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위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삶을 의지할 데가 없는 듯한 모습들이었다. 여덟 개의 돛대 아래에는 각각 두 사람씩 돛줄을 관장하고 있으며, 뱃머리와 갑판에는 선원 차림을 한 사람들이 많았다. 배는 비록 이십삼사 장이나 되게 크다고 하지만 파손된 곳이 적지 않았다. 배 동쪽은 삼사 장이나 되게 파괴되어 파도가 들락거리고 있고, 그 옆, 그러니까 역시 동쪽에 또 일 장이나 되게 파괴된 곳이 있어서 점점 침수되고 있었다. 그 나머지도 어디 하나 상처를 입지 않은 곳이 없었다. 여덟 개의 돛을 관장하는 자들은 열심히 그곳을 돌보고 있으나 각자가 자기의 일만 돌보고 있어 마치 각자가 여덟 척의 배를 모는 듯이 서로 상관하지 않고 있었다. 또 뱃사람들은 갑판 위에 앉아 있는 수많은 남녀들 사이를 쑤시고 다니는데,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 p.18
“쭈어천이 가혹한 것은 사실이나 조주부의 민심도 참으로 흉흉했죠. 지난날 제가 조주부에 있었을 때에 거의 매일이다시피 강도 사건이 발생하여 이백여 명의 소대를 데리고 있었지만, 마치 쥐를 잡지 않는 고양이같이 전혀 쓸모가 없었어요. 여러 현에서 잡아왔다는 강도를 보면, 거의가 빈약한 시골 사람들로 강도의 위협을 받아 당나귀를 지켜주었거나 짐을 날라다 준 사람뿐으로 진짜 강도는 백 명 중에 하나도 골라낼 수 없었어요. 오늘날 위쭈어천이 호되게 다스렸기 때문에 강도 사건이 없어진 겁니다. 그 일들을 비교해보니, 저는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p.48
“선생은 요령을 흔들고 다니지 않아도 되십니다. 세상을 바로잡으시는 데 하필이면 이렇게 하셔야만 되십니까? 저 같은 인간을 버리지 마시고 받아주십시오. 선생이 나쁘게 생각하실는지 어떨지 모르겠으나, 두어 마디 더 올리겠습니다. 어저께 선생께서는 은둔하여 세상에 이름을 더 높이는 것을 비속하다 하시고 또 천지가 재사(才士)를 내는 데 한정이 있으므로 구태여 스스로 미천하다고 하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에는 전적으로 감복하였습니다. 그러나 선생은 입으로만 그렇게 말씀하시지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순무께서 선생을 초청하여 벼슬길에 모셨는데도 선생은 야밤에 도주하셔서 꼭 요령만을 흔들려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벽을 뚫고 도망친다’거나 ‘귀를 씻고 듣지 않는다’는 옛 성인의 행위와 다를 바가 무엇입니까? 제 말이 우둔하고 잘못이 있어도 용서해주십시오. 저를 책망하시지 마시고 재삼 생각해보십시오!” --- p.97
“그 이치가 달의 차오르고 스러지는 것과 명암의 이치와 같을 수 없지요. 달의 어두운 쪽 반이 사람들을 향하고 있으면 사람들은 어둡다 하고, 밝은 쪽 반이 사람들을 향하고 있으면 사람들은 달이 밝다고 하는 것입니다. 초여드레와 스무사흘의 달은 사람과 정반대의 측면에 있기 때문에 반은 밝고 반은 어두워 상현과 하현이 된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이 보는 방향에 따라 모습이 달리 보이는 것입니다. 만약 스무여드레나 아흐레, 아주 어두운 때라도 사람이 달에 가본다면, 말할 것도 없이 달은 밝은 모습일 겁니다. 이것이 바로 명암의 이치인 것을 우리는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반이 밝고 반이 어두운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원칙입니다. 반이 밝다는 것은 영원히 반이 밝은 것이고 반이 어두운 것은, 영원히 반이 어두운 것입니다. 밝은 것이 바로 어두운 것이고 어두운 것이 바로 밝은 것이라는 원칙은 영원히 통하지 않습니다.” --- p.163
“어제의 나는 이와 같았고, 오늘의 나 또한 이와 같다. 나의 방을 보면 침상이 하나, 탁자가 하나, 자리가 하나, 등이 한 개, 벼루가 한 개, 붓이 한 자루, 종이가 한 장 있다. 어제의 침상, 탁자, 등, 벼루, 붓, 종이도 이와 같았다. 오늘의 침상, 탁자, 자리, 등, 벼루, 붓, 종이도 여전히 이와 같다. 본래부터 명확히 내가 있고 또 이러한 침상이 하나, 탁자가 하나, 자리가 하나, 등이 한 개, 벼루가 한 개, 붓이 한 자루, 종이가 한 장 있는 것이다. 마치 꿈에 새가 되어 하늘보다 높이 날다가 깨어나면, 새도 하늘도 모두 없는 것과는 다르다. 마치 꿈에 고기가 되어 연못 속으로 들어갔다가 깨어나면 고기도 연못도 모두 없는 것과도 다르다. 더욱이 높다든가 들어간다는 말은 무엇인가? 내가 나를 보면 실지로 그러한 물건이 있으나 꿈이 꿈같지 않더라도 실지로 그러한 일은 없는 것이다. 그런즉 인생은 꿈과 같은 것, 본시 몽수의 우언만이랴!” --- p.339
꿈의 정경이라는 것이 비록 이미 환상이고 허상이라서 다시 복원할 수 없는 것이기는 하나, 꿈속의 나는 엄연히 서술할 만한 어떤 실체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백 년 후의 내가 어디로 돌아갈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꿈과 같은 백 년의 정경은 있어도 이런 정경 속의 나를 서술할 것은 없다. 인생 백 년을 꿈에 비유하나 오히려 백 년이 꿈보다 허무하다고 생각된다. 아! 꿈보다 더 허무한 백 년을 왜 그다지도 부지런하고 세심하게, 바쁘게, 시끄럽게 살려는 것인가?
--- p.3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