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이 나라의 구석구석을 햇빛처럼 살펴 주던 자상한 영도자의 머리 모양과 옷차림이 유행한 적이 있다. 미군 해병대 병사처럼 옆머리는 말끔히 깎고, 윗머리는 기름 발라넘기는 스타일의 머리를 그이가 유지하는 동안 공무원들은 위로 장관부터 아래로 면 서기에 이르기까지 죄다 그 모양을 유지했고, 감색 양복을 입는 순간 전국의 공무원복은 감색 양복이 되었다. 그이가 새마을운동을 주도할 무렵에는, 넥타이를 풀어 버리고, 와이셔츠 깃을 양복 웃옷 위로 내놓는 순간 국록을 먹는 이들의 복장은 죄다 그러했다. 이를 두고, 국가의 최고 지존이며 국운과 직결되는 대통령의 안위를 걱정한 공무원들이 그와 똑같은 복장과 외모를 함으로써, 만일에도 있을지 모를 불순세력의 저격이나 암살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고도의 경호책이라는 추측을 한 적이 있었다.
「파격」 본문 중
지금부터 전하고 싶은 전설은, 온 국민에게 자신의 머리 스타일을 권하다 못해, 강제로 깎이는 세심한 보살핌의 영도자가 있었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사람의 심리란 것이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심정이며,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는 걸 부득부득 하는 사람들을 절대 용서하지 않는 사람이 한 하늘을 이고 살게 되니 어찌 참혹한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손가락으로 남의 머리를 헤집어 그 위로 조금이라도 삐져나오면, 수제 바리깡으로 고속도로 내 주는 걸 취미로 여기던 스승 밑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이라면, 그 당시 모든 학생들의 꿈은 남북통일도 아니요, 서울대 진학도 아니요, 노벨상 수상도 아닌, 마음대로 머리 길러보는 것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아침마다 교문에 바리깡을 들고 서 있는 스승의 눈을 피하기 위해, 학교 담장을 즐겨 넘었고, 시험 때 갑자기 들이닥치는 바리깡을 피해, 과감히 백지 권당(捲堂)을 하기도 하고,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 추억을 남겨 주겠다며(누가 남겨 달라고 했나) 애지중지 기른 졸업생들 머리를 식장 앞에서 바리깡으로 밀어 주던 수학선생을 피하려고 졸업식마저 불참하는 필사의 노력으로 근석은 제 머리털을 지켰다. 피눈물 나는 노력의 결과로, 대학교 신입생 환영회 때, 재수생이냐는 황홀한 질문을 받았던 근석은, 중 고등학교 6년 동안 가슴에 쇠못처럼 박혔던 한을 풀 요량으로 사정없이 머리를 길렀다.
「펑크머리」 본문 중
국민학교 졸업여행으로, 수만의 중공군을 통째로 수장하였다는 파로호를 둘러보고, 시퍼런 물 밑에서 오랑캐들의 시체가 시뻘건 목을 내밀 듯 하여 멀찌감치서 돌멩이나 두어 번 던져댔고, 좀더 커서는 다리에 각반을 차고, 얼룩무늬 교련복을 입은 채, 고무로 만든 총을 들고 찔러 총이니, 베어 총이니 하는 총검술 훈련을 받은 세대들에게, 반공은 자나 깨나 잊지 말아야 하는 단어로 인각되었다.
밀가루 묻힌 사탕을 입으로 물고 달리던 운동회는 어느 결에 모래주머니 들고 뛰는 ‘사낭 나르기’로 바뀌었고, 야구공을 던지던 체력검사는 안에 철심이 박힌 모의수류탄 던지기로 대체되었다. 소풍지나 놀이터 주변에는 도깨비처럼 그려진 북괴 수령의 커다랗게 벌린 입으로 야구공을 던져 넣는 오락장이 있었는데, 100원에 열 개씩 바구니에 담아 주는 야구공이 커다란 입으로 명중될 때마다 환호성을 질렀다.
「갈마리 반공 용사 순국기념비」본문 중
무슨 놈의 여섯 번 던져 한 번도 나오지 않는 확률은 또 뭐고, 한 술 더 떠, 열두 번 던져 한 번도 나오지 않는 확률은 또 무어란 말인가. 그렇다면 8만 9천5백6십7번을 던져도 3이라는 숫자가 한 번도 안 나올 확률도 있다는 말이 아닌가.
그날 저녁, 비장한 눈빛으로 찾아가 따지듯 질문하는 그를 돋보기 너머로 지그시 바라보던 수학선생님은 말씀하시기를,
“얼라야, 세상에 어디 정답이 있노? 사는 기 다 정답인기라.”
멀거니 돌아서는 그에게, 희랍의 철학자 같은 눈빛으로 수학선생은 다음 말을 덧붙였다.
“8만9천5백6십7 번이 아이라, 890만 번을 던져도 니 3이라는 게 한 본도 안 나온다면, 그기 답이지 우야겠노? 근데, 니 설마, 주사위 붙잡구 890만 번 던지고 있을라는 건 아니겠제?”
「890만 번 주사위 던지기」본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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