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그림을 배워 보고 싶은데요….” “전에 그림을 그려 보셨어요?” “아니요. 고등학교 때 미술 시간에 그려 본 게 마지막이에요.” 화실 선생님은 스케치북과 4B 연필을 주더니 대뜸 수평 줄 긋기부터 시킵니다. 다음 수직 줄 긋기, 빗금 줄 긋기… 그러고 나서 긴 직사각형을 그리게 하더니 그 안에 0부터 100까지 점차적으로 명암을 표현해 보라고 했습니다. 첫 미술 수업 세 시간이 이렇게 지나갔습니다. ‘내가 지금 뭐하나? 애들같이 줄 긋기나 하고… 그래도 기초가 중요한 거라고 늘 이야기해 왔으니 나도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해야 말과 행동의 일관성이 있겠지!’ 시키는 일에 익숙했던 사람이 학생이 되어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은 정말 오랜만에 느낀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 p.12
그러다가 만델라의 젊었을 때의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옥살이를 시작한 1962년 전의 사진이지 싶은데, 그 표정이 아주 험상궂었습니다. 27년간 옥살이를 하고 나왔을 때의 모습이 더 인자하고 여유 있게 느껴지다니 이게 무슨 조화인가 싶었습니다. 감옥이 호텔도 아니고, 남아공 당국자들이 만델라를 후대했을 리도 없는데 말이지요. 그 순간 ‘아! 27년의 감옥살이가 이 사람을 거꾸러뜨리지 못했구나! 오히려 성숙하게 만들었구나!’ 하는 깨달음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 p.20~22
아이들이 말을 잘 안 듣는다고 푸념하는 어른들이 많습니다. 왜 아이들이 어른 말을 듣지 않는 것일까요? 어른들이 그릇된 말을 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맞는 말을 하기는 하는데 ‘재수 없게’ 말해서 안 듣는 것입니다. 자기는 안 지키면서 아이들에게 강요하는 태도가 ‘재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른 말은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은 일종의 ‘어른질’입니다. --- p.44
테레사 수녀의 얼굴에는 주름이 많습니다. 주름을 표현할 때 어두운 색으로 줄을 긋는다고 해서 주름살이 표현되지는 않습니다. 주름과 주름 사이를 밝게 칠하고 골은 점차적으로 어둡게 그려야만 자연스럽습니다. 그것을 반복해야 얼굴 표현이 완성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테레사 수녀는 고뇌에 찬 모습이 많은데 돌아가신 다음에도 고통스러울 게 뭐가 있겠나 싶어 특별히 웃는 얼굴을 찾아서 실제보다 조금 젊게 그렸습니다. 붓 쥔 사람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