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과 노래 이전에 이야기가 있었을 것이다. 아직 문자가 없던 때에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이야기는 신의 이야기일 수 있고, 부족 조상의 이야기일 수 있다. 아직 미사여구와 탄탄한 구성은 갖추어지지 않았더라도 대중적 호소력이 있는 이야기만 계속 살아남아 전해졌다. 이야기에 걸맞은 노래와 춤이 제천의식을 통해 표현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야기는 문학뿐만 아니라 음악, 회화, 철학, 정치 등 모든 문화의 시발이며 씨앗이다.(본문 65쪽)
문학을 서정, 서사, 극 장르로 나눈 데는 동의하지만 서사 장르를 소설로 단일화한 데는 동의할 수 없다. 서사 장르 속에는 소설만 있는 게 아니라 소설과 동화가 함께 있기 때문이다.
(본문 70쪽)
아동문학 가운데 가장 심하게 오해되고 왜곡되거나, 미지의 영역으로 존재하는 부분이 바로 동심이다. 이 막연하고 추상적인 관념을 우리는 보다 철저하게 인식하고 실제화해야 한다. 여기엔 진정으로 동화가 문학의 원형성을 회복하고, 새 길을 열어가는 동력과 길이 있다.
(본문 74쪽)
천진, 천국, 동심, 진심, 본심, 천심, 불심, 대승 등 말은 다르나 속내는 모두 ‘하늘’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동심은 하늘이다’는 말이 성립하는 것이다.(본문 86쪽)
원형적 동심이 근원이 되지만, 현실적 동심 역시 중요하다. 사람은 하늘만 바라보고 살 수 없고, 땅을 딛고 땅의 소산을 먹고 살아야 한다. 육체는 건강해야 하고, 혼은 우주만큼 넓게 확대되어야 하고, 영은 밝아져 우주 안에 충만해야 한다. 어느 한곳에 편중되지 않고 두 동심이 조화를 이루며 성장, 성숙해야만 한다. 그것이야말로 현상계에 존재하는 인간이 지닌 동심의 온전한 본체라 할 수 있다.(본문 111쪽)
영-혼-육이 건강과 조화를 획득하는 것이 바로 동심 회복의 비결이다. 그를 위해 적절한 운동과 노동, 자연과의 교감, 진실한 사랑의 나눔, 지식 탐구를 통한 의식의 확장, 신과 진리에 대한 겸손한 자세 등이 필요하다.(본문 118쪽)
동심은 아이의 순진한 마음만이 아니다. 그 속엔 인간의 본질에 대한 철학이 있고, 궁극에 도달하려는 꿈과 그리움이 있다. 동심의 세계란 신과 인간과 만물이 교감하는 원초적인 세계이다.--- p.119
인물을 창조하는 것은 조각가가 작품을 창작하는 과정과 같다. 나무나 판자 위에 스케치를 하고 조각도를 들이대고 섬세한 손질로 다듬어간다. 그러면 점차 인물은 평면 상태에서 부조가 되고, 환조가 되고, 이윽고 살아 활동하게 된다.--- p.270
아동소설에 쓰는 문장은 정확하고 논리적이어야 한다. 소설은 사실에 큰 토대를 두므로 문장 역시 섬세하고 분명한 것이 좋다. 지나친 비약이나 비유가 많은 문장은 아동소설에서 조심하는 것이 좋다.--- p.288
독자는 샤푸리야르 왕과 같다. 이야기를 어설프게 했다가는 ‘당장 참수하라’는 명을 내린다. 그러나 반대로 정말 재미있게 끌고 가면 생명을 연장시켜 줄 뿐만 아니라, 왕이 그랬듯이 독자도 변화를 받고, 마지막에는 왕비의 자리에 올려준다.--- p.305
작가는 당연히 작가 자신의 빛깔과 자양분을 유감없이 발휘해야 한다. 자신만의 초월적인 상상력으로 상황설정과 기발한 해결 방식을 이끌어 내야 한다. 작가의 독특하고도 신선한 철학을 보여 줘야 한다. 그것이 바로 작가의 개성이며 자질이다. 이렇게 절정부분에서 작가는 자신의 빛을 가장 강하게 터뜨려야만 한다.--- p.345
절정을 그리는 비결은 이렇게 상상력을 배반하는 것이다. 독자의 상상을 배반할 뿐만 아니라, 작가 자신의 상상력까지 배반하게 된다. 그럴 때 작가는 영감의 존재를 믿게 되고, 창작의 열기는 더욱 고조된다. 창작의 열기가 고조되면 구상하지 않았던 기상천외한 상상력이 튀어나온다. 그때 비로소 누구도 흉내 내지 않은 온전한 창작이 이루어지니, 절정에서 그것은 가장 눈부시게 꽃핀다.--- p.352
어느 시인은 ‘가야 할 때를 알고 가는 사람의 뒷모습’이 아름답다고 했다. 끝내야 할 시점에서 끝내는 것이 마무리를 아름답게 하는 비결이다. 그것은 작가가 모든 이야기를 임의로 전단하지 않는 데서 나온다. 어느 시점에서 독자에게 맡겨두고 독자가 완성하게끔 하는 것이다. 결국 자품을 완성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작가는 섣불리 독자의 몫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
--- p.3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