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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의 눈물

소의 눈물

곽인완 | 다리미디어 | 2001년 08월 31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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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1년 08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312쪽 | 418g | 153*224*30mm
ISBN13 9788988556320
ISBN10 8988556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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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 세상에서 못 살겠다고 남쪽 땅 대한민국으로 피난 온 나는 군 복무 기피자였다. 공산당이 싫어서 대한민국으로 피난 온 남자가 군대에 갈 나이가 되면 응당 입대하여 총을 들고 일선으로 가서 인민군과 중공군을 무찌르고, 고향 땅에 돌아가기 위해 싸워야 하는데 국민의 의무인 군복무를 기피하였으니 참으로 염치없고 창피한 일이다. 그러나 1950년대 초의 분의기로는 군대에 입대하여 전선에서 싸우다가 죽기가 너무도 억울했다. 그 당시에는 '빽 있는 사람'과 '돈 있는 사람'치고 군대에 가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나라의 운명은 풍전등화인데, 학생들은 '군입대 보류'였다. 학교를 마칠 때까지는 군대에 갈 의무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전선에서 적과 싸우는 군인은 대부분 학교를 못 다니는 시골 청년 아니면 도시의 빈민층 자식들이었다. 그런 판국에, 살겠다고 고향과 가족을 버리고 피난 온 내가 학교에 못 다니는 것도 억울한데 학교에 못 다닌다고 군대에 먼저 나가 죽는다는 것은 바보짓이요, 미친짓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이쪽저쪽으로 가호적을 옮겨 다녔고, 그런 동안 내 나이는 네살이나 줄어들었다. 나는 실제로는 1934년생인데 1938년생이 되었다. 같은 이름으로 가호적을 옮겨 다니면 들통이 날까봐 이름도 고쳤다. 나의 이름은 곽의완에서 곽인완으로 바뀌었다.

당시 전쟁에 필요한 돈과 물자는 미국이 감당하였고, 부산에 피난을 내려온 정부는 나라 살림을 꾸려갈 돈이 없었다. 그 때문에 공무원의 월급은 쌀 한 말 값에도 채 미치지 못해고, 월급만으로 살아가는 공무원은 아무도 없었다. 세무 공무원은 이집 저집으로 다니며 세금을 거두어 자기 생활비를 충당하기에 바빴고 군량미는 이리 저리 새어나가고 군대에 간 사병들은 총 맞아 죽기 전에 굶어 죽을 지경이었다. 향토 방위군에 끌려간 숱한 사람들 역시 굶어 죽기는 매한가지였다. 어떤 형사들은 급하게 돈 쓸 일이 생기면 소매치기를 시장에 풀어준 뒤 뒤를 봐주면서 돈을 챙겼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주머니를 털던 소매치기가 피해자에게 잡히면 형사가 슬며시 나타나 자기가 경찰임을 확인시키고 그 소매치기를 끌고 가는 척하다가 뒷골목에서 풀어주는 것을 나는 여러 번 보았다.

군복무 기피자를 단속하기 위한 거리 검문이 자주 있었는데, 기피자를 잡아 군에 입대시키기보다는 적발하여 돈을 뜯어내고자 하는 형사들이 더 많았다. 사람에 따라서 자기 나이보다 훨씬 어리게 보이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훨씬 많아 보이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자기 나이를 속인 도민증을 제시하고 그것이 진짜 자기 나이라고 우기면 형사는 할 말이 없었다. 형사가 아무리 봐도 나이를 속이고 있다는 심증이 가고 도민증의 나이가 엉터리다 싶을 때, 무슨 띠냐고 물어 확인하는 일이 흔했다. 나는 원래 개띠인데, 나이를 고칠 때마다 고친 나이의 띠가 무엇인지 외우는 것도 그리 쉽지많은 않았다. 엉터리 나이의 띠를 모르는 사람들은 다그쳐 묻는 형사의 심문에 얼결에 엉터리 띠를 대기도 했는데, 그때문에 고양이 띠, 여우 띠, 심지어 너구리 띠까지 등장하곤 했다. 참으로 암울하고 갑갑한 세상이었다.

1960년대가 되어서는 그래도 사람들 대부분이 군대에 가는 세상이 되어고, 나는 1964년에 아무 불평 없이 군에 입대하여 군의관 생활 6년을 하고, 육군 대위로 제대를 했다. 참으로 세상이 공평해야 사람들도 불평 없이 자기의 의무를 다하게 된다는 것을 그 사실만으로도 확인이 된 셈이다.
--- pp.21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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