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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동네 시인선-42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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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09월 24일
쪽수, 무게, 크기 140쪽 | 224g | 153*224*8mm
ISBN13 9791158960032
ISBN10 1158960034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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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의 냄새

목욕탕에서 어머니의
슬픈 연대(年代)와 마주한다
팔순의 몸을 씻기다
오래전 영면한 흉터와의 직면에
못 볼 걸 본 것처럼 쭈뼛 서는 동공
마디마디 어긋난 골격이
돌아앉은 순간에도
듬성한 머리카락이
감추고 있었던 신음 자리
때론 기억이란 무의식이 지어낸
환영(幻影)이라 머뭇대는 사이
손가락 끝이 먼저 당도해버린
움푹 파인 분홍빛 묏자리
통증이 일시에 전신을 습격한다
등덜미 삭아 내린 팔순의 몸
안개에 묻힌 채 속수무책
상처에 가격당한 줄도 모르고
흉터에다 겹겹이 적막을 쌓고 앉았다
맹금(猛禽)이 떠돌던 봉우리
황막한 처소를 헝클어진 머리숱으로 덮는다
까마득한 시간의 사슬에도
상처는 죽지 않고 그날로 산다
철옹성인 몸 안에다 울음보를 장전한 탓에
상처에선 늘 무덤 냄새가 난다


스트라디바리우스의 노래

수목한계선 무릎 끓은 설움
한 줄 선율에 불현듯 울컥, 하고 쏟을 때
쉰 번의 겨울 나이테 제 피륙의 깊이만큼
몸의 현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차곡차곡 안으로 들인 한기
주체할 수 없는 울림으로 번져와
바람의 결기 낱낱이 토해낸다

제 몸 최고봉의 선율을 향한 바람의 담금질
앙상하게 휘어진 등줄기 후려칠 때마다
늑골 뼈마디의 비명 온몸을 휘감는다

층층이 안으로 쟁인 한기가 버팀목인
해발 삼천 미터 생목한계선, 일용직인 그는
로키산맥의 무릎 꿇은 나무가 되어갔다

나목의 우짖음 목울대 공명이 되었다던가
은발에 찬 기운 돋을수록
폐부 깊숙한 멍으로부터 터져 나오는 생계의 운율
에일 듯 토해내는 굽은 등의 완창,
키 낮은 가계의 계보(系譜)


[시인의 말]

내 무의식 저편에 쪼그리고 앉아 울고 있는 아이에게
손 내민다.
그 아이에게 건네는 말이 내 시(詩)의 전언이다.
이미 늙어버린 아이인 내가,
지나온 과거와의 화해를 위해 시(詩)라는 첫발자국을 내딛는다.
과거는 이미 전생이 되었다.
진정한 화해는 무의식과 하는 것이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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