- p.200
만일 초기의 시아노박테리아가 시간 조절 메커니즘을 이용해 UV로 인한 DNA 손상을 줄일 수 있었다면, 그 메커니즘은 시아노박테리아라는 유기체에 의해 선택되고 보존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오존층 덕분에 오늘날의 지구는 막강한 UV-C로부터 보호를 받고 있지만, 세포분열에 해를 입히는 UV-B는 오존층을 관통한다. 따라서 자연 상태에서 햇빛에 노출되어 있는 세포들은 세포분열(유사분열) 시간을 밤에 국한시킨다. 핵을 가진 단세포 조류인 클라미도모나스는 DNA가 손상을 입기 쉬운 세포분열 시간을 UV가 약화된 늦은 오후와 저녁 시간에 맞춘다. 만일 진화가 아주 간단한 과정이라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가능할 것이다. ‘옛날 옛적 진화의 역사가 시작되던 시절에 UV 손상과 시간적 조율이라는 두 선택 압력의 결합으로 단순한 유기체의 몸속에 일간주기 시계가 생겨났다. 그 시계는 아주 유용하고 중요했으므로 새로운 종들과 문들이 발생하는 기나긴 진화사 동안에 계속 보존되었다.
--- pp.206~2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