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은 “철학은 추상적인, 그리고 일상에서 괴리된 개념들에 관심을 갖기 때문에 우리가 경험하거나 측정할 수 있는 것들과 관련이 없는 것이라고, 그러므로 의미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래디먼, 2003: 78). 그리고 과학은 의미 없는 ‘형이상학적·사변적인 것을 배제해야 한다’라고 믿으며 철학적 논의를 기피하고 있다. 그러나 과학을 철학과 무관하거나 철학을 배제한 지식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일상적인 사례로, 법정에서 판사는 원고의 주장과 피고의 주장 중 어느 것이 ‘진실’(에 가까운 것)인가를 판단하게 된다. 판사가 원고나 피고의 주장을, 증거가 부족하다거나 일관성이 없다는 이유로 기각하는 것은 무엇을 기준으로 진술의 진실 여부를 판단할 것인가에 대한 견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p.13
과학지식의 전제가정과 내용이 철학 또는 형이상학의 영역이라고 간주해온 것과 얽혀 있을 뿐 아니라, 과학적 실천의 다른 측면들도 ‘초(超)경험적’ 또는 철학적 견해를 내포하고 있다. 과학자의 연구주제 선택이 ‘가치판단’과 ‘실천적 이해관심’의 영역이라는 점은 이제 널리 인정받고 있다. 이와 유사하게, 인간이나 동물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과 관련해서 발생하는 윤리적 문제는 과학의 실행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이 문제를 제도적으로 고려하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연구의 비용은 누가 부담하는가, 연구결과의 이용에서 누가 권력을 행사하는가라는 문제는 ‘과학’의 외부적 조건에 그치지 않고 과학지식의 내용을 방향 짓고 제한한다. 이런 문제들에 대한 고려는, 말하자면 과학의 ‘자기의식’ 또는 ‘과학에 대한 과학’이라고 할 수 있으며 ‘철학’의 영역에 속한다.--- p.20
실증주의 과학관은 과학이 과학적 방법의 체계적 적용을 통해 획득한 객관적인 지식을 축적한다고 믿는다.……그리고 과학적 지식의 정당화가 연역적 논증 형식을 갖는다고 분석하면서, 형식논리학의 영역을 넘어서는 사유작용을 통한 ‘발견’을 간단하게 ‘추측’이라는 주관적이고 임의적인 과정으로 무시한다. 그렇지만 모든 추측이 지식주장의 지위를 갖지는 않는다는 사실, 발견된 지식주장이 있어야 이를 정당화할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발견되었지만 아직 정당화하지 못한 지식주장이 많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실제로 과학자들은 정당화보다 발견에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한 설령 과학의 발견이 ‘추측’의 산물이라고 하더라도, 아무나 추측을 통해 지식주장을 발견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과학에서의 추측이 아무렇게나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고유한 특성을 지니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럼에도 실증주의 과학관은 과학적 작업의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아마도) 고유한 특성을 가지고 있을 발견에 관해서는 아무런 해명도 제시하지 않는다.--- p.88
또한 과학자의 가치나 이해관심 같은 요인이 과학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리고 사회적 요인이 과학의 내용을 왜곡하는 ‘외부적인 것’이 아니라 과학지식을 구성하는 요소의 하나이지만, 그것에서 사회적 요인이 과학지식의 내용을 결정한다는 결론을 이끌어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사회적 요인이 과학지식의 내용 모두를 구성할 수는 없다.……특정한 지식이 어떻게 생산(또는 구성)되고 그 지식에 대한 믿음이 어떻게 유지되는가의 문제와 그 지식의 내용이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진리인가의 문제는 명확하게 구별된다. 과학지식은 과학자들의 특정 견해의 제안, 수렴, 동의, 수정, 보완 등의 의사소통과정을 통한 검증과 (상호주관적) 합의를 통해 성립한다. 이때 과학자들의 검증과 합의의 근거를 이론의 내용과 무관하게 순전히 과학자들의 사회적·심리적 요인에서 찾는 것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p.138
과학지식을 포함한 인간의 지식은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대상으로 인간이 ‘알아낸 (그리고 사유 속에서 재구성한) 세계’이다. 세계에 존재하는 ‘있는 그대로의 객체들’ 자체와 그것들에 대한 인간의 지식, 즉 사유 속에서 재구성한 ‘알아낸 객체(에 대한 체계적 진술로서의 이론)’는 명확히 구별된다. 인간은 자신이 ‘알아낸 세계’를 통해서만 ‘있는 그대로의 세계’에 접근할 수 있다. 1970년대 후반부터 활발하게 비판적 실재론의 과학관을 주창해 온 바스카는 이러한 ‘상식적인’ 구별을 기초로 과학에 대한 더 진전된 견해를 제공한다.--- p.148
자연세계나 사회세계의 객체들은 다른 객체들과 함께 존재하며 서로 영향을 미치며 움직인다. 경우에 따라 특정 객체에 고유한 힘과 속성에 따른 운동을 상쇄하거나 변형하는 힘이나 속성을 가진 다른 객체들의 간섭에 의해 특정 객체의 힘과 속성의 작동은 제약되거나 상쇄될 수 있다. 특정 객체의 힘이나 속성의 작동 결과를 경험적으로 관찰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 객체의 존재는 ‘초경험적으로’ 또는 ‘초사실적으로’ 상정할 수 있다. 그리고 층화된 존재론을 전제한다면 과학의 탐구는 경험적 영역에서 실재적 영역으로, 즉 경험의 유형을 확인하는 것에서 그러한 유형을 발생시키는 객체들의 힘과 속성을 상정하는 ‘존재적 가추(existential abduction)’를 필수적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새로운 실체들에 관한 가설을 도입하는 사례는 과학에서 풍부하다. 여기서 가추는 ‘발견의 논리’이고, ‘정신적인 도약(mental leap)’, ‘창조적 도약(creative leap)’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p.206~207
자연세계의 객체들은, 상식적으로만 보더라도 물질적으로 존재하며 따라서 실재한다고 인정할 수 있다. 하지만 믿음이나 가치, 감정, 도덕, 여론, 관계 등과 같은 것들에 대해서는 동식물이나 기체, 화학합성물 등과 같이 존재한다고 인정하고 자연과학이 탐구하는 것처럼 탐구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생긴다. 이에 대해 바스카는 “과학에서 상정된 객체의 실재성은 관찰가능한가라는 지각적 기준이 아니라 사물들에 변동을 가져올 수 있는가라는 인과적 기준을 통해 판별하는데, 해석학의 전통과 윈치 등은 개념적인 것과 지각가능한 것을 나누는 이분법을 사용함으로써, 인과적 기준에 의해 실재성을 부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무시한다”라고 비판한다.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존재 여부를 규정하는 것은 ‘인간중심적’인 오류이다.--- p.256~257
사실과 가치는 객관과 주관의 상이한 영역에 속하는 범주가 아니다. 실제의 과학은 그 결과들을 수정하고 교정하며 다른 이론이나 시각과 통합하는 지속적인 평가적 활동이다. 과학의 ‘사실’은 평가를 포함하며 평가는 가치를 전제한다. 가치가 궁극적으로 세계에 대한 주관적 인식에 기초한다면, 사실도 마찬가지이다. 사실이 외부 세계의 사물이나 사물의 속성이 아니라 외부 세계와 인간의 상호작용 형태라면 가치도 마찬가지이다.
--- p.2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