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는 부패가 일탈이 아니라 관행이고, '구조'이자 '문화'로 존재하는 사회라고 말한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부패공화국'이라는 표현에서도 나타나는 바와 같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인의 '생활양식'의 하나라고까지 여겨지기 때문에, 비리가 적발되어 처벌받는 사람은 만연한 부패를 이유로 자신을 정당화하고 항변하게 된다. 그러한 부패구조의 일부로서 비공식적인 방법으로 정치자금을 동원하는 것도 '구조화'되어 있는 사회라고 할 수 있는바, 이것이 한국 정당정치 재생산의 중요한 측면으로 존재하고 있다.
한국정치 개혁의 핵심적인 과제는 사실 투명성이고 반부패성의 실현이다. 군부권위주의 시대의 중심적 정치세력이었던 보수주의 세력이 곧 부패구조에서 핵심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할 때, 반(反)보수는 상당 부분 반(反)부패와 일치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정치혁신은 바로 반부패의 방향으로 한국정치를 선진화해 가는 방향성을 가져야 한다. 앞서 지적하였듯이 한국 정당정치는 고도성장체제에서의 부패의 연쇄구조 속에 한 부분으로 존재해 왔다. 회근 경제위기에서 기업의 경영투명성 문제가 사회적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는데, 투명성이 가장 절박하게 요구되고 있는 영역은 다름아니라 정치이다. 왜냐하면 기업의 투명성 확보는 사실 정치자금 동원의 투명화를 통해서 비로소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실 정치적 부패의 척결과정은 정치와 경제, 정치와 사회, 기업과 정치, 정부와 기업의 왜곡된 관계를 정정해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현재 한국사회에서는 부패방지법도 제정되어 있지 않고, 부패비리의 제보자에 대한 보호규정도 적절하게 제도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부패가 적발된 경우에도 그것은 적절히 처벌되지 않고, 부패에 연루된 정치인들은 지역감정에 편승하면서 정치적으로 제기하게 된다. 정치의 부패에 대한 사정이 이루어지는 경우에도 그것은 쉽게 정치화된다. 초기 김영삼정부하에서도 과거 부패에 대한 개혁과 사정이 이루어졌지만, 그것은 곧 정치화되었다. 정치화되었을 대 사정이나 개혁의 순수성은 담보되지 않고 곧 측면적인 저항을 받게 된다. 김대중정부하에서도 부패에 대한 수사는 다분히 정치화되어 전개되고 있는데, 그럴 경우 사정과 개혁은 성공하기가 어렵다.
과거에는 기본적으로 여야를 막론하고 부패의 고리 속에서 공생한 측면이 있다. 그러므로 일정하게는 부패에 '몸을 담그지 않으면 안 되는' 구조 자체를 혁신하지 않으면, 즉 돈이 없어도 혹은 불법적으로 정치자금을 동원하지 않아도 정치를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지 않는다면, 정치의 선진화는 달성될 수 없다. 정치자금의 조달경로가 부패를 전제로 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정치권은 부패의 공생처가 된다.
이런 측면에서 명백한 제도적 혁신이 이루어져야 한다. 부패방지법을 제정하는 것, 특히 고위 정치인·관료직에 대한 '특별' 수사와 처벌의 제도를 만드는 것이 요구된다. 김대중정부 초기의 '여소야대' 구조에서 이 구조를 허물기 위한 의원영입 작업에서 반부패정치 구현의 원칙적인 지향이 실종되고 오히려 자신의 부패와 치부에 대한 '정치적 우산'의 필요성 때문에 집권당으로 이동하는 사례도 많았는데, 이는 반부패로의 정치선진화 방향과는 거리가 있다고 아니할 수 없다.
본질적으로는 기존의 부패구조에 연루되지 않은 새로운 정치세력의 출현과 강화를 통해 가능하겠지만, 반부패의 정치혁신은 과거 야당인 집권여당의 자기개혁 속에서 일정한 진전을 볼 가능성도 있다. 오랜 동안의 부패구조에서 주변부 - 결코 예외적인 위치는 아니다 - 에 있던 구야당인 현재의 여당은 상대적으로 이러한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있다. 그러나 이것은 과거 야당인 집권여당이 자기개혁적으로 반부패를 실현하고자 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기존 권위주의적 정권 시기의 부패구조에서 야당이 예외일 수 없었다면, 부패의 척결과정은 반대정당에 대한 사정일 뿐만 아니라 집권여당 자신에 대한 혁신의 과정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여당이 집권여당으로서의 지위에 탐닉하고, 자신들이 향유하지 못했던 정치자금 조달과정에서의 여당의 유리한 지위에 탐닉한다면 이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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