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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사

고대 로마사

: 로물루스에서 유스티니아누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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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10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376쪽 | 565g | 152*225*20mm
ISBN13 9791186293331
ISBN10 1186293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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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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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토머스 R. 마틴 Thomas R. Martin
홀리크로스대학의 고전학 교수. 저서로 ≪고대 그리스사: 선사시대에서 헬레니즘 시대까지 Ancient Greece:
Prehistoric to Hellenistic Times≫, ≪고대 로마사: 로물루스에서 유스티니아누스까지 Ancient Rome: From Romulus to Justinian≫, ≪헤로도토스와 사마천: 그리스와 중국의 첫 위대한 역사가들 Herodotus and Sima Qian: The First Great Historians of Greece and China≫이 있으며, 린 헌트(Lynn Hunt)와 함께 저술한 ≪서구의 형성: 사람과 문화 The Making of the West: Peoples and Cultures≫ I·II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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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들의 그리스 문화 접촉은 그들의 생활양식을 발전시키는 데 커다란 효과를 발휘했다. 그리스인들은 기원전 5세기에 문화가 만개했는데 이때에 로마는 아직 그 나름의 문학, 연극, 기념비적 건축 등을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마침내 로마인들이 이런 문화적 특징을 발전시키기 시작했을 때, 그들은 그리스 모델을 영감의 원천으로 삼았다. 그들은 윤리적 가치와 컬트의 대상으로 삼은 신들에서 시작하여 문학의 모델을 거쳐, 신전을 비롯한 공공건물에 대한 건축학적 설계 등에 이르기까지 그리스 문화를 생활양식의 바탕으로 삼았다. 하지만 로마인들은 그리스인들과 애증 관계에 있었다. 그들은 문화적 측면에서는 그리스인들을 존경했지만, 그리스인들의 정치적 사분오열과 군사적 열등성은 경멸했다. --- p.32「1장 서론과 배경」중에서

로마인들은 이런 보호자-피보호자 관계를 두 당사자의 역할이 규정된 ‘우정(아미키티아amicitia)’의 한 유형으로 정의했다. 사려 깊은 보호자는 피보호자를 ‘나의 피보호자’가 아니라 ‘나의 친구’라고 부름으로써 존경을 표했다. 반면에 피보호자는 말 그대로 ‘나의 보호자’라고 부르면서 존경을 표했다. 이 관계는 우정의 외양을 취하고는 있지만 결코 부담 없는 사사로운 관계가 아니다. 이 잘 짜인 개인적 연결망은 당사자들로 하여금 법적 의무 사항을 수행하도록 강제했다. --- p.47「2장 로마인의 가치, 가정, 종교」중에서

초대 왕 로물루스를 시작으로 로마 창건 이후 250년 동안 일곱 명의 왕이 차례로 통치를 했다. 왕정 시대의 로마는 두 갈래 전략을 채택하여 인구 증가를 노림으로써 스스로를 더 잘 보호할 수 있는 대규모 정착촌으로 서서히 발전해갔다. 두 갈래 전략 중 하나는 이웃 민족들을 로마 인구로 편입시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웃 민족들과 군사적으로 협력 하는 동맹을 맺는 것이었다. 이 전략은 로마의 장기적 확장을 뒷받침하는 근본 바탕이 되었는데, 말하자면 이웃 사람들을 로마인으로 만들고 그 다음에는 그 사람들과 공동 방어망을 펴는 것이었다. --- p.75「3장 로마의 건국에서 공화정까지」중에서

로마인들은 명확하게 범위가 규정된 권력 기관을 가진 정부 제도에 의지하기보다는, 전통에 대한 존중, 저 유명한 ‘조상들의 관습’에다 공화국의 정치적 건전성과 안전성을 의탁했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사회적으로 가장 저명하고 부유한 로마인들이 정부를 지배했다. 그들은 높은 지위를 가진 덕분에 정치적 상황에서 ‘조상들의 관습’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천할지를 조언하고 통제할 수 있었다. --- p.105「3장 로마의 건국에서 공화정까지」중에서

로마의 제국주의는 다음과 같은 여러 요소의 결과물이다. 첫째, 로마와 그 영토에 대한 안보 의식 때문에 원로원과 민회는 적으로 간주되는 자들을 선제공격하도록 승인했다. 둘째, 로마의 상류계급과 로마의 평민들은 정복전에서 나오는 혜택, 가령 전리품, 이탈리아 내의 토지, 속주들에서 생기는 세입 등을 활용하기를 바랐다. 셋째, 로마인들은 영광을 추구하는 일을 전통적으로 좋아했다. 상류계급의 사람들은 개인적 만족을 위해 영광을 추구했고 로마 평민들은 국가의 높은 명성에 기여하는 것을 영예롭게 여겼다. --- p.127 「4장 공화정 시대의 전쟁과 영토 확장」중에서

로마의 전통이 이처럼 부패하기 시작한 것은 국가적 위기가 발발한 때부터였는데, 당시 로마는 내부적으로는 이탈리아의 동맹국들과 싸워야 했고 대외적으로는 소아시아의 영리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미트라다테스와 싸워야 했다. 공화정의 정치적 안정이 크게 파괴된 것은 군사령관 술라가 공동체에 충성해야 한다는 고대 로마의 가치를 우습게 보면서 자신 의 권력욕과 명예욕을 더 앞세우면서부터였다. 시인 루킬리우스가 오래 전에 표현했던 로마의 이상─공화국과 가문의 이익을 중시하고 개인적인 이익은 가장 나중으로 돌려야 한다─은 이제 로마의 야심만만한 지도자들에게 영감을 주지 못했다. --- p.144「5장 공화정의 파괴」중에서

카이사르의 장례식에서 폭동이 터져 나왔다. 일반 대중은 자신들의 영웅을 앗아간 상류계급을 향하여 분노를 터뜨렸다. 귀족들은 단일한 공동 전선을 형성하기는커녕, 정치권력을 잡기 위해 자기들끼리 갈등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여 아주 무서운 기세의 또 다른 내전이 카이사르 암살 직후에 발발했다. 이 시기에 이르러 공화국은 이제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로 파괴되었다. 이 갈등의 잿더미에서 서서히 변형된 왕정─우리가 오늘날 로마제국이라고 부르지만 로마인은 여전히 공화정이라고 불렀던 것─이 생겨났고 이 정치 체제 아래에서 로마의 역사가 그 후 수 세기 동안 전개된다. --- p.169「5장 공화정의 파괴」중에서

아우구스투스는 ‘새로운 옛 공화국’을 점진적으로 확립해나갔다. 전통을 새로 만들어내는 것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는 복수와 권력을 추구하면서 무자비한 행동도 마다하지 않는 젊은이로서 정치 경력을 시작했으나, 로마에 평화를 가져온 노인으로 그 경력을 마감했다. 그는 상비군을 창설했고, 로마군이 성공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로마 속주의 경계를 확정했으며, 수도 로마를 아름답게 꾸몄고, 화가와 조각가를 후원했으며, 도시 대중의 삶을 향상시켰고, 성공을 거둔 관대한 통치자라는 이미지를 널리 퍼트리기 위해 각종 선전 수단을 활용했으며, 상류계급을 유지시키기 위해 결혼과 자녀에 대한 로마인의 인식을 새롭게 형성하려 했다. 그가 이러한 변화들을 시도했기에, 역사가들은 로마제국 초기 몇십 년 동안을 가리켜 ‘아우구스투스 시대’라는 명칭을 붙였다. --- p.177「6장 공화국에서 제국으로」중에서

아우구스투스는 자신이 널리 알리고 싶어 했던 이미지를 잘 보여주는 아주 중요한 증거 문서 하나를 남겨놓았다. (…) 이 문서에는 그가 로마의 지도자로서 한 일과 공동선을 위해 거대한 사재를 출연한 사실이 1인칭으로 서술되어 있다. 그는 자신의 파란만장한 경력이 공화국의 전통을 수호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거듭하여 강조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10대 시절에 그는 사병을 조직하여 양아버지의 복수를 했고 공화국의 자유를 수호했다. 내전의 승자가 되어서는 독 재관 직책을 제안받았으나 거부했다. 그가 받아들인 직책은 원수 하나뿐이었다. 그는 인민을 돕기 위해 엄청난 사재를 출연했다. 그는 공식 권력이 아니라 전통적 가치를 따름으로써 얻은 엄청난 존경을 통하여, 국가 내에서 원수라는 지위를 획득했다. --- p.185「6장 공화국에서 제국으로」중에서

새로운 도시들이 많이 들어선 여러 지역에서는, 로마의 영향에 의한 변화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이러한 공동체들은 황제들이 속주 전역에 하사한 제대군인들의 정착촌으로 시작해서 성장했거나, 아니면 로마군의 주둔 부대를 중심으로 그 주위에 자발적으로 생겨났다. 이러한 정착촌들은 특히 서유럽이 형성되는 데 큰 영향을 미쳤고, 라틴어(그리고 라틴어에서 파생한 다른 언어들), 로마의 법률, 관습을 그 지역에 단단히 심어놓았다. 독일의 서쪽 변경에 가까운 트리어나 쾰른 같은 저명한 현대 도시들은 로마의 도시로서 출발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속주들과 로마제국의 중심인 이탈리아 사이의 사회적·문화적 구분은 희미해졌다. 마침내 속주에서 황제도 배출했다. 집안이 스페인에 정착해서 살았던 트라야누스가 그 첫 번째 사례이다. --- p.221「7장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가문에서 제국의 황금시대까지」중에서

이런 광범위한 박해는 제국의 위기를 더욱 가속화한 내전, 경제적 실패, 전염병을 중단시키지 못했다. 갈리에누스 황제(재위 기원후 260~268년)는 기독교인들에 대한 박해를 중지하고 주교들에게 몰수당한 교회 재산을 다시 돌려주도록 함으로써 제국에 종교적 평화를 회복시켰다. 이 정책 은 3세기의 나머지 기간 동안 기독교인과 제국 정부 사이의 긴장을 누그러뜨렸다. 그러나 기원후 280년대에 이르러 제국이 재정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심연의 가장자리에서 비틀거리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다. --- p.266「8장 예수 그리스도와 제정 초기의 위기」중에서

콘스탄티누스는 기독교로 개종하기는 했지만 전통적인 로마 종교를 불법으로 선언하지도 않았고 또 자신의 개인적 신앙을 공식적인 국교로 만들지도 않았다. 그 대신에 종교적 관용을 선포했다. 이 정책은 313년에 선포된 ‘밀라노 칙령’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락탄티우스, ≪박해받은 사람들의 죽음에 관하여≫ 48). 반세기 전에 갈리에누스 황제가 선언한 사상을 바탕으로 한 이 칙령은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종교를 선택할 수 있다고 선언했고, ‘최고의 신성’이 제국을 보호한다고 말했다. 이 애매모호한 용어는 기독교인과 전통 신자들을 모두 만족시키기 위한 말이었다. 콘스탄티누스가 볼 때, 종교적 관용은 신들의 호의를 다시 얻고 사회적 불안을 예방하기 위해 가장 현명한 선택이었다. --- p.282「9장 제정 후기의 기독교 박해와 수용」중에서

동로마 황제들은 로마 문명의 건강과 장수를 지원하기 위해 전통을 유지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들은 ‘로마의 특성’을 보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게르만 민족들과의 접촉이 서로마제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자신들의 제국을 ‘야만화’하지 않을까 우려했다. 서로마 황제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게르만족과 훈족 용병들을 많이 고용했으나 이 전사들의 관습이 제국의 주민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하려고 애썼다. --- p.322「10장 야만족의 이동과 제국의 운명」중에서

불운하게도 유스티니아누스의 군사적 승리는 장기적으로 볼 때 재앙으로 판명되었다. 그것은 서로마제국의 기반 시설과 주민들에게 큰 피해를 입혔고 군사비 지출로 동로마제국의 국고를 텅 비게 했다. 서쪽에서 벌인 고트족과의 전쟁은 대규모로 죽음과 파괴를 퍼트렸다. 유스티니아누스가 서부 전쟁을 지원하고 또 군대가 출동하여 본국 방어가 허술한 동로마제국을 메소포타미아의 사산 왕조가 공격해 오지 못하도록 뇌물을 주려고 이미 과부하인 주민들에게서 세금을 더 짜내면서, 동로마도 큰 피해를 입었다. 세금 부담은 경제를 휘청거리게 만들었고 농촌 지역에서 도적 떼들이 들끓는 요인이 되었다. 가난과 도적 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농촌의 많은 사람들이 수도로 몰려들었다.
--- p.328「10장 야만족의 이동과 제국의 운명」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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