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 속의 인물로만 느껴지던 전사 시인 김남주, 그를 최초의 실물로 만난 것은 1993년이었다. 힘겨운 시기였고, 여전히 철모르쟁이였던 나는 마음 붙일 곳을 찾지 못해 헤매고 있었다. 모든 것이 붕괴하고, 사라지고 있는 듯 보였다. 일단 붕괴에 가속이 붙자 돌이키기란 불가능하였다. 어찌어찌 얼치기 소설가가 된 지경에 본분대로라면 글을 뽑아내야 했을 터이나, 그때 내가 쓸 수 있는 유일한 삶의 소설은 침묵으로 시간을 견디는 것뿐이었다. 어금니를 시리게 악물고 사랑하는 것들의 붕괴와 폐허 위에 피어나는 새로운 빛깔의 꽃들을, 그 진저리쳐지는 욕망의 만개를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는 일. 다만 외면하거나 회피하지 말 것. 나는 끝내 문학을 버리고 살아갈 수 없었다.
--- p.238
어떻게 하면 깨끗하게, 단번에 죽을까 심각하게 연구하면서도 일상 자체는 전복되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새벽에 일어나 밥을 짓고, 아이를 위해 텔레토티와 젤라비를 녹화하고, 사람들 앞에서 족발 안주에 새우젓을 찍어 먹으며 생글생글 웃는다. 그 틈새에, 사람을 만나러 이동하는 사이에 지하철에서 "지금 열차가 도착하오니 안전선 밖으로 물러서시기 바랍니다."하는 여자의 멘트에 안전선 안으로 한 발 다가서기를 모의하기도 하고, 새로 산 바지는 물이 빠질까 봐 따로 빨고 흰 와이셔츠 역시 따로 삶아 빨아 널다가 문득 이사할 때 곤돌라에서 떨어져 산산이 부서졌던 오디오 시스템을 추억하기도 한다.
--- p.67
어느 날 문득 돌연히 영감에 사로잡힌 듯, 반쯤 홀린 듯, 뱀파이어리즘과 악마주의에 기반을 두고, 사도마조히즘과 페티시즘을 주축으로 하며, 보수와 진보를 한꺼번에 무시하고 조롱하며, 패륜과 폭력을 옹호하는 시대의 문제작을 써내게 된다면, 그래서 청소년보호단체, 여성단체 등 각종 시민단체가 일제히 비난 성명을 발표하고, 종친회가 우리집 앞에서 시위를 벌이며, 전우회가 아파트 벽에 자일을 걸고 테러를 계획하고, 종교단체는 내가 다니는 길마다 시뻘건 스프레이로 '마귀 타도', '사탄은 물러가라' 따위의 슬로건을 써 갈기고, 마침내 언론의 비난 여론에 등을 밀린 검찰이 수사에 들어가고, 윤리위원회가 가동되고, 명망 있는 학계, 예술계, 종교계, 언론계 인사들이 그 작품의 문제성 및 사회적 파급력과 위험성을 심사하게 된다면, 그래서 서점에 깔린 책은 전량 회수되고 미리 유통된 몇 권의 책이 암거래 시장에서 상한가를 치고, 마침내 나는 시대의 패륜아이며 상종 못 할 불한당이며 이단자이며 마초이며 사회의 암적인 요소이며 빨갱이이며, 그 모든 존재의 규정에 겨워 더 이상 소설가가 아닐 때, 이 나라를 떠나 성형수술을 하고 이름을 바꾸고 망명자로 살아가는 길밖에 남은 도리가 없어질 때......
나는 기왕이면 네덜란드로 떠나고 싶다.
--- pp.20~21
나의 분신인가, 정녕코 나의 살로 빚은 너의 살이며 나의 피가 네 몸 안에 붉게 흐르는가. 그리하여 너는 이토록 뜨거운가. 내 삶의 알리바이인가, 남들과 하등 진배없이 자궁 속에 생명을 길러 질을 찢어가며 낳고, 마침내 여자라는 족속으로 살아냈다는증거인가. 그리하여 나는 증인과 증언과 증거에 허덕이듯 너와 함께 사진을 찍고 추억을 줍기에 골몰한가.
피 한 방울 나눈 바 없는 타인과의 길고 끈질긴 공생, 결혼이라는 제도를 유지시켜 주는 매개체인가. 한 방울의 정액으로부터 내게 스며들어 엄연한 '존재'가 되고, 그렇게 돌이킬 수 없는 질긴 인연을 만들어낸 강력한 끈인가. 나의 보험인가. 시간에 대한 그 모든 저항이 무력해졌을 때, 늙고 지치고 힘없어 비틀거리는 내 어깨를 기댈 튼튼한 담장인가. 지금 네개 주는 내 모든 사랑은 값비싼 보험금인가, 교활한 투자인가. 그리고 나는 결국 그 보험을 탈 수 있으려나?
나의 애완동물인가. 털이 날리고 아무 데나 똥을 싸는 개와 고양이를 대신해 부드러운 볼을 비벼 쓸쓸한 나를 위로하는 살아 있는 장난감인가. 너를 예쁘게 입히고 쓰다듬어 다독이며, 너의 향긋한 살결에 코를 묻고 체온을 느끼며, 나는 어린아이처럼 행복하길 꿈꾸는가.
--- p.186-187
그리하여 불교에서 말하는 완전한 깨침, 입적이나 원적, 귀진이나 적멸로 불리는 그것은 스스로의 죽음을 희롱하고 해학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며 이루어진다. 심지어 중국의 등은봉 선사는, 고승들 중에는 특이하게 앉아서 혹은 서서 돌아가신 분들이 많은데 그들이 누구인가를 물은 후 체조선수처럼 물구나무를 선 채 입적했다 한다.
"어어, 스님이 돌아가셨네!"
아마도 등은봉 선사의 입적을 목격한 시자들은 그렇게 소리치며 어쩔 수 없이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을 것이다. 그곳에 시덥잖은 눈물이 머물 자리는 없었을 것이다. 다비식에 쓰일 장작과 참나무를 나르면서, 수십 개의 가마니에 물을 뿌려 그 나무 위에 덮고 기름을 부어 선사의 육신을 태우면서, 간혹 시자들과 신자들은 물구나무서기를 한 등은봉 선사의 모습을 기억해 내고 남몰래 키득거렸을지도 모른다. 때로 생과 사의 좁으나 깊은 별리의 골이 서러워 눈물을 흘리다가도, 이렇게 죽을 줄은 몰랐지? 하고 메롱 혀를 빼문 선사의 아이 같은 모습이 떠올라 기가 차서도 웃고 어이없어서도 웃고 허탈해서도 웃고 진정 탄복해서도 웃었을 것이다.
--- pp.127~128
30대에, 이 맹렬한 사자의 날에, 나는 강력하거나 자신만만하거나 아름답지 않다. 다만 그것을 스스로 인정하기 힘들 뿐이다. 인정하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고 눈물을 참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 살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에 '행복한 항복' 처럼 찾아온 어쩔 수 없는 싸움을, 우리는 다만 이렇게 견뎌내고 있는 것이다.
--- p.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