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남북통일'의 의미는 매우 다양하다. 고향 방문, 가족 상봉, 재산 찾기, 금강산, 묘향산, 백두산 관광, 투자, 상품 판매, 정치적 승리…… 등. 통일과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들도 민족의 통일은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통일만큼 추상적이고 모호한 개념도 없을 것이다. 과연 어떤 상태를 통일이라고 할 것인지에 대해서부터 우리는 합의된 정의를 갖고 있지 않으며, 통일이 개개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해 저마다 그 영향권 밖에 있는 듯 착각하고, 통일에 어떻게 기여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더더욱 구체적인 의견이 없는 게 보통이다. 결국 통일은 구체적인 사건인 듯 하면서도 감정적이고 추상적인 꿈나라의 이야기가 되고 있다.
최근 국내외 정세를 볼 때 통일은 시간문제라고 보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통일에 관한 남북 당사자 간의 정치적 합의나 결정이 반세기 동안 서로 다른 체제를 구축한 두 사회를 무리 없이 통합시켜 줄 것이라고 믿는 이는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독일 통일 후 동·서독인들이 서로 불신과 적응 불능으로 고생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그 문제의 심각성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통일은 단순한 국토의 경제, 정치, 군사적인 통합뿐 아니라 사람들의 접촉과 이동을 필수적으로 요구한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나 이데올로기나 경제가 아닌 사람들의 만남과 함께하는 삶이 통일의 모든 과정에서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통일 논의는 사람의 요소가 빠진 채 진행되는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 같은 문화적 전통을 지녔다고 하지만 40여 년 동안 단절된 생활권에서 살아온 경험이 어떻게 의사소통을 제한하고 갈등을 야기할 것인가를 충분히 인식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진정한 통일이란, 통일 과정에서 남과 북의 사람들이 서로의 언어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상대방의 무엇이 우리와 다르고 무엇이 같은가를 알고 서로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되는 상태, 즉 개방적 태도로 상호간 문화적 차이를 인지하는 바탕 위에 교류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우리의 통일에서 이것은 결코 간단하게 성취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두 해 전에 이런 문제의식을 공유한 [또 하나의 문화] 동인 몇몇이 모여 '통일된 땅에서 더불어 사는 연습'을 시작하였다. 1994년 3월부터 1년 남짓 격주로 토요일에 모임을 갖고 남쪽 사람들이 북쪽 사람들과 '정상적'으로 만날 수 있기 위해 북쪽의 문화, 언어, 습관, 사고방식, 행동 방식 등을 이해하고 그들과 진정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방법을 익히는 공부를 하였다.
북조선 연구자들을 강사로 모셔서 이야기를 듣고 토론도 하고, 남북 사람들의 만남이나 서로에 대한 해석이 담긴 여행기, 소설, 인터뷰 기사 등 텍스트를 분석해 보기도 하고, 귀순자와의 만남, 영화 등을 통해 남북 사람들의 만남의 모습이 어떠할지를 살펴보기도 했다. 이 연습을 통해 우리는 자신들을 좀 더 거리를 두고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며, 새로운 의사소통을 할 준비와 자세를 다져 갈 수 있었다. 또한 이 연습이 남한 사회 내부에 존재하는, 감성과 전제와 의사소통 방식이 다른 사람들이 서로를 누르지 않고 편견 없이 만나고 포용해 가기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제 우리가 공부한 결과와 연습한 과정을 책으로 엮어 다른 사람들과 나누려고 한다. 우리 사회의 주도적 통일 담론은 지난 50년 동안 정부의 정책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수없이 많은 전문가들의 글을 통해 형성되어 왔다. 여기에는 그러한 통일 담론과는 조금 다른 방향의 글을 싣는다. '미리 생각하는 통일'에 실린 세 꼭지의 글이 통일 문제에 대한 조금 다른 생각을 대표한다고 볼 수는 없다. 또한 이들이 통일에 대한 질문들에 명쾌한 해답을 준다고 할 수도 없다. 그러나 이 글들이 우리에게 더 많은 질문을 하게 하는 구실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남과 북이 다르지 않다고 주장하면서도 서로를 보는 시선은 '다름'에 맞추어지곤 한다. '다름에 대한 이해'에서는 우리가 얼마나 '다름'을 참지 못하는가를 반성할 수 있게 해주는 사례로 외국인 노동자, 연변 조선족, 화교들의 삶을 살펴본다. 문화적 상대주의의 위험을 무릅쓰고 우리는 지금까지의 옹고집식 자기 중심적 사고의 전환이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주장한다.
각 나라의 경험은 우리의 그것과는 분명히 다를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통일을 생각하면 그들의 통일을 강 건너 먼 산 보듯 무심히 바라볼 수만은 없게 만드는 불안을 느끼게 된다. 그들의 통일 경험이 우리에게 말해 주는 것은 무엇일까? '외국의 경험, 우리의 거울'에서는 독일과 베트남의 통일을 보며 그들과 함께 통일 이야기를 만든 이들쟀 글을 읽어 본다. '북조선을 보는 남한 읽기'에서는 대학생들이 털어놓는 솔직한 신세대 통일관, 그리고 외국인의 눈에 비친 남한 사람들의 분단관과 통일관을 분석한 글을 통해 우리 자신을 되돌아본다. 한 사회의 예술은 다분히 그 사회의 정치적, 경제적 상황에 영향을 받는다. 사회주
의 사회의 경우에는 더더욱 예술이 사회주의 건설에 기능해야 하고 '당'의 정책을 반영하도록 요구된다. 그러한 정치적, 이념적 의미를 감안하더라도 우리는 그 작품 속에서 그 사회와 사람들의 삶을 볼 수 있다.
'또 하나의 북조선 읽기'에는 북조선의 영화에서 우리는 어떤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지, 또한 그런 만남을 위해서 영화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보여 주는 글을 싣는다. 남과 북의 사람들이 공적으로나 사적으로 대면하고 만나게 되는 일은 점점 더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그것은 먼 훗날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의 이야기인 것이다. 우리는 과연 북조선 주민을 만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을까? '남과 북의 만남'에서는 북쪽 사람들을 직접 만나본 이들의 체험담을 싣는다. 사투리 말고는 기본적인 의사소통이야 문제가 없겠지만 서로 간에 진정으로 속이야기가 통할 수 있는 것은 언제일까? 남과 북 사람들이 함께 읽고 통일
을 준비하고 연습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 책을 엮어 펴낸다. 이 책에서 우리는 '북한'이 아니라 '북조선'이라 부르는 것부터 연습을 했다. 북에서도 우리를 가리켜 '남조선'이란 칭호을 고집하지 않고 '남한'으로 부르는 연습을 시작하기를 기대하면서. 통일과 관련하여 우리가 논의한 '같음과 다름'의 논리가 비단 남북만이 아니라 남녀간, 세대간, 지역간의 문제를 같은 선상에서 볼 수 있게 해주며, 남한 사회 안에 존재하는 이 같은 벽들을 허무는 데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기대를 해본다. 또한 이러한 노력이 북녘에서도 시작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덧붙여 본다.
1996년 4월
--- '책을 펴내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