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2001년 08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152쪽 \| 240g \| 12820520mm
ISBN13	9788932012728
ISBN10	8932012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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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 편집자가 사랑한 책

P.M. 3:00 ~ 4:30 책상 부장 윗선의 갑작스런 서류만들기 지시가 내려온다. 서류작업은 늘 급하고 내가 뭐 기계야 그래 나 기계야 하며 바쁘게 서류를 만든다. P.M, 12:00~ 방 바다로 가고 싶다는 기억이 켜진다. 출렁이는 잠 속으로 빠져든다. 현대문명 안에서 유목하는 인간은 태생 그대로의 자연성을 잃고 기계의 숲에 함몰되어 있다. 시인은 이러한 현실을 어둡게 성찰한다. 이 숲 속에 들어찬 군상들의 정물화는 우리에게 씁쓸한 자각을 주는 것과 함께 세계의 비밀을 밝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문명비판도 전자사막을 건너는 지침서도 아니다. 그 살풍경에 대한 차가운 응시이며 관찰과 소묘다. 여기에 이 시집의 매력이 있는 것이다. 뿌리에 관한 욕망을 지워버린 욕망 위에 서있는 작가는 누구나 의심치 않는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에 의문을 던진다. 위에서 인용한 「사이보그 5 - 매뉴얼(회사원 97-01-pd038.♀.26세)」에서 그 의문은 극명화 되어 있다. 독자는 시 속에 펼쳐진 하루가 자신의 삶과 흡사한 것에 놀랄 것이다. 지극히 일상적인 사물인 휴대전화, 지하철, 엘리베이터에 우리는 어떤 낯설음도 가지지 않는다. 그러나 사실 기계문명화의 주된 현상인 것을 시인은 포착한다. 휴대전화는 나 자신의 몸을 켜놓고 나를 전송해 주는 물체이며 엘리베이터가 열릴 때 세계는 급작스럽게 광폭이 되고, 지하철은 휘발되거나 녹지 않으면서 강을 건네주는 가벼운 순환선이다. 뿌리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 날 밤부터 잠이 오기 시작했다 두 다리는 뿌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길이 확인시켜준 다음날부터 꿈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실크로드) ‘야후!의 강물에 천 개의 달이 뜬다’는 전체가 일관된 소재, 주제로 구성되었으며 새롭고 낯선 맛을 곱씹을 수 있는 시집이다. 시의 부메랑이 몸 안에 던져지면 우리의 프로필은 어둠의 허공에 새로 씌어지리라. --- 문학과지성사 문학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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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원

서울예대 문창과, 동국대 문예대학원 문창과 졸업. 1992년 『세계의문학』 에 시를 발표하면서 시단에 데뷔하였다.

시집으로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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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나는 요추 4번과 5번을 갈아끼웠다
에어컨이 켜진 실내는 24도였다
일몰 무렵이었고
나무들은 흔들리지 않았다
61병동 복도를 가로막은 유리창에는 정지선에 걸린 차들이 늘어섰다
도로는 오래된 관념처럼 두 개의 노선만을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우주선처럼 생긴 수술대 위에서 요추 4번과 5번을 갈아끼웠다
허블 우주망원경 대신 세 개의 조명이 드리워졌다
영구적으로 썩지 않는 링 두 개가 4번과 5번을 연결할 때
토론토발 대한항공 비행기는 한 시간째 연착 중이었다
내가 수술실을 빠져나오기도 전에
전광판의 314는 수술실에서 회복실의 전광판으로 옮겨 깜박거렸다
적어도 이제 기계들은 삶에 먼저 도착했다
가로등은 아직 켜지지 않고 있었다
내게는 314라는 유사 바코드가 찍혀 있었다
신경외과의 저녁 식단은 뭇국과 탕수 완자 세알이었고
수술실에서 회복실로 통하는 복도에서는 피냄새가 아니라
기계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나도 그 속도를 따라가야 했다
마취제와 기계 소리 사이에서 나는
7지구에 있던 기억 하나를 재빨리 3지구로 옮겨 놓았다
폐장 직전 주가는 다시 천 포인트를 회복했다
나를 운반하던 침대가 승강기 앞에 멈추었다
승강기도 오래된 관념처럼 두개의 기호만을 보여주었다
나는 전력이 공급되는 곳이면 어디든 괜찮았다

--- pp.5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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