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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킹과 퀵서비스맨

마네킹과 퀵서비스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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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10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132쪽 | 208g | 128*188*10mm
ISBN13 9788960212459
ISBN10 8960212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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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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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킹을 배달하는 퀵서비스맨

여자를 들고 달린다

가방 속에 든 여자의 몸은 여러 겹의 포장으로 둘러싸여서 잘 보이지 않는다 욕이 먼저 튀어나온다 씨발,

벌거벗은 마네킹이다 마네킹이 쳐다본다 마네킹을 때린다 마네킹이 운다 마네킹을 다시 집어넣는다 마네킹과 함께 도망친다 한사코 시의 외곽으로

경찰차가 따라온다 그를 안다고 말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안다고 생각한다 부릉부릉 오토바이의 속도를 높인다 경광등을 울린다 경찰관이 거수경례를 한다

위반하셨습니다

시켜만달라고 각종 배달 심부름 대행 안 하는 것이 없다고 어디든 바람처럼 다녀올 수 있다고 헬멧과 마스크 사이 눈 깜박거림 멈출 수 없다 분노한 짐승같이 한쪽 다리를 든다 페달을 구른다

몇 동 몇 호세요? 어느 골목에 계신가요? 곧바로 나오실 수 있죠? 검정 바지 검정 점퍼 무릎 보호대 두른 채

요금은 14,000원입니다

부다다다-

꽃잎 으깨진다 애드벌룬 터진다

꽃 속의 꽃이 우주다



이것은 봉두난발 억새 수풀 헤치던 때와는 좀 다른 이야기다

108번 종점식당 개들은 조금씩 미쳐가지

컹컹 짖을수록 나무들이 형형색색 물들어가는 산기슭 헝클어진 머리 허연 이빨로 개새끼들! 중얼거리며 한 손에 토치 들고 다른 손엔 검붉은 다리 들고 그을리는 사내의 등 뒤 철망 문짝 흔드는 개들 목덜미를 씰룩 침을 질질 공기방울 부풀리듯 안개 자욱 피워올리듯 크를를를……

이것은
봉두난발 억새 수풀 헤치고
Y자 나무에 목을 매달던 때와는 좀 다른 이야기다

기어 나오려 할수록 깊이 빠져드는 늪처럼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 아슬아슬 물가를 걸으며 힘껏 돌팔매질 하는 남자들 붉게 머리 물들인 여자들

놀이 고운 저녁

채울수록 허기져서
걸신들린 듯
아귀아귀 먹어 치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목줄 매인 채 우리 빠져나가 무덤 뒤 대나무 숲 속 배회하는 검은 그림자 하나 푸르게 쏟아져 나오는 안광

컹컹 짖을 때마다 우수수 물든 잎 떨어지지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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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만의 시들은 ‘홑겹의 슬픔’을 안고 있다. 그에게 흰 옷 입히고 몽둥이 수건 묶어주면 딱 고부 백산 동학교도다. 내 눈에만 그런가? 나는 무엇 때문에 그가 현실에 안주하지 못하고 이 길 저 길을 헤매는지 알지 못한다. 그저 수년 전 내 고향 매화 보러 온 그를 떠올리며 여리고 아름다운 것에 대한 태생적 기질 탓이라고 짐작해본다. 고성만의 방황과 낭만과 좌절은 자진해서 택한 삶의 한 방식이다. 이 진부하고 고전적인(?) 고성만의 시적 행로가 나는 바뀌지 않기를 바란다. 본향에 대한 애달픔과 그리움이야말로 우리 세대들이 지닌 크나큰 자산이기 때문이다.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재밌다. 도회지 것들은 감히 상상도 못 하는 우리들만의 재미가 있다. 어쨌거나 고성만도 나도 자진해서 홑겹이다. 우리는 이 삶의 홑겹이다. 시의 홑겹이 좋다. 시골에서 나서 도시로 나와 어느덧 오십 대가 된 자들은 그냥 이 시집을 펼쳐 읽으면 된다. 기어이 오염되고 변질된 우리들의 자화상이 여기에 있다. 그러나 욕하지 마시라. 흰 옷 입히고 몽둥이 수건 묶으면 우리는 곧바로 다시 고부 백산에서 묵묵히 농사짓던 그 사람들의 모습이 되기 때문에. 고성만의 집 귀퉁이에 초라한 내 이름을 새기게 되어 외람되고 행복하다.
유홍준 (시인)
문명이 야생으로 역행하는 삶 속에서는 모든 삶이 그저 뜨거운 유랑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파괴는 생산과 같아지기도 한다.(「칼데라」) 「시립무등도서관과 이스탄불무인텔 사이」란 뜨거운 역사와 비루한 현실의 사이이며, 높은 정신의 문명과 비린 육체의 사이다. 그곳에는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투계를 보면서 환호성을 지르는 ‘질컥거리는’ 사람들(「투계」)이 있고, 배달 요금보다 높은 범칙금을 물면서 마네킹을 배달하는 퀵서비스맨이 있다. 문명 속에서 우리는 기껏 “지하철 계단 편의점 매장 사거리 신호등 여자화장실 목욕탕 탈의실 물고기 같은 눈으로 침을”(「몰카 천국」) 삼키는 카메라의 먹잇감밖에 안 된다. 다시 묻자. 사는 게 뭔가? 고성만 시인은 남자와 여자를 불러와 거기 기꺼이 한 살림 차린다.(「천전리 각석」) 그러면 어느새 ‘밥 짓는 김이 오르고’, 등에 뜨끈하게 지져지는 열기를 참으며 한 생을 건너가는 것이다. “나는 노를 젓고 너는 아이 업은 채 밥을 짓고”(「양화진」) 하면서. “민들레 갓털처럼” 분주히 오간 이 원족의 흔적들. “살아본 것 같은 집들, 만나본 것 같은 사람들”(「전주」), 생각해보면 사는 일이 “투신할까 말까 망설이는/ 눈송이의 글썽글썽한 눈”(「옥상」)을 보는 일 같다.
이현승 (시인,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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