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 이 점에 대해서만은 '구좌파' 학자인 에릭 홉스봄, '신좌파' 학자인 베네딕트 앤더슨, 자유주의적 학자인 어네스트 겔너 그리고 계간 『인터내셔널 소셜리즘』의 이전 편집자인 나이젤 해리스 등과 같은 다양한 권위자들이 견해를 같이 하고 있다. 앤더슨의 말을 빌리면, 민족들은 '가상적' 실체이다
--- 머리말 중에서
민족국가와 융성함에 따라 모든 곳에서 문화의 차이점에 대한 강조가 뒤를 이었다. 서방의 선진국에서는 생물학적 인종차별주의 이데올로기가 20세기 마지막 4반세기 동안에 문화적 인종차별주의에 어느 정도 자리를 내주게 되었다. 문화적 인종차별주의는 비(非)백인의 생물학적 열등성에 대해 언급하지는 않지만, '문화적 후진성'이나 최소한 비영국인, 비프랑스인, 비독일인 - 더 일반적으로 비유럽인 또는 비서구인 - 등의 배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문화적 차이'에 대해 언급한다.
지난 1978년 선거 직전에 마가렛 대처가 영국 민족이 "다른 문화를 가진 민족에 의해 침몰"되고 있다고 주장하며 인종차별적 카드를 사용했던 것이 바로 이런 예이다.
이런 주장은 좀 완화된 형태로 이어져, "모든 사람은 그들 나름의 문화를 가지고 있고, 따라서 우리는 당연히 우리 문화에 일체감을 가지며, 다른 집단은 자신의 문화에 일체감을 갖는다"고 주장된다. 이런 사고는 점차로 영국에서 국가교육 과정의 내용을 '영국사', '영문학', '기독교'로 채우는 우익 이데올로그의 기초가 된다. 흥미롭게도 이들 이데올로그는 복음주의의 기독교인과 이슬람 근본주의자들 모두가 자신들의 학교를 설립할 권리가 있음을 강력히 주장한다.
좌익으로 간주되던 사람들 중 일부도 이런 견해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많은 자유주의적 지식인들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의 가치를 존중해야 하며, 심지어 문화가 사생아화한다며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문화 지상주의로 위장하고 있는 인종차별주의에 대해 반대 의사를 표하는 사람들 중 역시 다수가 문화적 분리주의를 주장하며 별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조상이 아일랜드인, 유태인, 미국인, 아시아인, 아랍인, 이슬람교도, 아프리카인이기 때문에 자신들의 '토착 문화'의 순수성과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고 서슴없이 주장하고 있다. 그들은 '문화의 말살과 문화적 제국주의'에 대항한 투쟁을 언급하며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한다.
그러나 문화의 분리에 대해 서로 다른 강조점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 보수 우파건, 자신을 인종차별주의나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좌파라고 여기는 자들이건 간에 - 이들의 주장은 동일한 오류를 가지고 있다. 즉 그들은 민족국가 및 민족주의의 번성은 문화들의 점차적인 다양화 때문이라고 가정한다. 그러나 사실 현대 세계는 문화들의 통합, 동질적인 세계문화로의 경향이 특징이다. 이 경향은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개별 민족들의 지적 창조물은 공동의 재산이 되고, 민족적 일방성과 편협한 정신은 더욱더 불가능해지며, 많은 민족적 문학과 지역적 문학으로부터 세계문학이 생성된다"는 점을 언급했을 때보다도, 또는 90여 년 전에 카우츠키와 레닌이 문화들의 융합에 대해 썼을 때보다도 훨씬 더 명확하게 나타난다.
--- pp.83-85
만일 민족과 계급의 관계를 명확히 하지 않는다면, 좌파는 자신의 책임을 완수하지 못할 것이다. 그 출발점은 민족주의가 자본주의 사회를 조직한다는 점을 명확히 이해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카우츠키와 레닌이 오토 바우어에 비해 절대적으로 옳았다. 국제주의는 여러 민족주의들의 산술적 합산에 의해 성취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해 의식적으로 반대함으로써 이룩될 수 있다.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영국, 아일랜드, 러시아 또는 우크라이나 사회주의자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 나라 가운데 어느 한 나라에 우연히 살고 있는 사회주의자가 존재할 뿐이다. 사회주의자들은 자신의 민족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 그들은 자기 민족을 부인하는 것에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마찬가지로 사회주의자들은 '그들 자신'의 민족문화의 유지를 찬성하지 않으며, 모든 문화에서 가장 훌륭한 점을 새롭고 세계 시민주의적이며 인간적인 문화로 통합하는 것을 지지해야 한다. 이 점은 억압민족의 문화와 일체감을 가지고 자란 사람들에게 중요하다(물론 그들에게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 레닌이 반복해 강조했듯이,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이 노동자들을 끌어모으는 바로 그때, 문화의 분리를 옹호하면 노동자들의 분리를 옹호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렇게 되면 억압민족과 피억압민족의 반동들이 이익을 얻게 된다.
그러나 동시에 사회주의자들은 서로 다른 민족의 노동자들을 한 데 모으기 위한 유일한 길은 자유로운 연합을 주장하는 것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국제주의는 현존 국가들과 동일시를 의미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을 특정한 민족에 속한 것으로 간주하는 노동자들은, 만일 자신들이 분리를 원할 경우 자신들의 분리권을 다른 민족의 노동자들이 옹호한다는 것을 모른다면, 같은 국가 내의 다른 노동자들과 자유롭게 연합할 수 없다. 크로아티아 노동자들은, 만일 세르비아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권리들 - 분리권을 포함해 - 을 옹호하지 않는다면, 세르비아 노동자들과 연합하지 않을 것이다. 세르비아 노동자들 또한 만일 크로아티아 노동자들이 크로아티아 내의 소수 세르비아인에 대한 모든 차별과 억압에 반대하지 않는다면 크로아티아 노동자들과 연합하지 않을 것이다. 오직 서로 다른 민족의 노동자들이 서로의 권리를 옹호해 줌으로써만 그들은 민족이 어느 누구에게도 아무런 중요성을 갖지 않는 상황을 만들 수 있다.
--- pp.131-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