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과 생존을 맞바꾼 인간의 어리석음
김기옥 (blog.yes24.com/dfmusic)
인간은 모든 것에 쉽게 익숙해진다. 더 이상은 한 순간도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고된 하루도 그것이 매일 이어지다 보면 어느새 일상이 되어 버리고, 친절하고 따뜻한 사람이 곁에 있으면 그의 마음에 매번 감사해하기보다 '원래 그런 사람이다' 라며 당연해하기 마련이다.
매스미디어에서 쏟아내는 뉴스들이 하루하루 시간이 흘러갈수록 점차 잔인하고 자극적으로 변해가는 것도 그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제 웬만한 것에는 관심조차 갖지 않는다. 밤거리에서 일어나는 범죄는 늘 일어나는 일이니 알아서 조심해야 하며, 기업인들의 횡령이나 정치인들의 비리 따위는 오히려 당연한 일이 되어 버렸다.
그렇다면, 환경에 대한 우리의 시각은 어떠한가. 환경호르몬이며 발암 물질 등 사용하지 말라는 것, 먹지 말라는 것이 넘쳐나는 요즘이다. 아침에 눈뜰 때부터 잠들 때까지 우리 생활 곳곳의 화학 성분과 유해 물질들을 밝혀낸 글들을 읽고 있노라면 대체 무엇을 먹으며, 어디에 손을 대라는 것인지 오히려 난감해지기 마련이다. '나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다른 대안이 없지 않은가.' 결국, 언제 그런 얘기를 들었냐는 듯, 혹은 알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원래의 생활로 돌아가는 것이 바로 우리들이다.
이 책은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파괴되어가는 지구와 환경을 다루고 있다. 당장 입에 넣은 그 음식이, 손에 쥐고 있는 그 물건이 얼마나 위험한지 낱낱이 파헤쳐야 관심을 갖는 우리들에게 어쩌면 지루하고 고리타분한 이야기로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이 익숙하고 당연한 우리들은 우리가 밟고 있는 땅과 숨쉬고 있는 공기의 존재는 가볍게 지나쳐 버리기 마련이니까.
내일은 저절로 챙겨진다는 믿음으로 모두가 평화롭고 욕심 없이 지내던 섬 나우루. 나우루인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환경에 만족했고, 그 자연의 일부로 살아왔다. '유쾌한 섬(Pleasant Island)'이라 불리던 이 곳 낙원에는, 자연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개체가 존재했고 그 속에서 인간은 필요한 만큼의 그리고 자연이 제공해 주는 만큼의 자원을 얻으며 생활해 왔다.
그러나, 농업에 필요한 자원인 인광석이 대량으로 발견되면서 '유쾌한 섬' 나우루는 '태평양에서 가장 부유한 섬'으로 탈바꿈한다. 지속 가능한 안정적인 미래를 버리고 자본주의 시장 경제 속으로 뛰어든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우리의 예상대로였다. 섬은 황폐화되었으며 많은 생물들이 멸종되었고, 비만, 당뇨, 고혈압 등 새로운 질병들이 만연하게 되었다.
자급자족의 시대부터 자본주의 경제의 시대까지 나우루는 확연히 변화했지만, 정작 나우루인들은 그 변화를 실감하지 못했다. 섬은 황폐화되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유쾌하며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섬에 일어난 변화가 여러 세대를 거치며 점진적으로 일어났기 때문에 정작 개인은 그 변화의 정도를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환경이 얼마나 깨끗했으며, 얼마나 많은 종의 생물이 존재했는지 그 시대를 살아보지 못한 우리는 알 수가 없다. 지금 존재하는 생물 중에서도 수많은 개체가 멸종의 위기를 맞겠지만, 미래를 살아가는 우리의 다음 세대 역시 그 존재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저자는 나우루의 과거와 미래, 그리고 그 변화의 과정을 담담하게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나우루가 얼마나 처참하게 파괴되었으며, 나우루인들이 얼마나 가혹한 현실을 맞았는지를 감정적으로 접근하기 보다는 환경과학/생태경제학 교수다운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 나우루 외에도 다양한 종족, 혹은 생물의 예를 들고 있어 마치 한 권의 문화인류학 교재를 읽는 느낌이다.
'인간은 환경을 파괴하고, 지구를 오염시키고 있다.' 이 책은 감히 이런 생각을 하는 인간의 오만함을 지적한다. 그 겉모습은 계속 변화해왔지만, 지구는 늘 이 자리에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 위에서 새로 생겨나고, 변화하며 멸종하는 것은 생명체이고 바로 우리 인간이다. '지구의 오염'이라는 식으로 위기 의식을 제3의 대상에게 돌리지 말라. 우리가 파괴하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