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로 쏟아 붓는 소독약에 수연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말을 이어나갈 수 없었고, 생각을 전진시킬 수 없었다. 모든 감각이 그저 그대로 멈춰 버렸다. 놀란 수연이 반대편 손으로 지안의 팔을 부여잡았다.
“많이 쓰라렸죠?”
지안이 온 얼굴을 구기며 함께 아파했다. ‘가슴이 찢어진다.’는 표현이 이토록 사실적일 수는 없었다. 지안은 현재 가슴이 찢어지는 감각을 느꼈다. 그녀가 아파 몸부림치는 모습을 지켜본다는 것은 그야말로 고문에 가까웠다. 지안이 수연의 빈손을 부여잡았다.
“미안해요.”
“아녜요. 지안 씨가 왜 미안해요.”
두 눈에 눈물이 고인 채 수연이 웃었다.
“나 생각보다 아픈 거 참는 거 잘해요.”
예의를 차린다는 것과는 조금 달랐다. 어떻게 보면 아주 미세한 차이겠지만, 확실히 예의나 배려 따위와는 그 색이 달랐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게 아닐까. 어린 수연은 거울 앞에 선 채 그렇게 물었다. 넌 대체 어디에 쓸모가 있는 거야? 취미도 특기도 없었으니까. 그저 모든 것은 평균. 그래서 더더욱 평범하지 못했다.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지안의 시선이 민망했던 모양인지 수연이 멋쩍게 웃으며 시선을 피했다. 얼굴이 붉어졌다. 그의 깊은 눈동자 안으로 자신의 모든 것이 빨려들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는 그런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왜 그렇게 봐요.”
그 말에 지안이 입술을 달싹였다.
“참지 마요.”
지안 특유의 목소리가 별다른 음의 파동을 그리지 않고 단번에 수연에게 스며들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었던 수연이 자신도 모르게 지안과 시선을 마주쳤다. 붉게 물든 입술이 열렸다. 그 작은 틈 사이로 조용히 수연이 호흡했다.
“무조건 참는다고 좋은 거 아니에요. 아픈 것도, 슬픈 것도, 화가 나는 것도 참지 마요.”
다시 바람이 불었다. 수연의 잔머리들이 휘날렸다. 지안이 그것을 정돈했다. 수연의 귀 뒤에 닿은 지안의 손길이 이번에는 익숙하게 두 사람을 휘감았다. 그의 뜨거운 체온이 수연의 온몸으로 퍼졌다.
수연은 아무 말 없이 그저 지안만을 빤히 응시했다. 지안은 봉투에서 연고를 꺼내고, 밴드를 꺼내고, 다시 상처 부위에 연고를 바르고, 수연은 쓰라림에 살짝 입술을 깨물고, 지안은 그런 수연을 보며 다시 인상을 찌푸렸다.
한적한 공간 안으로 두 사람의 숨소리와 부스럭거리는 소리만이 들렸다. 손가락 끝으로 느껴지는 지안의 체온은 너무나도 따뜻했고, 소리 내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벅찼다.
“아파요.”
수연의 혀끝으로 그 말이 툭 튀어나왔다. 생각을 거치지 않고 오래도록 묵혀 두었던 그 말이.
“너무 아파요.”
지안의 온몸을 뒤흔들었다.
사랑받는다는 것은 언제나 수연에게는 목마른 이야기였다. 자신을 사랑해 마지않는, 세상 그 누구와 비교하여도 견줄 수 없을 만큼 자신을 사랑하는 부모님 앞에서조차 수연은 마음껏 울 수 없었다.
미움 받고 싶지 않았으니까. 사람들은 이상하리만치 수연을 좋아하지 않았고, 답답해했고, 미련스러워했으며, 가까이 두고 싶어 하지 않았으니까. 괜히 아파하며 울어 더욱 미움을 사고 싶지 않았다. 그래. 이런 모든 말이 변명이라면 단순히 싸구려 변명으로 묶여 사라져 버릴 수 있겠지만, 그래도 이 모든 것이 진심이라는 것쯤은 알아줬으면.
적어도 이 사람만큼은 알아주지 않을까, 하는 그런 되먹지도 않은 기대가 치솟았다. 너는 나를 알아줄 거야. 그렇지?
대체 어디서 오는 신뢰감인지 수연은 스스로도 그 출처를 알 수 없었다.
지안이 잡고 있던 수연의 손에 힘을 가했다. 두 손바닥이 가장 가까이 서로를 밀착시켰다. 그곳으로 모든 체온이 전해졌다. 모든 위로가 전해졌다. 모든 말이 전해졌다.
“알아요.”
지안의 그 말은 마법과도 같아서, 수연은 자신을 모두 놓을 수 있었다. 그 앞에서 몇 번째인지도 모를 눈물이 터져 나왔다. 볼을 타고 끊임없이 흘렀다. 어깨가 들썩이고, 수연은 정말이지 아이처럼 울었다.
지안이 그녀를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수연이 지안에게 안겼다. 눈물은 멈추지 않고 보란 듯이 더 흘렀다. 그동안의 모든 설움이 이곳에서 터져 흐르는 듯했다. 은제는 떠오르지 않았다. 수연은 이제 눈물을 터트리기 위해 울었으며, 이별을 등지고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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